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만남의 사역
창 18:1-33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 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유럽의 어느 나라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강이 넘쳐서 마을을 덮치게 되었습니다. 동사무소에서는 직원들이 나와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다 高地帶로 피난가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자칭 믿음이 좋다고 하는 한 사람은 이번 기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시험해 보기로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를 구해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도중에 물은 점점 불어났습니다. 먼저 피신한 마을사람들이 그를 여러 번 데리러 왔지만 그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해주셔야지 사람들이 구하러 왔을 때 따라가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지붕꼭대기까지 물이 차올랐고 결국 그는 홍수에 떠내려가다 겨우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다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원망하고 있구나, 나는 너의 기도를 다 들어 주었는데도 너는 내가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구나" 그러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언제 나를 건져주러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셨다면 제가 이렇게 병원에 누워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내가 얼마나 많이 너를 구하려 하였는데 너는 그때마다 거절하지 않았느냐, 너를 구하러 왔을 때마다 거절당한 사람이 바로 나이고, 네가 정신
을 잃고 강물에 떠내려 갈 때 너를 구한 사람이 바로 나이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직접 눈으로 보이게 나타나는 것만 인정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도움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교회를 오는 중에도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러한 만남이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돕기 원하시고 날마다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계획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만남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를 돕고 응원하고 계시는지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그의 집 문 앞에 앉아 있을 때 였습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나그네 3명이 자신의 집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 곧 달려나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모셔다가 물로 그들의 발을 씻게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그들을 대접하고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잘 대접을 받고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곧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습니다.
'나와 너'의 저자인 마틴 부버는 '모든 참다운 삶은 만남에서 비롯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의 질과 방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만남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만남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보낸 하나님의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향하여 '내 주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어떻게 처음보는 사람에게 "내 주여"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삶의 모든 부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었습니다. 적어도 나에게 찾아오고 나를 만나러 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보낸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 몇 년전 교인이 음식점을 시작한다고 해서 개업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 식당에 들어오는 모든 손님들은 다 하나님께서 보낸 하나님의 사람들이니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한 것처럼 집사님도 그렇게 손님을 대하십시
오."라고 설교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 식당의 주인은 손님들을 대할 때마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낸 하나님의 사람이고 나를 위해 오셨고, 그래서 잘 대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잘 대접하였답니다. 그 결과 그 음식점은 늘 성황을 이루는 소문난 음식점이 되었습니다.』
주님안에서의 만남은 결코 우연한 만남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이런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로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보자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달려가서 친절하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씻을 물을 주고 편히 쉴 곳을 제공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만남을 아름답고 유익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이웃이나 친구의 마음을 기쁘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친구의 이름을 먼저 기억하고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할 때 마음의 문은 열립니다. 그럴때에 우리의 만남은 복된 만남이 됩니다.
세째로 하나님은 만남을 통하여 우리를 돕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천사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대접을 받고나서 그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에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가정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고 생리까지 멈춘 상태이기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 누구를, 어떻게 만나, 어떻게 변화되어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 주십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먼저 사랑하고 섬기고 배울 것은 본받고 그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결심하고 노력하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들이기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큰 힘이 되며 우리에게 큰 도움으로 보답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막 3:1-5).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의 어느 조그만 마을의 교회 재건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전쟁 중 그 마을의 교회에 폭탄이 떨어져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폐허가 된 대지에 벽돌로 다시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현관앞에 세워두었던 예수님의 동상은 많이 파괴되었고 손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온 교회는 예수님의 동상을 잘 만들어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목사님은 기도하는 가운데 동상의 손을 고치지 말라는 지시를 하고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이 동상의 예수님은 손이 없으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의 손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일하신다. 우리는 곧 예수님의 손이
되어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예수님의 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손을 기다리는 곳이 많습니다.
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주님의 손.
② 병든 자를 고치시며 낫게 하시던 손.
③ 굶주린 자에게 빵을 먹이시던 주님의 손.
④ 죄지은 여자에게 용서를 베풀던 손.
⑤ 불쌍한 고아나 과부를 위로하시던 주님의 손.
⑥ 죄악의 깊은 밤에서 허덕이는 인류를 위하여 밤이면 밤마다 감람산 바위밑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의 손.
⑦원수들의 손에 붙들리면서도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하시던 손.
⑧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손.
이 손을 주님은 우리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이 손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합니다. 우리의 손이 섬김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병든 자를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굶주린 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죄악가운데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며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 회당에 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안식일날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모인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한 쪽 손이 마른 사람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를 많은 사람들 한가운데 일어서게 하고는 그의 마른 손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손이 말랐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성장이 되지 않아 자라지 않은 손을 말합니다. 이 손은 신경도 마비가 되어서 제대로 손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을 펴야 할 때 제대로 펼 수가 없습니다. 오무려야 할 때 오무릴 수 없고, 잡아야 할 때 제대로 잡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손마른 자의 형편입니다.
분명히 손은 내 지체의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하면서 삽니다. 나는 이렇게 하기를 원하는데 제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우리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히려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들만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손마른 자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인 사도 바울조차도 이렇게 고통가운데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9-20)
사도 바울도 자신은 선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오히려 원치 않는 악한 일들만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십니다. 항상 바르게 옳게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우리를 하나님은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오늘 이 손마른 사람처럼 완전히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바로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때 우리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1.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회복시켜주십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예배드리는 자들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손마른 사람은 안식일 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회당에 나와 있었습니다. 비록 손은 말랐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기에 그는 회당으로 나왔습니다. 이 세상 어떤 일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기억합니다. 한나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없다는 것은 모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태가 닫혀있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이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다 해봤습니다.
귀한 약도 먹어 봤습니다. 하지만 그의 출산능력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봤지만 이 세상 어떤 것도 그녀를 회복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한나는 자신을 회복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많은 실패가운데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한나는 절기 때만 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내가 회복되면 예배드리러 나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몸이 회복되지 않아도 나갔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그녀는 예배드리러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이런 면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회복시켜 주셨고 그의 몸을 통하여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태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肉身이 병들면 병을 고치러 병원에 갑니다. 사람들은 車가 고장나면 정비소로 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온전케되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아와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우리는 바로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자이시기에 예배드릴 때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배에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에는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2. 예수님은 한가운데 일어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손마른 사람을 회당의 "한가운데에 일어서라"고 말합니다. 지금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가운데로 나아와서 그곳에서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완전하게 다 나았으니 한 가운데 나와서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그의 손은 회복되지 않았고 온전해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이 많은 사람들 "한가운데서 일어나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키십니다. 그러나 손마른 사람 입장에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것, 그것도 지금 자랑할 일이 많아서 서는 것이 아니라 제일 불편하고 감추고 싶은 오그라든 손이 불편해서 늘 주눅들고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우뚝 일어선다는 것은 용기와 확신이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확신과 믿음과 용기가 필요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믿음과 용기의 사람에게 능력을 회복 시켜주고자 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위대한 사람들은 다 처음에는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다 불가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기억합니다. 그는 80세의 노인으로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먹이는 목동으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시 세계를 다스리고 있던 애굽의 바로왕 앞에 가서 서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늙은 목동은 자신이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역사의 중앙무대에, 곧 바로 왕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힘도 없는 그의 손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여 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적군의 대장 골리앗 앞에 서게 됩니다. 그가 능력이 있어서 섰습니까? 그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골리앗은 방패와 창과 단창으로 무장하고 나아왔지만 다윗은 오직 돌 하나를 던져서 승부를 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과연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를 좀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하여 모세나 다윗처럼 하나님이 명하시는 역사의 중앙 무대에 서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추어진 능력도 회복을 시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손마른 자를 회당 중앙에 일어나 서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원하던 원치않던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의 중앙에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변두리에서 쪼막손을 움켜쥐고 운명을 비관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부족해도 미래를 꿈꾸며 역사의 중앙무대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의 부족하고 부끄러운 것을 뒤로 숨기지 마시고 예수님 앞에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 앞에 바로 서십시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능력자로 만들어 역사의 중심에 세워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변화된 내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3. 예수님은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손을 내밀라는 말은 손을 펴라는 말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손은 오그라진 손이요 병든 손입니다.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움추러 들고 깊은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바로 손이 마른 사람입니다. 할 수 있는데도 해 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도 쪼막손과 같이 회복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친구를 예수께로 인도하도록 손을 펴라는 것입니다. 창19장16절에 나오는 두 천사는 롯이 소돔성에서 지체하자 롯의 손과 그의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며 성 밖으로 이끌어내 구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 친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손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웃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손은 천사의 손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꼭 회복되어 하나님께 축복받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세째로는 선한 일에 손을 펴야 합니다.
좀 더 선한 일을 행하고 주의 일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일생동안 선을 베풀거나 사랑을 베풀지 못해서 오그라던 손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구제할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 손은 바로 선행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손을 펴서 많은 선행을 베푸시길 바랍니다.
네째로는 주님을 붙잡기 위해 손을 펴야 합니다.
우리손이 일생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있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붙잡는 손, 그 손은 바로 기도하는 손입니다. 세계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다 기도의 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애쓴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면 우리는 강하고 능력이 있고 높은 곳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기도하는 손과 함께 역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들 모두 주님의 은혜를 받고 여러분의 손으로 부지런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선행을 베풀므로 지금은 부족하지만 이제 곧 역사의 중앙무대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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