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장 37절-52절)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여기 댄 배이글리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려 주는 좋은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달라스로 가는 비행기의 마지막 탑승자는 한 부인과 세 명의 아이들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 제발 내 옆에는 앉지 말아야 하는데! 난 할 일이 많아요. 비행기를 내리기 전에 중요한 서류를 검토해야 한다구요!'
그러나 어느 순간에 열두살짜리 여자 아이와 열살짜리 남자아이가 내 무릎을 타고 건너기 시작했고 부인과 다섯 살짜리 아이는 뒷좌석에 앉았다. 앉자마자 시끄러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거의 매분마다 남자아이는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어디쯤 왔어?' 그러면 여자아이 는
'시끄러워, 입 좀 다물지 못해?'라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들은 도무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념이 없단 말이야.' 속으로 내가 처한 곤경을 원망했다.
"그런데 나의 마음속에 분명하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내게 말했다.
'그 아이들을 사랑해 봐.' 나는 스스로에게 반박했다.
'이 아이들은 아무도 못 말릴 개구쟁이들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구.' 그러나 內面의 소리는 더 분명하게 들여왔다.
'그 아이들이 너 자신의 아이들인 것처럼 사랑해 봐.'
끝없이 반복되는 '지금 우린 어디까지 왔어'라는 질문에 나는 마침내 읽으려던 서류뭉치를 치우고 기내 잡지를 빼어 지도를 보여 주면서 아이들에게 비행기가 가고 있는 노선을 설명해 주었다. 15분 단위로 거리를 나누어 비행거리를 설명하고, 언제쯤 우리가 달라스에 도착하게 될 것인지를 계산해 주었다.
"잠시 후에 아이들은 자기들은 지금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만나러 시애틀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말해 주었다. 대화 중에 아이들은 비행기와 항공 기술, 그리고 과학 등에 대해, 그 리고 인생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에 대해 질문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 나의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밀려 곧 착륙할 때가 되었다.
"착륙 준비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지금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남자 아이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돌아가셨어요.' 뭐라고 할 말을 잊고 있다가 겨우 한 마디 던졌다.
'참 안됐구나' '네, 그래요. 저는 슬퍼요. 그러나 제가 정말 걱정되는 건 제 막내 동생이에요. 우리는 괜찮지만 저 애는 정말 힘이 들꺼예요.'
"나는 문득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이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슬픔 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살고 사랑하고 성숙해야 하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작별인사를 하자 남자 아이가 '비행기 안에서 교사'가 되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도 아이들에게 나의 교사가 되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내게, 중요한 것은 서류 검토가 아님을 일깨워 준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중요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고, 그것도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일터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직장 상사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해야 하고, 동료들과의 대인관계도 원만히 해야 하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돈을 모아두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들 자녀들보다 내 자녀들이 밑돌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하고, 그래서 이것 저 것을 가르치면서 흥분하기도 해야 합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많은 중요한 일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이것이 훨씬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그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기에 이 선택과 결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인생 의 연륜이 익어가면 익어갈수록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집니다. 그래서 어쩌면 결정이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는 서류 검토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서류 검토 때문에 주어질 더 확실한 수당보다 중요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는 중요한 일이 결국에는 차선의 것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가장 먼저 그곳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이 여러분의 가장 큰 목마름이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에 목말라 하고 계십니까? 돈입니까? 지위입니까? 자녀입니까?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여러분, 이 구절은 참 독특한 구절입니다. 이때의 명절은 초막절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명절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지날 때 거주할 곳 없이 나그네로 지내면서 지붕 없는 초막의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지키는 명절입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의 삶이었기에 언제나 목마름으로 고달픔과 어려움들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주신 것을 기억하는 때입니다.
물을 기억하는 절기, 아니 목마름을 기억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수의 강물에 대한 이야기를 이때에 꺼내신 것은 가장 적절한 것입니다. 목마름을 기억하고, 또 그 목마름의 해갈, 갈증을 씻어주었던 것을 기억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의 이야기를 좀 더 드릴까요? 이 절기 동안 사람들은 성전에 종려나무 가지와 버드나무 가지를 가지고 벽과 지붕을 만들고 큰 제단 주위를 돌면서 행진을 했습니다. 그때 한 제사장이 황금 포도주 주전자를 들고서 실로암 연못으로 갑니다. 가서 거기에 물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이사야 12장 3절 말씀을 크게 낭송을 합니다.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것을 낭송하는 동안 제사장은 수문 (The Water Gate)을 지나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금(金) 주전자의 물을 하나님께 제물로 제단에 붓는 것입니다. 광야의 반석에서 솟아났던 물을 기억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절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면,
누구든지 갈증을 느끼면 나에게로 오라!
누구든지 광야의 목마름이 있거든 내게로 오라.
와서 그 목마름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적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혹시 목마름은 없으십니까? 우리의 지금 인생살이가, 아니 우리의 신앙생활이 너무 메말라 목마르지는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목말라야 합니다. 목이 말라야 갈증의 해갈을 찾아 나서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것에 목이 말라야 밤이 ##47583;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 목이 말라야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갈급해야 예배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에서 그리워져야 하고 읽고 싶어져야 합니다. 목말라야 합니다. 여러분, 목마르지 않는 삶도 아름답겠지만 목이 말라서, 너무나 갈급해서 반석의 물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목말라하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목말라 할 줄 모르면 그 인생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메마른 것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엄청난 비극은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직까지도 서류검토를 더 목말라하고 있다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라는 말입니다. 아직 까지도 돈에만 목말라하고 있다면 얼마나 메마른 인생이겠습니까?
여러분, 자녀가 돈보다 소중 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돈에만 목말라 하는 것입니까? 가정에 사랑과 용서와 이해가 돈보다 더 귀중합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아내와 남편을 빈정대며 살아야 합니까?
더 중요한 것에 목말라 하십시오. 더 소중한 것을 그리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마름이 느껴지면 그것은 대단한 은혜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사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입니다. 자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신앙입니다. 남편과 아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신앙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가정과 경제적인 넉넉함이 아무런 소용 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 다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보다, 자녀보다, 아내보다, 남편보다 신앙이 더 소중한 이유는 신앙이라는 것은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에 관한 신앙이 우리에게 확고하게 서 있으면 우리는 가정을 지킬 줄 알게 됩니다. 남편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아내를 미워하면서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새롭게 되고 싶어 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다루었던 자녀를 붙들고 기도하면서 울 줄 아는 부모가 됩니다. 자녀의 문제가 나의 부족한 사랑과 관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솔직하게 나의 부족을 말하고, 나의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빌 줄 아는 힘이 신앙을 통해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있기 때문에 나태해지고 싶어도 가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몸을 아끼지 않고 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도 함부로 쓸데없는 일에 낭비할 수 없어요. 담배나 술 보다 자녀가 더 소중한 줄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에 목말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마르십니까? 아니 아직도 전혀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지는 않으십니까? 목말라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길어오고 싶지 않으십니 까?
그런데 이 초막절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절기입니다. 바로 추수감사의 절기입니다. 모든 것이 풍성한 기쁨의 때라는 것입니다. 모든 수확을 거두어 어느 때보다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절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에 예수님께서 서서 크게 외친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누구든지 영혼의 목마름이 있거든 나에게로 와서 마시라!"
여러분, 가장 풍성한 계절에 무슨 목마름이 있겠습니까? 모자람이 없는데 무슨 갈증이 있을 수 있습니까? 좋은 집도 가지고, 멋진 자동차도 굴리면서, 겉으로 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데 무슨 목마름이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꾸만 크게 외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누구든지 갈급함이 있거든 나에게로 오라."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인생이 모자람이 없는 인생입니까? 목말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인생입니까? 풍성해서 아무것도 목말라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그러나 자꾸 크게 외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우리 가슴의 귀로 들어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혹시라도 잘못된 배부름과 갈증 해소의 삶은 아닐까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자람이 없는 수확의 계절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에는 완전히 메말라 있는데도 모르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것을 주님께서 외치시는 것은 아닐까요? 풍성한 수확의 절기가 가장 소중한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것 없는 겉껍데기 풍성함이라면 우리는 목마름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풍성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생명의 신앙을 물어보십시오. 과연 거기에도 목마름은 해갈되었는지 확인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짜 생수가 아닌 것으로 목을 식히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실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풍성함을 누리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풍성함이 가짜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진짜로 갈증이 해소된 풍성함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목이 마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마르면 누구에게로 가야합니까? 대답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지" 않으면 절대로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달려와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외에는 따로 달려갈 때가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44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갈한 자에게 물을 주시는"분 이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목마른 영혼, 메마른 영혼의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실 분이 그리스도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1절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메마른 땅이 물댄 동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로 달려가서 마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38절을 보실까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주님께로 달려간다는 말의 뜻이 보이시지요? 마신다는 말은 "믿는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은 믿음 외에는 절대로 해갈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생명입니다.
이 신앙을 벗어나면 죽음이고, 반드시 또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모 든 해갈은 부분적입니다. 전체일 수 없습니다.
수가성의 여인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마셔도 마셔도 목마른 것이 되지 않으려는 여인의 외침을 기억하시지 않으십니까? 믿음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해갈을 가져다주는지 좀 더 정확하게 살펴보실까요? 38절을 다시 읽으실까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해갈입니다.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면 "그 배에서" 나옵니다.
헬라어의 "배-코일리아"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만족이 피상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장 깊은 곳에서 만족함을 누리는 것이고, 가장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해갈 이라는 것입니다. 완벽한 인격에서 느끼는 만족을 뜻합니다. 진정한 만족입니다. 만족이 부분적이지 않고 전체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생명의 강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다른 모든 만족이 없어진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 흘러가게 된다는 축복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생명수의 강-성령의 물이 흐른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줄 아십니까? 에스겔 47장 9절을 보면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여러분, 생수의 강이 흐르면
첫 번째 축복은 "번성함의 축복"이 일어납니다.
고기가 심히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윤기가 흐르는 것입니다. 찌들린 삶이 아닙니다. 생수의 강을 마신 사람은 쓸데없는 것 때문에 우울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참된 번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축복은 이 강이 흘러가면 모든 것이 "살아나는 축복"이 일어납니다.
이 생수가 우리 삶에 들어오면 삶의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일을 해도 그 일이 살아있는 일이 됩니다. 가정을 살리는 일이 됩니다. 자녀에게 힘을 공급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의미있는, 목표가 분명한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여러분이 반복하시는 그 일에도 생명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런 생수의 강물을 마시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이런 생명의 물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외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그 중에 가장 안타까운 사람 얘기를 드릴까요? 대제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45절에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를 잡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누리는 길을 보여주어도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 땅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비참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46절과 47절을 보면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하속들입니다. 군병들이지요. 이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수의 강물에 대해 미혹이 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여기 미혹이라는 말은 "설득당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되어 거기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49절 말씀대로 '저주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생수의 강물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되어서 반해버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생명이 흐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목말라 하십니까? 생수의 강물에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 달려 가십시다. 그리고 값없이 생수의 강을 마시게 되는 은총을 누리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