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계절
(마태 1:18-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벌써 11월이 끝나가고 12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카렌더가 덩그렇게 벽에 걸려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해도 며칠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는 한편 지나간 한 해 동안에 허락되었던 귀중한 순간들을 무의미하게 허송하여 버리지나 않았는가 하는 제 자신에 대한 아쉬움과 자책감이 앞서기도 합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지금은 대강절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이 대강절을 다른 말로는 대림절, 또는 강림절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대강절은 한마디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를 말합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 성스러운 성탄을 맞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 성탄은 지금부터 약2000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예수라는 한 아기가 탄생하였다는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는데 만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한 역사적인 사실이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왔으며 또 현대적으로 무엇을 가져오고 있는가 하는 데에 더 심오한 뜻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는 그 아기예수가 지금도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역사 하시는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그의 뜻을 따르는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그저 선물이나 받고 흥에 겨워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성탄절은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기다리는 날입니다. 그래서인지 약삭빠른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큰 돈을 벌기 위해 용품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미리 준비합니다.
그러나 정작 믿지 않는 사람들은 캐롤 송이 들려야, 문방구에서 카드를 팔아야,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서야
‘와! 이제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구나’하며 그제서야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가 먼저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이 아니라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가, 그리고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다시 한번 기다리며 그 날을 준비하는 마음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의 주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맞는 우리는 이 날의 의의를 살려서 이 날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의 마음자리 가장 귀중한 곳에 모시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크리스마스는 무의미할 뿐더러 성탄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사람들끼리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크리스마스는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아닙니다. 참된 크리스마스 행사는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일과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성탄절 날 들리는 새벽송의 찬양소리와 술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주정하며 떠드는 소리의 차이점을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오히려 성탄절은 경건해야 어울리는 절기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구체화되고 현실화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사랑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참 크리스마스를 지키려는 신자들의 자세일 것입니다.
아이들의 도덕 교과서에 보면 불교의 근본이념은 ‘자비’이고 기독교의 근본이념은 ‘사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의 의미는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하튼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보는 눈이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의 대부분이 사랑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느끼지 못하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남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는 잘못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축복된 계절에 우리도 주는 계절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사랑하면 할수록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아까워서 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아까워하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경우에는 주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이요 축복이요, 만족입니다. 주고 나서 아깝지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경제학적 원리에서 보면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고 나면 나는 그만큼 적어지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주고 난 다음에 내가 더 풍부해졌다고 느끼게 되고 더 충만해졌다고 느껴집니다.
이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주면 줄수록 나는 기쁨과 풍족감을 느낍니다.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극치에 도달하면 자기의 목숨까지도 바치게 됩니다. 이것이 참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것처럼,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지극히 작은사랑의 행위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결코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조그만 성의를 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로부터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작은사랑이 모아져서 큰사랑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거룩하신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셨습니다.
성탄은 이러한 예수님의 강림의 목적과 정신을 되살려서 모든 크리스천들이 사랑의 사도로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탄은 사랑의 계절이요, 그러기에 사랑을 주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개최된 성탄절 준비 강습회에서 성탄절 장식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강사가 산타클로스를 교회의 성탄절 장식에서 제거해야 된다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성탄절하면 어린 아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무엇을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타클로스를 더 기다리는데까지 되어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받고 카드를 받음으로 신이 나고 즐거워하는 계절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족합니다.
이제는 받기만 하는 성탄이 아니라 주는 성탄이 되어야 하겠고 그래야 비로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지키는 성탄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탄의 정신입니다.
이런 전설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오르실 때 제자들에게 돌을 한 개씩 들고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저마다 돌 한 개씩을 들고 갔습니다.
가롯 유다는 계란 만한 것을 들고 올라가는데 그 뒤를 따르는 베드로는 큰 돌을 들고 오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그것을 보고 비웃으면서
"무엇 하려고 그처럼 힘들여 바보같이 무거운 돌을 가지고 가느냐?"고 하면서 자기의 계란 만한 작은 돌을 보여주며 현명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산에 올라와서 얼마 있다가 점심때가 되어 주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원을 지어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올라온 돌을 각각 자기 앞에 내어놓으라고 하셨고, 제자들 앞에는 작고 큰 돌들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본즉 제자들 앞에 놓인 돌들이 모두 떡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자기가 가지고 온 것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유다 앞에는 한 입 밖에 안 될 계란 만한 떡덩이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앉은 베드로 앞에는 큰 물동이만한 떡덩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그 떡을 떼어서 가롯 유다를 비롯해서 다른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오늘과 같은 강림절처럼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는 기다림과 준비함이지만 준비해야 한다는 것과 있는 것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탄절을 준비하며, 올해의 마지막 한 달, 12월을 사랑의 계절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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