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거듭난 삶 2019. 4. 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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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 [ 14:19-21]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 14: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

 

'이러므로'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라 '('그러면', '그런즉')으로서

앞의 17, 18절을 받고 있는 접속사이다.

 

앞절에서 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본질을 명쾌히 제시하여

열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신다는 것을

원리적 측면에서 선포한 바울은 이제 원리가 실제적인 교회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발휘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촉구한다.

 

여기서 '힘쓰나니' 헬라어 '디오코멘'

'급히 가다', '빨리 달려가다', '추구하다', '갈망하다' '디오코'

1인칭 복수 현재 능동태로서 현재 문제가 있는 교회 생활에서

강한 자와 약한 모두가 적극적으로 애쓸 것을 강력하게 권면한 것이다.

 

바울이 힘쓸 것을 촉구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화평의 일은 힘쓰라.

'화평의 '( 테스 에이레네스)이란 교회의 화합(和合) 도모하는 모든 일을

포괄적으로 지칭한 말로서 초대 교회 설교의 관용구이다.

 

(딤후 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이는 34:14 내용에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Dunn).

 

( 34: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사도는 연약한 자와 강한 간의 조화를 위한 직접적인 적용으로

화평을 추구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촉구하는 '에이레네'('화평') 단지 개인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차원도 가지고 있음을 있다(Godet).

 

 

(2)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라.

'() 세우다' 헬라어 '오이코도메스'

'집을 짓다', '건설하다', '굳게하다'라는 뜻인 '오이코도메오'에서 나온 말로서

주로 '건축' 관련해서 사용된 단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세우다'라는 은유법은 아주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구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예레미야가 이를 자주 사용하였다.

 

( 12:16 그들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같이 하면 그들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31: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33: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42:10 너희가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45:4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나의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나의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땅에 이러하거늘).

 

그런데 비유법은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니,

 

(1) 자신의 사역에 대해 설명할 이를 사용하였다.

 

(고전 3:9-10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고후 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12:19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13:10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2)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벽돌처럼 연결되어 함께 성전을 지어 올라가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권할 사용하였다.

 

( 2:19-20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벧전 2:5 너희도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3) 비유법의 가장 빈번한 용례는 바울이 편지를 보낸 교회들에게 충고에서 나타난다. , 구체적인 문제 속에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덕을 세우라는 권고로 나타난다(Dunn).

 

예컨데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남으로 야기된

여러 문제들을 다루는 바울이 사용한 핵심적인 단어 역시 '덕을 세우라' 것이었다.

(Harrison).

 

(고전 14:5 나는 너희가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이를 종합하여 본절의 의미를 살펴보면

서로 덕을 세우라는 권고는 상호 대인 관계와 상호 의존성을 결정지어 주는

중대한 기준이 된다.

 

(15:2 우리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그리고 서로 간에 상이(相異) 은사들의 상대적 가치를

분별하고 인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고전 14:3-5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따라서 구절의 개념은 어떤 경건한 의식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모든 문제 속에서 실제로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세움을 입어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모든 문제 속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 24)

원리에 준하여 교회 안에서 화평, 덕을 도모하라는 촉구이다(고전 9:19-22, Calvin).

 

왜냐하면 로마 교회에서의 긴장은 신앙의 견해 차이로 인한 유대인과 이방 그리스도인간의 분열에 있었기 때문이다.

 

 

 

[ 14: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성도들이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쓸 것을 말한 바울은 이제 덕을 세우는 일을 방해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그의 논점을 강화한다(Harrison).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 '무너뜨리다'(카탈뤼에) 말은

바울이 앞절에서 사용한 '오이코도메오'('집을 짓다', '덕을 세우다', '건설하다')

반대말이다.

 

(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도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

 

26:61 가로되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있다 하더라 하니;

 

27: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아나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바울은 비본질적인 음식물에 대한 이견(異見) 때문에 본질적인 하나님의 사업()

파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 에르곤 데우)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

 

(1) 혹자는 하나님이 세우고 계신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Sanday, Barrett, Kasemann).

 

(2) 구원사건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았다(Michel).

 

(3)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연약한 형제, 하나님이 창조하기 시작한 사람 속에서 일으키는 구원 사역을 의미한다(Robertson, Murray).

 

여기서 (1) 견해도 무난한 해석이라고 생각되나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3) 견해인 듯하다.

 

왜냐하면 문맥에 비추어 13 이하에서 계속해서 강한 자에게

교훈을 주면서 연약한 자가 근심케 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로 인해 망케 하지 말라고 권고하기 때문이며(15)

나아가 하나님이 불러 구원하신 영혼이 장성(長成)하여 굳세게 서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주된 목표이기 때문이다(Carnfield, Barmby).

 

 

만물이 정하되(판타 카다라) - 14절을 반복한 교훈으로 강한 사람들의 슬로건처럼 보이는 말을 바울은 먼저 인정하였다.

 

( 7: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10:15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고전 8:4-8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분밖에 없는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 그러나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왜냐하면 모든 음식물 자체는 근본적으로 깨끗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술은 14절의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라는 말처럼

한정적 의미의 뜻이다.

 

, 인간의 생각, 욕구, 행위같은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 이용할 있는

피조 세계의 자원을 가리킨다.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 바울은 만물이 깨끗함을 인정하였지만 거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음을 보여준다.

 

음식물 자체는 그릇된 것이 없지만 만일 음식물을 먹는 습관이나

마음의 자세가 어떤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먹을지라도 나쁘다는 것이다(Bruce).

 

그러면 여기서 '거리낌으로 먹는'(프로스콤마토스 에스디온티) 행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1) 약한 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강한 그리스도인들의 압력을 받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으로 고기를 먹는 행위를 말한다(Kasemann).

(2) 형제의 연약함을 보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고기를 먹음으로써 약한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강한 자들의 무절제한 신앙 행위를 가리킨다(Calvin, Hodge).

 

우리는 여기서 원어의 의미상으로나 전후 문맥으로 보나 (1)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Chrysostom).

 

 

 

[ 14: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

 

구절은 권위있는 선언으로서 역시 강한 자들에게 계속되는 교훈이다(Murray).

바울은 여기서 강한 자들이 있는 이타적(利他的) 행위를

극히 선하고 훌륭한 것으로 칭찬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여 형제에게 상처를 주는

악한 행위와 극히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아름다우니라' 구절이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뒤에 있으므로

강조가 약화되었지만 헬라어 본문에서는 문장의 초두에서

'칼론 '( ..., '...하는 것이 아름다우니라')라는 구문을 취하여

강한 자들이 연약한 형제를 생각하는 행위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전 7:1 너희의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6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아름다우니라' 헬라어 '칼론'

'선한', '보다 나은', '아주 고상한', '훌륭한', '뛰어난' 등의 뜻인

'칼로스' 목적격이다.

 

그러면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강한 자들의 지극히 훌륭한

, '칼론 '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파게인 크레아).

이것은 본장 2, 3, 6, 17절에서 말한 '먹는 '(브로시스),

 

(2-3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5, 20절에서 말한 '식물'(브로마토스)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를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모든 음식을 먹을 만한 신앙의 내적 확신을 갖고 있는 강한 그리스도인은

채소만을 먹는 약한 그리스도인보다 훨씬 행동반경을 넓게 있다.

 

강한 그리스도인은 고기를 먹을 내적 자유도 있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먹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약한 믿음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형제를 위해 연약한 자가 거리끼는

고기를 먹는 일을 삼간다는 것을 확실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강한 자들이 고기를 먹지 아니함이

영구하고 강력한 금욕(禁慾)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있는 것은

'먹다' 가리키는 '에스디오' 동사가 20절에서 현재형인 '에스디온티'('먹는')

사용된 바로 이어 본절에서 부정과거 '파게인'('먹었다')으로 사용된데서 확인된다.(Dunn).

 

그러므로 이것은 아직도 구약의 규례에 매여있는 연약한 형제들을 위하여

잠시 삼가는 것을 의미한다.

 

연약한 자들이 고기를 먹지 않음은

구약성경에 음식물과 관련된 각종 규제 사항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기를 먹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적절한 방법으로 피를 빼지 않은 고기.

 

( 9:4 그러나 고기를 생명 되는 피채 먹지 것이니라;

 

12:15-16 그러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성에서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고기를 먹을 있나니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과 같이 먹으려니와

16) 오직 피는 먹지 말고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다시 말해 고기를 피와 함께 먹는 것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 19:26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12:23-25 오직 크게 삼가서 피는 먹지 말라 피는 생명인즉 네가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24)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같이 땅에 쏟으라

25)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15:23 오직 피는 먹지 말고 같이 땅에 쏟을 지니라)

 

노아에게 행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도 금지되었다.

 

( 9:4 그러나 고기를 생명 되는 피채 먹지 것이니라)

 

 

() 부정한 동물의 고기.

 

( 11:8 너희는 고기를 먹지 말고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것이며 사체도 만지지 것이니라).

 

 

() 우상 제물의 고기.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물론 고기를 먹는 자체를 율법에서 금하는 것은 아니었고,

 

( 12:8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나물과 아울러 먹되;

 

11:18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 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다만 위의 금기 사항과 관련된 고기를 피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바울은 이런 규례를 아직도 준수하는 연약한 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강한 자들이 신앙의 자유의 행사를 절제(節制)하는 것이야말로

칭찬받을 만한 아름다운 행동임을 밝히고 있다(Harrison).

 

먹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위해서 그것을 먹지 않는

이타적인 행동을 요구한 것이다.

 

(2)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메데 피에인 오이논).

이는 '칼론 ' 구문의 두번째 용어로서 17절의 관용구

'브로시스 카이 포시스'('먹는 것과 마시는 ') 중에

'포시스'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밝혀준다.

 

그러나 포도주를 마시는 행위 자체는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 7:13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11: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4:23-25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1-1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하나의 가상적인 실례로서

언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없다.

 

그러나 보다 개연성이 높은 해석은

모든 고기를 피하는(삼가는) 조심스러운 행위는 포도주까지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Dunn).

 

왜냐하면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이러한 행위들은

약한 자들이 자기를 지키는 실제적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 10:9-10 너나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44:21 아무 제사장이든지 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것이며;

 

1:3-16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사람

4)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5)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것을 주어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6) 그들 중에 유다 자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머리가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세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16)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0:3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이것 역시 약한 자들 편에서의 금주(禁酒) 아닌

강한 자들이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의 금주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서

이런 행위야말로 참으로 선하다는 것이다.

 

(3) 무엇이든지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메데 아델포스 프로스콰테이).

 

이는 '칼론 ' 구문의 세번째 용어로서 연약한 자를 위하여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다는 원리에서 나아가

남에게 거리끼는 결과를 초래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니하는 것이 좋음을 시사한다(Godet).

 

'거리끼게 하는'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콰테이'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다' 혹은 9:32, 33에서처럼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다' 용례로 사용되었다(Dunn).

 

(9:32-33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에서 염두에 것은

약한 형제가 강한 형제의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목격하고서 마음에 상처를 받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강한 자들로부터 받는

압력에 굴복하여 스스로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행함으로써 실제적으로 결국 걸려 넘어지는 결과를 초래함을 말한 것이다.

 

강한 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약한 자들을 마침내 정상적인 신앙생활에서 이탈되게 하여

그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임을 말한다(Calvin).

 

이것은 13절과 15절에서 이미 설명한 있다.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요컨대 바울은 본절에서 말하는 그러한 종류의 일이 있을

자기가 가진 신앙의 확신과 내적 자유에 근거해서

어떤 것을 외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있지만 그것을 다른 그리스도인에게도

강요함으로써 동료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의 방해나 또는 파멸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면 그것이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것이다.

 

확고한 내적 확인과 자유를 가지지 못한 자가 강한 자의 행동을 본받음으로써

신앙 인격의 순수성 고결성이 상처를 받고 영혼의 상태가 상심케 되며

혼돈케 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런 내적 확신과 내적 자유의 외적인 표현은

기꺼이 절제(節制)하고 단념해야 한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교훈이다.

 

그런데 위의 가지를 안하는 것이 소극적인 자세라면

이에서 나아가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맺어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는 것은 적극적 자세이다(Cranfield).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