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립보서신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쓴 서신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이 서로 일치하고 단결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교회의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4)고 했습니다.
바울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같은 주님을 믿고, 같은 소망을 가지고, 같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로서 언제나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단합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빌1:27-3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하나되기 위해서 겸손할 것도 아울러 권면했습니다(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활을 실제의 귀감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으신 그리스도 앞에서 진정한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겸손이야말로 일치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겸손이 있어야 분열이 없고, 화평이 있고 은혜로움이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믿음의 주요, 언제나 따라야 할 목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라고 말씀했습니다.
1. 예수의 마음
1) 마음은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도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무릇 지킬만 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기 전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라고 했고,
"아나니아가 있는 소유를 팔아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는 알더라"(행5:2)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행5:3)라 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읍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말씀했습니다.
2) 예수의 마음은 하나 된 가장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한다고 하나 되지 않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합한 다해서 하나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돈을 합한다고 하나 되는 것 아닙니다.
진리를 중심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만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한 집에 산다고 하나 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제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①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면서 그리스도를 모델로 제시합니다.
"우리 강한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15:1-4)고 했습니다.
②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되 특별히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일을 하라고 할 때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모델로 제시합니다.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같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자 되라"(고전10:31-11:1)고 했습니다.
③ 바울은 가난한 중에 풍성한 헌금을 드리는 모델로도 그리스도를 제시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2-9)했습니다.
④ 베드로도 선을 행하면서 고난당하는 중에 참는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의 모델로 그리스도를 제시했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0-21, 3:17-18)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빌2:2-4절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에서 빌립보교인들에게 바라는 삶의 태도가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리스도처럼 죽는다면 서로간의 불화문제는 해결되고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예수의 마음을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희생한다는 말은 내가 그 일에 全心全力하는 즉, 沒頭한다는 말입니다. 시간, 물질, 몸, 마음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희생없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받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② 겸손한 마음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빌2:8)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했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겸손한 자의 마음에 하나님이 머무른다"했고,
루터는 "나는 그리스도를 배우려할 때 그의 기적보다 겸손을 배운다"했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이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한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행12:21-23). 교만한 헤롯의 말로입니다.
③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이 잔을 할 수 있으면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마26:39) 하고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2. 성육신(成肉身) 예수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人性을 취하시기 이전에 본질적이고 불변적인 신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본체"에 해당한 희랍어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모르페(morphe)와 스케마(schema)입니다. 근본 하나님과 본체란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불변적인 "神性"을 의미하는 "모르페"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가리켜 "나와 아버지도 하나"라 했습니다(요10:30). 요한복음에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영광중에 창조와 섭리와 심판하시는 주시요. 성삼위 성령님과 성부와 동등한 영광과 권위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예수님은 만세전부터, 창조전부터, 영원부터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계셨던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제자들과 또한 남은 사람을 위해 일일이 기도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 자신에 대하여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라고 기도했습니다.
2)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The being is equal with God"은 "하나님의 본체(모르페)"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몇 번이나 거듭해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을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침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더이다.고 답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다시 물으셨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로 하여금 알게 하였다"고 말씀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마16:13-17).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하셨기 때문에 원수들이 분노하여 돌을 들어 당장 예수를 때려 죽이려 했습니다. 이러한 거센 도전을 이미 아시면서 자신의 신성을 담대히 주장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도전이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자신의 본성을 주장하시고 밝히시는데 있어서 단호(斷乎)하셨고, 어떤 양보나 타협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으로 그 마을을 떠나심으로 그들의 도전에 응답하셨고 오히려
"인자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오는 것을 네가 보리라"고 담대하게 하나님과 동등함을 주장하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난 군중들에게, 그리고 당신을 잡으려고 도모한 모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군중들에게도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답하시면 그 말씀을 물증으로 체포하고 법에 따라 처치하겠다는 이들 앞에서
"내가 그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 그러나 그것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이기적 목적으로 이용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로 취하는 것으로 여기시지 않으시고 남들을 위해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은 얻는(getting)것이 아니라, 주는(giving)것이었으며 하나님과 동등됨을 탐욕스럽게 거머잡고 화려하게 과시할 보물로 여기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3)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神性"을 포기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으로서의 그 영광과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그 영광을 내 놓으신 것입니다.
"비웠다(empty)"는 말은 근본은 하나님이신데 그 형체를 벗으셨다는 뜻입니다. 본래의 형체를 벗고 그 높으신 분이 종의 형체를 입으신 것입니다. 왜입니까?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Damien은 平生을 문둥이들과 함께 살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문둥병자들이 사는 하와이의 Molokai섬을 지나다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들을 전도하기로 결심합니다. 많은 구호물자를 전해 주면서 여러해 전도를 시도 했으나 그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든 자를 도우면서 그 것을 즐기고 있는 道德的 享樂主義者라하여 끝까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다미엔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에게도 문둥병을 주십시오" 결국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찾아가 복음을 전하니 그제야 받아들이더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보좌 위에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사람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가난하고 천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달, 해, 별도 필요없다 합니다(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을 내놓으시고 오신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변하시는 그 황홀한 모습에,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베드로가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영광 그 능력을 모두 비우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마17:1-4).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
"하나님께서 행하라는 그 일을 내가 행 할 뿐이다"(요4:34) 하시면서 한 번도 주님 자신의 능력대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4)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낮추신 구체적인 표현으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인간성취의 꼭대기를 탐내지 않으시고, 명예와 권리와 신임을 위해서 싸우시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자기굴복, 자기거부, 자기희생을 통해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사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낮추실 뿐 아니라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히5:8).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형은 고통과 수치와 저주(신21:22)의 극치로서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고전1:23).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인간 중에 종으로, 종에서 극형의 죄수로 철저하게 낮아졌습니다(빌2:8).
의사 출신으로 중국내지 선교사로 나갔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님을 놀랍게 사용하시기 때문에 때때로 교만의 유혹을 받으실 것 같은데요, 땅 위에 사는 자 중에 선교사님보다 더 큰 명예를 가지신 분이 있을까요?" 이때 허드슨 테일러의 대답은
"그와 반대입니다. 저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쓰실 수 있을 만큼 작고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찾으시다가 저를 발견하신 것이랍니다."했습니다.
죠지 뮬러가 설립한 고아원 원장, 그레드 버거는 최후의 메시지에서
"젊은 형제들에게 가서 말하시오. 그들이 너무 작아서 하나님이 못쓰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 커서 쓰실 수 없다고 말입니다."했습니다.
무디 선생이 St. Louis 집회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을때 St. Louis유지들이 무디를 만나보기 위해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노라고 전갈이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무디는 뒷문으로 살짝 피해서 돌아왔습니다. 왜 이런 無禮를 범했느냐 항의를 받고 무디는 답변하기를 칭찬과 아부의 말이 두려웠고, 먼저 주님께 보고 드리려 함이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최고를 얻고, 사랑은 최고를 이루나, 겸손은 최고를 보존한다."라는 무디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벗으시고 종의 모습으로 가난하고 천한 사람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하늘에 앉아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시고 죽으심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영광도, 생명도 우리를, 나를 위해 다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예수를 본받아 예수 향기 날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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