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거듭난 삶 2019. 5. 1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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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요한의 증언 2

 

: [ 1:24-28]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자라

25)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섰으니

27)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일은 요한의 침례 주던 요단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이니라.

 

 

 

[ 1: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자라 - 산헤드린 공의회의 양대 세력인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중에서 산헤드린의 조사단이 전자에 의해 보내진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산헤드린(Sanhedrin) 의장이 사두개파의 영수인 대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 19절에서 언급한 유대인들이 산헤드린 공의회가 아니거나,

(2) 본절에서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인'으로 (19) 구성된 산헤드린의 진상 조사단이 아닌 것으로 보여 질는지도 모른다.

 

만일 후자가 맞다면 '저희' 바리새인들이 파견한 다른 진상 조사단을 지칭한다.

 

그러나 19-28절까지의 본문의 흐름상 여기에서 '저희' 바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구성된 산헤드린의 진상 조사단이라고 봄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본절에서는 사두개파의 영수(領袖) 대제사장이 의장으로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와 바리새인을 일치시키고 있는가?

 

이는 당시 바리새인들이 대다수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당시의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장이 대제사장이었을지라도, 산헤드린의 주도권은 바리새인들에게 있었다.

 

따라서 당시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본의와는 다를지라도 바리새인들이

'만일 우리의 의견을 따르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이 가만히 있지 아니할 '이라는 협박에 속수무책이었다(Josephus).

 

이러한 정황에서 , 본절에서 '저희' 바로 산헤드린 공의회가 파견한 '사두개인들'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28절까지 이어지는 침례 요한의 증언을 일관성있게 이어주고 있다.

 

 

 

[ 1:25]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자들이 이러한 질문을 던졌던 이유에 대해서는 그들이 침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던가에 따라 대략 다음 가지 견해로 요약될 있겠다.

 

(1)이방인들이 개종과 관련시켜 이해했다고 보는 견해.

 

유대 사회에서 침례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경우 이방 세계에서 오염되었던 죄악을 떨쳐버린다는 의미로 사용했던 공인된 의식이었다고 한다. (Jeremias).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자들은, 침례 요한이 개종자들에게 베풀어야 마땅할 침례를 유대인들에게 실시한 사실에 대해 질타(叱咤)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메시야의 사역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보는 견해.

 

36:25;37:23; 13:1 등에서 물로 씻음 침례 의식이 메시야 대망과 관련되어 언급되어진다.

 

이와 같은 범민족적 차원의 정결과 성결은 오직 메시야에 의해서만 수행될 있는 과업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본문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섰으니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 침례에 관한 물음에 대해 요한은 구절로써 대답하고 있다.

 

'물로' 침례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표현이다.

 

(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다시 말해서, 침례 요한의 물침례는 예수의 성령 침례를 전제로 비로소 의미를 찾을 있다.

 

물론 요한의 침례가 백성들을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해 그들의 심령을 깨끗하게 준비시키는 '회개의 침례'였기는 하나

 

( 3:3 요한이 요단 부근 각처에 와서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본질적으로는 우리를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성령 침례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요.

 

(6-8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8) 그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자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23)

 

침례 요한의 사역의 성격을 드러낸다.

 

(1) 요한의 '하나님 나라 도래와 회개의 선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와 회개의 선포로' 예비한 것이며,

 

(2) 요한의 침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령 침례를 예비(豫備) 것이다.

 

또한 침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까지도 그리스도에게 보내는 자였다.

 

이러한 요한의 사역은 자신보다도 그리스도를 족히 비교할 없으리만치 높이는 겸손에서 극치를 이룬다.

 

(27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너희가 알지 못하는 - 산헤드린 조사단이 요한을 메시야로 착각한 것은 그들의 영적 무지를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구절은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0)라는 말씀을 연상시키며,

 

말은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이 실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 세상에 속한 자들이요,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사실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따라서 침례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규탄했던 것이다.

 

(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3:7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1:27]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 '신들메' 당시 유대인들이 도보 여행시 착용하였던 신발(가죽 샌들) 끈을 가리킨다.

 

유대 풍습에 의하면 주인은 초대한 손님이 방문하면 자기 집에서 가장 천한 종을 시켜 손님의 신발 끈을 풀고 발을 씻기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침례 요한의 고백은 자신을 그리스도에 비할 가장 비천한 종의 자격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표현은 사복음서에서 공히 요한의 자기 진술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진상 조사단의 물음에 대해 침례 요한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증거하는 형식으로 답한 것은, 자신의 사역을 메시야의 사역과 분리해서 생각할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요한 자신의 위치를 밝히 드러낼 있었다.

 

 

비록 메시야와는 비교할 없을 정도로 미천한 존재였지만, 메시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라는 직분은 누구에게도 비길 없는 영광스럽고 기쁜 것임을 요한은 자부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31절에서 설명되듯이, 침례요한 자신도 처음에는 예수가 진정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침례 요한은 평소에 예수에 관해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확신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실로 예수를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히 인식하게 것은 예수께 침례를 베풀 당시 성부와 성령의 충만한 계시를 받게 됨으로부터였다.

 

( 3:21-22 백성이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8] 일은 요한의 침례 주던 요단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이니라 - 저자 요한은 산헤드린 조사단이 침례 요한을 조사한 사실을 목격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침례 요한의 자기 증언' 장소를 언급한 것은 단순한 부가적 설명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저자 요한은 당시 상황이 너무도 인상적이며 중요한 것이라 여겼으므로 생생한 기억을 여기 옮기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예루살렘 남동쪽으로 3km 지점에 있는 마을이 아니라,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리쯤 되매)

 

요단강 동쪽에 위치한 장소로서 침례요한이 침례를 베푼 장소였다.

 

본서에서 '베다니'라는 개의 지명을 구분하여 사용된 것은 본서가 영지주의자인 어느 헬라인의 저작이 아니라, 당시 유대의 상황과 지리에 익숙했던 사도 요한의 저작임을 입증하는 일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