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내게 구하시는 것

거듭난 삶 2009. 8. 3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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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내게 구하시는 것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6-8)

 

미국의 精神健康協會에서는 얼마 전까지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고 말해왔으나, 이제는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몸이 깃든다”.고 발표하면서 행복한 생애를 위해서는 다음의 5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너그러워지라.

다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매사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몸에도 좋다고 했습니다.

둘째,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부심을 가지라.

남들의 비판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넷째,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라.

후회란 실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기쁘고 즐겁게 살라.

살다 보면 매일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때에 바람직한 원칙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행복은 얼마나 돈이 많고 얼마나 지위가 높으냐에 있지 않습니다. 참 행복은 기쁨에 있습니다.

또 명예와 권세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쁨으로 사는 자에게 행복이 있습니다.

기쁨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금방 싫증이 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이 주는 기쁨은 많은 죄를 범하게 만들고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쁨만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이들의 웃음 뒤에는 슬픔이 있고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전도서에서 보면,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樂은 무엇이든 다 찾아 체험을 해보았지만 결코 만족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낙을 열심히 추구하느라 죄도 많이 범했습니다. 솔로몬은 더 이상 추구할 낙이 없게 되자 살아있다는 자체를 한스럽게 생각하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전 12:8).

이처럼 세상이 주는 기쁨은 불완전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만족이 있습니다.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후회가 없습니다.

전도서 2:24절에 보면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았고 사람마다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을 또한 알았도다. 라고 했습니다(전 3:12~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면서 살면 어떤 형편에 놓여있어도 항상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받게 되는 하나님으로 부터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되 一年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드리면 기뻐하실까? 千千의 수양이나 萬萬의 江水같은 엄청난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면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드리면 기뻐하실까? 내 영혼의 죄를 인해서 내 몸의 열매를 드리면 기뻐하실까? 하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도 혹 잘못 생각하면 교회에 나와서 무슨 봉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예배에 몇 번이나 참석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헌금을 얼마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느냐, 얼마나 예배를 많이 드리느냐,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느냐 하는 것들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헌금을 드리는 그 사람의 중심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제물만이 아닙니다. 제물보다 먼저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 이유를 요한일서 3:12절에서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되어 쌀을 천 가마, 만 가마를 드린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제사를 하루에 열 두 번씩 드린다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악한 자의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악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잠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이사야 1:4~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라고 말씀하시며 슬퍼하십니다.

그들은 오만가지 죄를 다 지으면서 아울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서 하나님을 더욱 더 괴롭히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1.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인자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의로 행하고 자비를 베풀며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한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 미가 선지자가 살고 있었던 시대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남의 것을 착취하며, 부정과 부패가 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기 때문에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고,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라고 했습니다(미 7:5~6).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 실정과 너무나도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타락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목적을 상실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6:5~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갖 악으로 뒤범벅이 된 세상에 살아도 거기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義롭게 살아가는 노아를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오늘날에도 이처럼 온갖 부정부패가 심한 세상에서 公義를 행한다고 하면 노아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나와 여러분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2.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마 12:7).

다시 말해서 악독한 짓을 하면서 아무리 제사를 많이 드리면 무엇하겠습니까? 제사를 드리기 이전에 세상에 나가서 자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6:33~36절에서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엡 4:30~32).

 

☞ 美國의 뉴욕 시장까지 지낸 라과디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뉴욕시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라과디아는 빵을 훔치려다가 붙잡혀 온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빵을 훔쳤소?” 노인은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빵 가게 앞을 지나가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그만 저도 모르게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이 늙은이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場內는 불쌍한 노인의 울먹임으로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노인의 답변을 묵묵히 듣던 판사 라과디아가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신의 죄는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벌금 10불을 언도합니다.”

그리고 난 후 라과디아는 자신의 지갑에서 10불을 꺼내 놓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 벌금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저 노인이 허기진 배를 감싸쥐고 뉴욕의 거리를 비틀대고 다닐 때, 나는 좀 더 좋은 음식을 찾아 배부른 방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그 벌로 내가 10불을 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 여러분 중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분이 계시다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벌금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장내에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모두 47불이 모금되어 즉시 가난한 노인에게 건네졌습니다. 이에 감격한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법정 문을 나섰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定罪하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행위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도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며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더 축복하시리라 믿습니다.

 

3.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보다 바르게 살 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또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사는 생활이 세상에 알려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심지어 남보다 특별한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에 더욱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 같은 경우 계시를 많이 받고 셋째 하늘 즉 三層天에까지 올라갔었고, 죽은지 14년 된 사람을 만나보고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마음이 생기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보내어 사도 바울의 육신을 쳐서 병들게 함으로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은혜 받은 것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보다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모든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모릅니다. 남들의 충고도 잘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더구나 책망조차도 받지 않게 되면 자신의 허물을 더더욱 깨닫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알고 부족을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인줄 알아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음을 늘 고백하며,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시는 여생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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