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거듭난 삶 2016. 4. 1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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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셨으니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본문은 하나님과 성도와 관계를 선한 목자와 사랑스러운 양의 모습으로 묘사한 생명의 시입니다.

 

'배첼' 시편을 가리켜

 

'어두운 곳에서 수줍은 듯이 노래하는 평범한 빛깔의 깃털을 가진 작은 새이지만 아름다운 선율로써 세상에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나이팅게일 시편'이라고 찬사를 했습니다.

목자는 양을 초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며 이리와 같은 야수들의 공격에서 양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양으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도록 지켜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목자와 삯꾼 목자를 구분하실 삯꾼 목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버리고 달아나지만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11-13).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비유하심으로써 자기 백성과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비유의 성격상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양육의 원리에 치중되었다면, 목자와 양의 관계는 보호 또는 인도의 원리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자신이 직접 목자 생활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본서를 지었으므로 본문은 더욱더 생동감과 현장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詩에서 목자 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본문을 통하여 알아보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우리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1. 보호하시는 목자입니다.

 

고대 팔레스틴 지방에는 이리가 들에서 꼴을 뜯고 있는 양들을 습격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심한 경우는 사자나 곰이 습격하여 목자가 거의 손을 없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사자나 곰의 습격을 받았으나 야수들을 물리치고 양을 보호했던 과거를 사울 앞에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삼상 17:3-35).


다윗은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쳐서 이길 수가 있었으며 외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있었던 것입니다.

 

양들을 눕게 하고 쉬게 하며 긴장을 풀게 하고 평화스럽고 안정하게 하며 번성하도록 하여 주는 것은 목자만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받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실 인생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만날는지 모릅니다. 언제 무슨 회오리 바람이 나를 덮칠지 모릅니다.

 

이때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사람은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4:8).

 

우리가 마음 놓고 편안히 쉬는 것은 이런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프레드릭 마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시는 인간의 깊은 슬픔을 잊게 하였고 가난한 자를 위로했고 낙심한 군대에 격려의 노래가 되었고 병자의 마음을 위안케 했다. 죄수를 방문한 천사처럼 사슬을 끊고 자유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노예를 주인보다 자유롭게 하였다. 순례자의 노래가 되며 마지막 하나님 품으로 날아가는 영원한 음악이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만날 있습니다. 그러나 요동하지 않습니다. 환난보다 크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크신 자의 안위하심을 깊이 생각하므로 은혜가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인도하시는 목자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그것을 충족시킬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목마른 양떼를 물가로 인도하는 목자와 같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우리 영혼의 갈급함을 미리 아시고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는 말씀과 성령 가운데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 17: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37-38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또한 배고픈 양떼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목자와 같이, 세상에서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우리를 참된 만족과 축복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길을 알지 못해 해메이는 양떼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목자와 같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 길과 다녀야 곳을 미리 아시고 계시며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므로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에 묵묵히 따라야만 합니다.

 

 

1) 지팡이에 의한 인도

 

목자에게는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이것은 능력과 인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은 지팡이를 가지고 아침에는 푸른 초장으로 그리고 햇볕 뜨거운 오후에는 잔잔한 시냇가로 시원한 그늘로 양들을 인도했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인도해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로 백성들을 죄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14:6). 성도를 인도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주의 말씀은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2) 성령으로 인도하심

 

성도를 온전하게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을 인도하십니다( 16:13).

그리고 성령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3:35),

권능을 채워 주시며( 3:8),

거룩하게 하십니다( 15:16).

 

위로하시고( 9:31),

기쁨을 주시고(살전 1:6),

소망을 갖게 하시며( 15:13),

교제하게 하시고( 2:1),

자유케 하심으로써(고후 3:17) 성도의 전반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적지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3. 목자는 양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심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사는 방법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자, , 늑대처럼 싸워서 이김으로 사는 동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열심히 일함으로 사는 소나 , 나귀가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없이 목자의 보호를 받으며 놀이하며 사는 양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하시었습니다.

 

짐승들이 사는 방법이 달라도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에게도 부족함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살펴 주셨고 방향을 설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았고 보이지 않은 손과 능력이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은 옛날부터 유목민으로 목축에서 기원된 백성이었습니다.

 

성서에는 아담의 아들 중에 타락한 '가인' 농부였고, 이스라엘 계통의 조상인 '아벨' 목자였다고 합니다.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목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간 헤맨 생활도 유목의 생활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랜 유목 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고 목자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목자와 양과의 관계도 익숙히 알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양이 필요로 하는 풀과 물을 따라 끝없이 유랑하는 생활을 통해 그들의 장막이 발달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목축을 하는 아랍인들은 현대식 주택보다 장막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목양 민족의 오랜 배경에서 탁월한 목양지기였었던 다윗은 그의 익숙한 체험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체험을 노래로 표현을 것입니다.

 

 

4. 자기 양을 아는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구체적으로 압니다. 실례로 주님은

 

"목자가 양떼를 우리 안에서 불러낼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10:3)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는 성도된 우리들 사람 사람의 이름과 성격과 그의 장단점을 아십니다.

 

그가 괴로워하는 일도 아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139:2-4).

 

주께서 이처럼 우리를 아시는 까닭은 우리의 장부를 지으시며 모태에서 우리를 조직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39:13).

 

그가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를 참으로 아시고 도우시는 선한 목자이신 분이십니다.

 

1) 연약한 것을 아십니다.

 

양은 자기 방어 능력이 약합니다( 5:8).

 

그래서 제자들을 전도 사역의 길에 내어 보내실 때에 주님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10:16)라고 염려하신 있습니다.

 

양으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쉽습니다.( 3:12; 고후 4:7; 삼하 11:2-5).

목자를 배반하기 쉽습니다( 106:7; 26:50-72).

기진하여 길에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15:32).

질병에 약합니다( 8:16-17).

 

때문에 목자 없이는 혼자 살아갈 없습니다.

선한 목자는 연약한 양의 완벽한 보호자가 되어 줍니다( 34:4).

 

2) 목자 없이는 고생하며 유리함을 아십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끊임없이 좇아오는 무리를 보시고 주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여 유리함이라"( 9:36).

 

양은 목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유리하며 고생하여 쓰러집니다.

 

그래서 양으로 비유되는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는 그의 사명이 다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간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27:17).

 

에스겔 선지자는 목자 없는 양떼의 처참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도다"( 34:5).

 

그러기에 주님은 비록 십자가의 죽음에서 제자들이 그를 버리고 떠났으나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에게

 

" 양을 먹이라"( 21:15-17)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혼이 곤고하여 안위 받지 못하고 유리할 우리를 찾아와 돌보십니다.

 

그래서 선한목자 되신 예수는 오늘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고 돌보십니다.


 

5.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입니다.


 

여기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했습니다.

 

주님은 양들을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의미있는 말을 하나 소개합니다.

 

어느 나그네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이에 '공자'

 

"내가 무엇이라 하였던고 삼강오륜도 몰랐더냐?" 나무라면서 혀를 쯧쯧하며 지나갔고.

 

'석가모니' 죄인을 향하여 불쌍한 눈으로 동정을 던지며 이렇게 합니다.

 

"인생은 그런 거야 生老病死 苦生 인간 무상한 것이야.

운명이니 어찌하겠나 前生 因果 그런 것이니 잊어버리고 자리에서 눈이나 감고 자신을 깊이 생각해 보아라." 걱정하며 돌아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덩이에 빠진 죄인 옆에 지나가는 선생이 계셨는데 바로 선한 목자 우리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는 아무 변론을 하시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친히 구덩이에 들어가서 건져 데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공자는 죄에 타락한 자를 책망하는 율법 선생이 되며, 석가모니는 인간 고해 인생이 동정자는 될지언정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구세주는 못됩니다.

 

1) 양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이미 양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3:16).

 

여기에는 너무나 진한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가 피차에 깊이 아시며 없으신 사이인 것처럼 목자이신 주님과 우리 양떼들이 그런 사이라고 하셨습니다( 10:14-15).

 

때문에 "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노라" 하셨습니다.


사랑하기에 것이기에 목숨을 바쳐 살려 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알고 사랑하듯 선한 목자 예수는 그의 양떼를 이토록 소중히 여기시어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어 아직 울안에 들지 못한 이방의 영혼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10:16).


지금도 잃은 양을 찾으시는 주님의 목소리는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여 멀리 퍼지고 있습니다.

 

2) 장래 소망을 위해서입니다.

 

선한 목자로서 예수님은 그의 양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분이 되었습니다( 10:9).

 

이젠 목자로서( 13:20-21) 그의 양떼를 위해 죽으셨을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생명을 그의 모든 양떼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주어집니다. 장래의 기업이 있게 하셨습니다(벧전 5:4).

비록 우리는 연약한 양떼이나 선한 목자 예수를 따르고 그분의 품에 안길 있게해 주셨습니다.



6. 병들었을 돌아보시는 목자

 

( 34:16) " 잃은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했고

 

( 15:26)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했습니다.

영혼의 병과 육체의 병을 함께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말씀으로 영원을, 구원을 능력으로는 육체의 구원을 이루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은 ( 12:20)에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1)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목자

 

구약에서 갈대는 연약한 것을 상징합니다(왕상 14:15; 왕하 18:21; 19:6).

 

'갈대' '연약한 인생' 의미합니다. 거기에 '상한 갈대' 했으니 '많은 상처를 받아 연약해진 인생' 말합니다.

 

지구상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물질,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성적으로, 육체적 병으로 상처를 받고 삽니다. 이같이 갈대 같은 인생들입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약자를 밟고 비비는 세상이요 상한 갈대를 꺾어 버리는 세상이지만,

 

예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을 사랑하여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 도우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상처 받고 소망 없이 실의에 빠지고 용기를 잃어버려 번민하고 괴로워하고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도우십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주의 종들과 주의 말씀을 통해서 도우십니다.

 

2)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여기에 '꺼져가는 심지' '양심의 빛을 잃고 타락해 가는 사람' 말합니다. '생명의 빛을 잃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꺼져가는 심지 같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

'마태' '삭개오' 같은 사람,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던 많은 여자 막달라 마리아같은 사람,

죄로 인하여 38년간 병으로 앓던 사람 들입니다.

 

오늘날도 꺼져가는 심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부정과 불의를 밥먹듯 하는 사람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

죄악의 소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우범 지대에 사는 사람들,

지옥문 직전에서 사는 사람들,

실망·낙담하여 염세·비관하는 사람들,

교도소에서 사는 사람들

 

사람들은 꺼져가는 심지 같은 사람들이라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꺼져가는 심지 같은 인생들을 끄지 아니하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되살리는 역할을 하십니다.

 

예수님 앞에만 나오면 누구든지 꺼져가는 심지들이 다시 생기를 얻어 불이 붙습니다.

 

예수님은 꺼져가는 심지 같은 인생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긍휼이 여겨 새로운 생명의 불을 붙게 기름을 공급해 주십니다.

 

사랑을 공급해 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소망을 주십니다. 이렇게 하여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꺼져가는 심지 같은 인생들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7. 양들을 승리와 즐겁게 하시는 목자입니다.

 

'다윗' 지나온 날에 원수의 공격을 받아 쫓기면서 상처를 입은 때가 많았습니다.

 

'사울'왕으로부터 쫓김 받아 광야에서 부엉이와 같은 밤을 새우는 고독을 비롯해서

아들 '압살롬' 반역과

신하 '시므이' 저주를 받았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넘치는 은혜를 채우셨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생애는 은혜를 은혜로 생애였습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을 따라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를 다윗은 당시 老年이라 머리에 백발이 서렸을 것입니다. 그의 목동 시절을 그리워하며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시를 썼을 것입니다.

 

지극히 천한 '이새' 아들이 영화로운 왕의 자리까지 수없는 원수들의 손에서 지켜 주시고 그때마다 풍성한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넘치는 은혜와 즐거움으로 만족한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사람은 즐겁게 있는 축복을 받습니다.

 

즐거움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기쁨도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 5:18)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일평생을 먹고 마시며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의 본분이로다" 하였습니다.

 

인생을 가장 즐겁게 사는 때는 어린 시절입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되 아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믿어야 믿는 것입니다.

 

"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2)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되 즐거운 마음으로 믿었고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다윗성으로 들어올 너무 기쁜 마음에서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을 추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앞에서 어린아이 마냥 뛰놀며 춤추는 다윗을 그의 아내 '미갈' 창으로 쳐다보다가 업신여기면서 하는 말이

 

"이스라엘왕의 영화로운 몸이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왕이 허물을 드러냈도다." 비웃을 정도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즐겁게 하시는 목자 예수를 따라야 것입니다. 그런 자는 다윗과 같이 기뻐하며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으면서도 목자되신 하나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우리 삶의 모든 흔적들이 실패로 얼룩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 10:4 자기 양을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이제 양이라면 목자의 음성을 바로 듣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부족함이 없으신 목자 예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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