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들에게 순복하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위)
롬 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로마서 12장에서는 개인적인 삶에 촛점을 맞추어 크리스천이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원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13장에서는 우리에게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사회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같이 읽어 가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크리스천은 이 세상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위에 있는 권위에 굴복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듣기에 상당히 거북한 명령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좋은 지도자를 목숨을 걸고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로만 가득 차 있고 독재자적인 지배욕이 강한 지도자에게는 굴복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말씀에서는 네 위에 있는 권위자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은 잘못된 권위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놀라운 깊이가 있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하라.
좋은 주인에게만, 내 마음에 맞는 주인에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나고 싶고, 싫고, 억지가 많은 사람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싫어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때 이것이 진짜 크리스천의 삶의 태도입니다.
싫은 사람을 섬기고 까다로운 사람도 섬겨라. 네 위에 있는 권위에 순종하라.
지난 2천년 넘게 이 성경말씀은 오해도 많이 받았고 잘못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이 말씀을 잘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성경구절을 많이 이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이 말씀에 담긴 깊은 뜻을 상고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권위와 질서가 무너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하루아침에 엉망이 될 것입니다.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서울 등 모든 도시는 하루아침에 마비가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정치하는 사람들의 권위, 교수의 권위가 못마땅해서 모두 거부해 버린다면 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 국민이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고민합니다. 따를만한 지도자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순종할 만한 지도자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순종할만한 지도자가 아니라서 권위를 거부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전개될까요? 무서운 사건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나쁜 권위는 없는 권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만일 지도자가 없어서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 북한의 권력이 아무 대책 없이 무너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만큼 권위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질서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권위와 성경에 대한 절대 권위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은 송두리째 무너집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성경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냐 이스라엘의 역사책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편집한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오류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성경을 공격해 왔습니다.
성경의 권위가 땅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세계대전이 터졌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을 인간이 편집한 한권의 책이라고 주장 했을 때 사람들은 도덕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만드는 방법
성경의 권위가 높아지면 사회가 안정이 됩니다.
하나님이 높아지면 세상은 편안합니다.
하나님이 무시를 당하고 성경이 무시를 당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최종의 권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권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우주를 만드실 때 질서와 권위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연과학의 세계를 보십시오.
이 은하계와 우주계와 태양계가 자연의 질서와 원리가 없다면, 그래서 이 지구가 제멋대로 운행한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언제 어느 때 위성이 충돌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창조이래로 한 번도 우주계는 사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질서대로 정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최종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 이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시기 때문에 이 세상은 사고 없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계에도 질서를 주셔서 질서와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남자를 권위자로 주셨습니다. 모든 영역에 이 질서와 권위의 원칙을 주셨습니다.
자연계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그 질서와 법칙에 따라 잘 진행해 왔지만 인간만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법칙과 권위를 무시해버렸습니다.
전쟁과 죽음과 싸움과 시기와 미움과 질투 등등으로 아수라장을 만든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권위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민주화된 상황이 아닌 우상숭배를 하는 로마의 권력 밑에서 사도바울은 담대하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각 사람 위에 있는 권위에 순종하라.
이것이 세상을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머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가정에는 남편을 그 가정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존경받을 만하든, 하지않튼 간에 그 권위를 인정하십시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을 영적지도자로 만드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가정이 바로 서게 될 것이며 교회도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남자를 영적 권위자로 주셨습니다.
학교에서 교수가 권위가 없다면 그것은 학교가 아닙니다.
나라에 대통령이 권위가 없다면 나라꼴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권위자를 세워주고 존경하라.
권위자를 섬겨라 이것이 오늘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
왜 우리는 각 사람위에 있는 권세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위자가 그 권위를 잘못 사용한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그 권위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조직과 나라에 책임자를 주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최종권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 인류, 인간, 전 우주에 최종권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질서가 무너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권세는 하나님이 정해주셨습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에게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고 목회자에게도 목회를 하도록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직장에도, 학교에도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은 누가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아주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자꾸 대들고 반항하고 냉소적으로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되는 것 같지만 망하게 되는 원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좀 심할 정도로 거북스러운 말씀처럼 들려 집니다. 위에 있는 권위를 무너뜨리는 자는 하나님의 법칙을 배반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이것을 압니다. 사탄은 두 사회를 공격합니다.
먼저 가정을 공격합니다. 이혼을 하면 부부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녀도 불행해집니다. 그 자녀는 평생 그 부모에게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모두 불행하게 됩니다. 마귀는 어떤 방법이든지 여러분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교회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깨지면 모두 방황합니다. 영적고아가 되는 것입니다.
또 마귀가 하는 일은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대통령의 권위를,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권위만 무너뜨리면 마귀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권위, 의로운 권위가 있는 사회에는 마귀가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군대에는 상사의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명령에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명령의 체계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권위는 한 조직과 사회를 지켜 가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어떤 정부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그 정부에 정권을 잡은 사람이 국민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독재하고 타락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써 권력을 사용했습니다.
백성들은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그 독재자를 몰아내려고 투쟁을 해서 결국은 몰아냈습니다.
그 다음에 새로운 사람을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잘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독재자를 한번 몰아낸 경험이 있는 국민은 그 새 지도자를 진정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몰아냅니다. 그 후에 오는 후유증은 과거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교회도 겪는 일중에 하나입니다. 몇몇 교인들이 목사가 못마땅해서 목사를 몰아내고 새 목사를 모셔옵니다.
처음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한번 목사를 몰아내 본 경험이 있는 교인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내보냅니다. 그런 교회는 부흥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권위를 무시해본 경험이 있는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무서운 결과는 반복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이런 위기에 부딪혔습니다. 서로 권위자가되겠다고 상대방의 비방꺼리를 찾아서 나팔을 불어 그 인기를 끌어내리고 자기가 더 득세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혈안이 되어있는 요즘의 정치상황입니다.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정치의 권위가, 기업체의 권위가, 학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순종으로 사단 이겨야
총장의 권위가 흔들리면 교육이 안 되고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교육이 안 됩니다.
목회자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서는 목회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당신의 권위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 권위자체를 존경하라고 말합니다. 그때에만 조직은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듣는 메시지의 초점입니다.
3절을 보십시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결국 권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대개 그 사람이 미우면 권위를 거부합니다.
그 사람이 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라고 하는 그 자체를 거부하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마귀는 권위대신에 권위주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권위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권위주의는 천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 가지 유혹을 합니다.
첫째는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가서 속삭입니다.
‘너는 권력을 쓸 수 있고 돈이 있지 않느냐, 이 권력을 적당히 써라 반은 백성을 위해 쓰고 반은 너 자신을 위해 써라. 권력을 유지하는데 써라. 정보를 독점해라.’
마귀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아주 합리적으로 설득을 합니다.
또 권위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너는 바보냐 왜 그렇게 당하기만 하느냐 데모도 할 수 있고 화염병을 던질 수 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끌어내려라. 화형대에 올려라. 사람들을 선동해라.’ 라고 하면서 권위에 대해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합니다.
권위를 존경하거나 받들거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권위에 순종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굉장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을 시켜서 권위에 순종하지 않도록 유도해 감으로 이 세상을 무정부형태로,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소리 지르는 사람이 이기고 숫자가 많은 사람이 이기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4절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이렇게 4절에서 좋은 권위, 진정한 권위가 바로 세워졌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나쁜 것을 몰아내고 좋은 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위임하고 기름 부어 주신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싫고 마음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순종하는 것은 진노 때문이 아니라 양심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권위를 높여주고 살려줄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이상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세상법으로만 지배하면 위기가 옵니다. 그러나 세상법 이전에 하나님의 법이 지배하고 량심의 법이 지배하면 천국이 옵니다.
크리스천의 자세
우리는 규정이 있는 법 때문에 세금을 냅니다. 그러나 내지 않으려고 하고 세금을 속이려고 합니다. 국세청이나 나라는 어떻게든지 세금을 많이 내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계속 싸웁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세금을 내는 것이 내 축복이다. 세금을 내는 것은 꼭 지켜야 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어떻게든 세금을 많이 낼까 고민하고 국가는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면 세금을 좀 덜 내게 할까 연구하는 그런 사회가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권위에 순종하는 사회입니다. 이것은 진노 때문이 아니라 양심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이 만들어야 할 사회입니다.
왜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할까요?
그것은 세금을 어디에 쓰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대해 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금으로 도로를 만들고 항만을 만드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세금 내는데 갈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얼마쯤 어디로 가버리고 다 쓴 것 같은데 안 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을 냈는데 어디에 사용되는지 모른다고 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답답할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그렇습니다. 세금을 잘 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세금을 깎지 말고 속이지 말라. 숨기지 말라. 어떻게든 세금을 더 낼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나의 조국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기업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7절을 봅니다.
모든 자에게 줄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 할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입니까? 권위에 순종하고 율법이 아니라 양심으로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위를 순종하기 시작하면 이런 사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결론을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권위를 사용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부리고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그것이 사장일 수도 있고 이사일 수도 있고 자기 기업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권위를 주셨습니다. 이 권위를 선하게 사용하십시오. 권위를 잘못 사용하면 사람들이 다 떠나갑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권위를 맡겨 주셨습니다.
만약에 아버지가 술먹고 타락하고 매일 늦게 들어오면 아이들까지 나쁜 영향을 받습니다. 집을 나갑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그런 아버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싫습니다.
이 세상은 권위를 잘못 쓰면 지옥을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권위를 잘 사용하면 천국이 됩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오락실로 가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옵니다. 집이 좋아서 입니다. 그런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회사가, 그런 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섬기는 권위,
소유하는 권위가 아니라 나누는 권위,
이것이 권위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남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에는 권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발을 씻어주는데 사용하면 그 사람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권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되었고 종이 되었고 발을 씻어주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희생해 보셨습니까?
마음으로는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하여야 합니다. 시간을 써야 합니다.
페스탈롯지가 골목길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깨진 유리조각들을 줍듯, 쓰레기라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권위입니다.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다 행복해 집니다.
그저 폼 잡고 자기 명함만 거창하게 만들고 남을 모두 부리려는 사람은 부릴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존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남을 거느리고 계시는 분들은 예수님이 원하는 권위를 사용해 보십시오.
두 번째, 남의 밑에 있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혹시 위에 계신 분이 못마땅하고 불편하고 따르고 싶지 않을 지라도 따르십시오. 이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위에 계신 분을 비판하고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망하게 하고 죽이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너를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복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격이 상처를 받습니다. 욕하는 것만큼 자기의 인격이 더러워집니다. 비록 싫더라도 따라가십시오.
정말 순종하면 상대방은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권위를 가지셨습니까? 잘 사용하십시오.
권위 밑에 계십니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나라를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그를 축복하게 하옵소서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거부하고 끌어내리고 인격적으로
모독하지 않도록 하시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 권위를 높일 수 있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교인들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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