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거듭난 삶 2019. 5. 2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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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나다나엘 2

 

: [ 1:45-51]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일을 보리라

51)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 '나다나엘'이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며 그의 이름은 오직 본서에만 나온다.

 

그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 율법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46-48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그의 집은 갈릴리 가나였으며

 

(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예수를 만날 때에는 아마도 벳새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름 - 빌립은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율법을 근거로 하여 말한다. 이는 율법에 충실한 나다나엘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한 빌립의 열정을 드러낸다.

 

본문은 빌립이 예수야말로 율법과 예언서로 대표되는 구약의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는 메시야이심을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 빌립은 침례 요한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빌립의 친구들인 안드레,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침례 요한의 제자였다는 43절에서 빌립이 예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했으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신있게 전도했다는 점에서 뒷받침된다.

우리가 만났으니 - 메시야를 만난 빌립의 감격과 확신에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 - 빌립이 만난 메시야의 인간적인 신분이 제시된다.

 

원래 예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지만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하셨기 때문에 자칭, 타칭으로 '나사렛 예수' 불리었다.

 

(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그리고 '요셉의 아들'이란 표현은 법적 차원에서 옳은 것이기는 하지만 예수의 신적(神的) 기원과 본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사도 주지 않는다.

 

따라서 빌립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사실은 알았으나,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으로 결국 나다나엘의 반론을 야기시킨다.

 

 

 

[ 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보라 하니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느냐 - 원문상 '나사렛'으로 끝난 빌립의 말은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을 격분시켰다.

 

그는 율법을 연구하는 자였으므로 메시야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

 

(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또한 당시 나사렛은 갈릴리의 마을이므로 율법주의자의 입장에서 볼때 멸시당해 마땅한 지역이었다.

 

(7: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본문은 당시 율법주의자들이 갈릴리 지방을 조롱할 쓰던 관용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보라 - 나다나엘의 빈정거리는 말투와 말투에 내포된 논리적 타당성은 빌립의 말문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심한 모멸감(侮蔑感)까지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나다나엘을 강권한다.

 

따라서 빌립이 말한 ' 보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 보라'(39 참조)와는 다른 어감을 가진다.

 

빌립의 강권(强權) 당시 랍비가 제자들을 초청하는 형식이 아니라 제자가 다른 제자를 랍비에게 소개하는 형식이라고 있다.

 

또한 말은 율법적인 논리보다는 역사적으로 성육신하신 메시야라는 실체를 목도(目睹)하여 보라는 말이다.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 나다나엘을 처음 대면하기 직전에 그의 인격을 통찰하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나타난 구절이다.

 

특히 본문은 '' '간사한'이라는 반의적 수식어를 통해서 나다나엘의 성품을 반영한다.

 

특히 표현은 야곱의 '간교한' 성격을 상기시키는 말로서,

 

( 27:35 이삭이 가로되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복을 빼앗았도다)

 

나다나엘이 야곱처럼 간교한 자가 아니라 메시야 대망을 충실히 기다리며 율법을 연구하는 자였음을 시사한다.

 

시편 기자는 '마음에 간사가 없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32:2).

 

 

 

[ 1: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 '...전에'라는 말이 시간적 의미의 답변이라면,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표현은 공간적 의미로서의 답변이다.

 

무화과나무는 유대 민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될 정도로 팔레스틴에서 번식하였다.

 

(왕상 4:25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4:4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특히 무화과나무는 무성한 커다란 잎으로 그늘을 드리웠으므로 당시의 랍비들은 이를 율법을 교육하거나 묵상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표현은 나다나엘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율법을 묵상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여기서 '보았노라' 말은 단순히 '알았다'라는 예지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주목하고 있었다는 의지적(意志的) 측면까지도 내포하는 용어이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나다나엘을 당신의 제자로 지목하였다는 뜻이다.

 

 

 

[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대답하되 - 나다나엘이 예수의 답변에 대해 항거할 없는 힘에 이끌리어 그분이 바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고백했다는 뜻이다.

 

바클레이(Barclay) 말을 빌면 나다나엘은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꿰뚫어 보고 만족시켜 주신 예수의 권위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랍비여 - 38 주석을 참조하시라.

 

당신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비록 나다나엘은 고백 속에 담긴 진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터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고백이 결코 겉치레인 것은 아니었다.

 

존칭은 메시야의 도래를 예언한 2:6, 7 근거를 것으로 짐작되며,

 

( 2:6-7 내가 나의 왕을 거룩한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도 직결된다.

 

(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스라엘의 임금'이란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곳에 등장한다.

 

먼저 27:42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조롱하는 야유로 언급되며,

 

( 27: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15:32에서는 '그리스도' 동의어로서 나온다.

 

( 15:32 이스라엘의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그리고 본서 12:13에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군중들의 찬양 가운데 언급된다.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한편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인식되었으며,

 

( 8:22-23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84:3 나의 ,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신약 중간사 시대부터는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代理)하실 왕적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두루 퍼져있었다.

 

 

 

[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일을 보리라

 

이보다 일을 보리라 - '이보다'라는 표현에서 '' 지적하는 바는 나다나엘이 체험한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지식을 가리킨다.

 

나다나엘로 하여금 예수를 메시야로 믿게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중에서 가장 작은 면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예수는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이적과 권능들을 나타내사 많은 사람들의 곤경을 타개해 주셨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입증하셨다.

 

 

 

[ 1:51]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 ' ' 대한 예수의 말씀의 서두이다.

 

주로 공관복음서에서는 '진실로'라고만 쓰여진데 반하여, ( 5:18;6;5; 3:28;8:12; 4:24;18:17),

 

본서에서는 '진실로 진실로'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없느니라;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강조하려는 요한의 의도를 반영한다.

 

(6:47 나의 ,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하늘이 열리고 - 하늘이 열린다는 표현은 야곱이 벧엘에서 꿈과 연관되며

 

( 28:10-22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위에 섰는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본즉 여호와께서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누운 땅을 내가 너와 자손에게 주리니

14)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성의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전이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재확립되는 징조를 상징한다.( 64).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고 그동안 죄로 인해 막혔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하늘이 열리고'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보며 또한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영적 존재로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매개자로 활동한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란 '열려진 하늘' 상징하듯,

 

예수 그리스도가 야곱이 보았던 '사닥다리',

 

(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위에 섰는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the Mediator) 되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