누가복음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거듭난 삶 2024. 12. 2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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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병자들을 고치심

 

성 경: [4:38-44]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4: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시몬의 장모 - 저자 누가는 이전까지 베드로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본서를 기록하다가 본 구절에서 갑자기 아무런 소개없이 베드로를 언급한다.

 

그것은 누가가 본 복음서를 기록할 시기는 이미 초대교회 시대였기 때문에 선교활동을 통해 베드로의 이름이 온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이곳에서 갑자기 그의 이름을 언급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을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부인의 이름은 컨콜디아(Concordia), 또는 펄페튜아(Perpetua)였다고 한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녀가 베드로보다 일찍이 순교 당하였다고 전한다.

 

중한 열병 - 문자적 의미로는 '높은 열병'(high fever)이다.

 

누가가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는 열병의 정도를 구별하는 데 있어서 고대의 의학적 관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누가가 전문 의사였음을 확증해 준다.

 

앓고 있는지라 - 아마 시몬의 장모는 만성병(慢性病)에 시달린 듯하며 당시에는 매우 중태였던 것 같다.

베드로의 장모의 중병이 그 가정에 위기를 가져왔지만, 그 위기 상황은 또한 예수가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 원문상으로는 예수께서 환자의 머리 곁에 서서 허리를 굽혀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는 주술적 행위나 무당의 무속적 행위에 의해서 질병을 치료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판단에 의거한 정확한 진단과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치료를 하신다.

 

열병을 꾸짖으신대 - 본 구절을 두고서 혹자는 이 열병의 배후에는 악한 귀신이 자리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홍해를 꾸짖으셨다고 해서,

 

(26:11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106: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하늘과 홍해 뒤에 귀신의 영향력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열병을 꾸짖었다'는 표현은 열병을 내모는 행위 자체를 더욱 생생히 부각시키기 위해 열병을 의인화시키거나 아니면 누가가 예수의 말에 힘이 있었음을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만성 질병이었던 열병은 사람을 탈진(脫盡)시키고 매우 심약하게 만드나 환자는 치료 즉시 일어나 시중을 든다.

이는 예수의 치유 권능이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효력을 나타내었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병상에서 일어난 환자가 예수 일행을 위해 수종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의 영적 의무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새로이 영적 건강을 회복하게 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4: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해 질 무렵에 - 해가 지기를 기다려 환자들이 예수께 몰려든 것은 안식일 때문이었다.

안식일에는 어떠한 노동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환자를 운반하는 일이나 치료 행위를 행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었다.

 

때문에 안식일에 발이 묶여 환자들은 예수께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유대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녘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이다.

 

(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34: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손을 얹으사 - 원래 안수란,

 

첫째, 제사 드리는 자가 희생당할 동물에게 손을 얹음으로써 자신의 죄악을 전가시키거나,

 

 

둘째, 신성 모독자를 돌로 칠 때, 신성모독의 말을 들은 증인들이 자신들에게 임한 더러워진 인격, 죄악 등을 전가시키거나,

 

(24:14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셋째, 병을 고치는 역사를 행할 때, 예수님 혹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그 병자들에게 전가 시키거나,

 

(6: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넷째, 사도들이 사도적인 권위로써 성령이 임하지 않은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수함으로써 그들도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었음을 외형적으로 나타내는 등의 이유에서 사용되었다.

 

(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결국 안수란 공통적으로 무엇인가를 전가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이중 본문에서는 세 번째의 의미로 사용된바, 이러한 예는 예수뿐만 아니라 여러 사도들의 경우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예수께서 안수하심으로 병을 고치신 행위는 어떤 마술적인 요법이 아니라 단지 그분의 능력이 그 환자에게 전가됨을 외형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본 구절에서 예수께서 환자들에게 손을 얹은 것은 예수가 치유 능력의 근원이라는 것과 그가 병자들 개개인에게 자상하신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 더러운 귀신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예수의 정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신앙 고백적 차원이 아니며 다만 예수 앞에서 그들의 패배와 예수의 권능을 인정하는 말로 이해된다.

 

한편 간악한 귀신들조차 예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무리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은 서로 역설적(逆說的)인 대조를 이룬다.

 

복음서 기자들은 다양한 사람들, 심지어 불신자들이나 귀신들까지도 예수의 정체를 직접 혹은 간접으로 증거하고 있는데 이는 복음서들이 확고히 하고자 하는 사실 즉,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지지해 주는 폭넓은 증거 구실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분명히 별개의 사실임을 알 수 있다.

 

 

[4: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한적한 곳에 가시니 - 평행 구절 막 1:35에서는 예수께서 아직 동이 트기 전에 기도하셨다고 전한다.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께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시는 모습은 단순히 쉽게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장면이지만

여기에 예수의 사역의 비결이 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정작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기도해야 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22:39-46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예수는 언제나 기도를 하며 자신의 사역을 준비하고 하나님과의 다함없는 교제를 나누었을 것이다.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 - 이는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의 핵심적인 주제이다.

 

(8: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9: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죄인들을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구해내어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함이었다.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문제를 해결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속한 것으로 오해함으로써 왕이신 예수께 대해서도 오해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예수의 사역이 있는 곳에 함께 있었다.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하여야 하리니 - '해야 한다'는 말은 예수 사역의 필연성과 긴박성을 강조하기 위해 누차 사용되었다.

 

(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갈릴리 - 본 구절은 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이는 사본에 따라서 각각 '갈릴리'나 또는 '유대'로 표기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유대'라고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본문이 계속해서 예수의 갈릴리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NIV 난외(欄外)에서는 '유대인들의 땅'(the land of the Jews)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누가가 의도하고자 했던 것을 전달해 주려는 것 같다.

 

''(land)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고향인 팔레스틴 전부를 의미하는 말로 전통적으로 생각되었다.

 

누가도 역시 이런 의미에서 '유대'(Judea)라는 말을 사용했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광의(廣義)에서 '유대'라는 말을 쓰면 그 속에서 갈릴리가 자연스럽게 포함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셈이다.

 

어쨌든 예수의 이 첫 번째 전도 여행 기간은 대략 4, 5개월 정도로 추측된다.

또한 당시 갈릴리 지방에는 15,0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큰 마을이 200개 정도나 있었고 전체 인구수는 3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