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거듭난 삶 2012. 4. 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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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행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한국의 무디(D. L. Moody)라 불려지는 이성봉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자주 사용하던 예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기차 레일을 베고 잠자던 술 주정뱅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술주정뱅이가 술에 만취하여 기차 레일을 베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급행열차가 격한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달려 오고 있었지만 그 술꾼은 정신없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자비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고함을 쳤습니다.


 "여보시오, 기차가 옵니다. 일어나시오!"


 그러나 그 술주정뱅이는


 "기차는 무슨 기차, 우리 집 아랫 목이야"하면서 돌아눕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자비로운 사람이 달려가서 술주정뱅이의 다리를 끌어 철둑 아래로 밀려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술주정뱅이는 떽떼굴 떽데굴 굴러갔으나 무정한 기차는 정거를 못하고 그 자비로운 사람의 몸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목이 잘리고 다리가 끊어지고 팔이 잘리고 창자가 나와서 즉사했습니다.


 기차는 그제서야 정거를 한 후 기관수와 차장이 달려와서 머리와 팔 다리가 잘려 나간 그 사람의 시체를 모아 놓고 있었습니다. 술주정뱅이는 그제서야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하, 기차가 정거를 하였구나. 웬 사람이 저렇게 많이 둘러싸고 있는고. 누가 또 기차에 치었구먼. 아이구, 조심을 해야지. 어디 가서 구경이나 좀 하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이구, 끔찍해라. 저 사람 왜 저렇게 끔찍하게 죽었소?"


 그 때 한 사람이 술주정뱅이의 따귀를 후려갈겼습니다.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이 사람은 이렇게 죽었어."


 그러나 술주정뱅이는 오히려 대들었습니다. 왜 생사람을 잡느냐고 덤볐습니다. 그 사람이 조심하지 않다가 변을 당했는데 왜 잠자고 있던 나 때문에 죽었다고 나에게 죄를 덮어 씌우냐고 대들었습니다.


 그 때 또 한 사람이 술주정뱅이의 따귀를 다시 후려갈겼습니다.


 "이 자식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네가 여기서 술을 쳐 먹고 기차 레일을 베고 잠자고 있는 것을 아무리 소리 질러 깨워도 안 깨니까 이 사람이 너를 구하러 들어 갔다가 너는 구하고 자기는 기차에 치어 죽은 것이야. 네 놈이 이 사람을 죽인 것이야. 네가 이 사람을 죽였어"


 그 제서야 술주정뱅이는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패역한 죄인들을 살리시려고 죄인들 대신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야기라고 이성봉 목사는 역설했습니다.


 "기차 레일을 베고 잠자는 사람은 누구인고?

 설교를 하는 이성봉이고 여기 앉은 모든 사람들이요.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요. 이 이야기는 죄악의 술을 마시고 취생몽사로 허영의 꿈만 꾸는 죄인들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자가 33년 동안 외치시다 못하여 우리 대신, 멸망 받을 우리 대신에 죽으신 것을 말하는 것이요.


 성자 예수 그 머리에 가시관 쓰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셨네. 이와 같이 넓고 크신 사랑에 아직 감복 않는 자야 사람이랄까."



2. 베드로의 이야기


 오순절 날 사도 베드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느니라"(23,24).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


 이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너희가 죽인 예수를 .... "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그 당시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아니 나를 지적하는 말씀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너희"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이 "너희"라는 말입니다. 여기 "너희"라는 말은 우선적으로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 이전에 살았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직접 예수를 잡아서 죽였고 그 전에 살았던 패역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원인적(原因的)으로 예수를 죽게 했고 너희가 결과적으로 예수를 잡아서 죽였다는 말입니다.


 여기 "너희"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아담의 후손들 모두를 가리킵니다.

 여기 "너희"는 50여년 전에 설교하셨던 이성봉 목사님도 가리키고 지금 말씀을 전하는 저도 가리키고 지금 말씀을 읽고 계시는 당신도 가리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우리가 예수를 죽였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그 후손들의 불순종과 반역의 죄악이 예수를 죽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고, 우리 소위 명목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반 십자가적 거짓과, 위선과 탐욕의 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베드로의 이 선언은 유대인과 헬라인과 로마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싸 잡아서 정죄하는 유죄판결의 선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정죄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기차 레일을 베개삼고 잠자던 술주정뱅이 같은 인간이 아무리 대들고 변명해 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유죄 선언 가운데는 소망을 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그저 죽고 말았다면 모든 인류는 적막한 좌절과 어두움에 쌓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죽인 예수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희망의 불빛이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술주정뱅이를 살리고 대신 목과 팔과 다리가 다 잘려서 죽은 사람이 누군가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목과 팔과 다리가 다시 붙어서 살아나서 일어났다면 술주정뱅이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 엎드려져서 엉엉 울면서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뜨거운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술주정뱅이의 가슴에 일말(一抹)의 소망의 빛이 비쳐졌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선언은 그와 같은 선언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을 싸잡아서 정죄하는 유죄판결의 선언인 동시에 유죄 판결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 준 소망의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그런데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 선언의 의미를 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 자기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즉 예수는 자기의 죄 때문에 징벌을 받는 것이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또는 인류의 죄 때문에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살아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가 로마 제국을 무시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된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인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게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만일 네가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이것이 인류의 비극이고 인류의 불행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 중의 어떤 분이 예수의 죽음의 이유도 모르고 예수의 부활의 의미도 모른다면, 내가 예수를 죽였다고 느끼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한다면 여러분들도 불행한 사람이고 비극적인 사람이고 무지한 사람입니다.



3.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는 말을 그대로 순수히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즉시 "어찌할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죽였으니 어찌할꼬?"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유죄 선언 가운데는 소망을 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저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다"는 말도 그대로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으니,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모두들 떨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자기의 죄를 인정할 때 애통하는 마음과 뉘우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소망의 빛이 비추일 때 죄인은 더욱 더 뜨겁게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삼천 명이 모두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며 애통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3천명은 자기들이 예수를 죽인 장본인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 비극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3천명은 또한 소망의 빛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이 실패의 역사를 성공의 역사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멸망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3천명은 죽음의 메시지와 함께 생명의 메시지를 받아 드렸습니다.

 

 이제 베드로의 답변이 주어 졌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 날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침례란 예수님과 연합하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하고 예수님의 살으심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그 날의 무리들로 인하여 이 땅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


 오늘 이 말씀을, 이 베드로의 선언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과 선언으로 받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를 죽인 죄인입니다.


 어찌할꼬?" 라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부활의 예수님과 다시 연합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부활의 예수님을 얼싸 앉고 주님과 연합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들의 삶을 변화 시킵니다.

 죄악과 마귀와 지옥의 세력을 깨트립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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