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거듭난 삶 2019. 5. 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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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연(婚宴)

 

 

요한복음 2 1-11 :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3(사흘 되던 ) 갈릴리의 가나에서 혼연이 있었는데,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다'(1)

 

'3일에'

 

요단 저편인 벧바라의 땅에서,

예수,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시고,

거기서 베드로, 빌립, 안드레, 나다나엘의 제자를 얻은 ,

거촌 나사렛을 향해 귀로에 오르신 데서 3일째,

그러므로 예수께 이때 이미 5-6인의 제자 있었던 것으로 있다.

 

'갈릴리의 가나'

 

나사렛의 동북, 4-5마일(6-8km) 곳에 있는 소촌이다.

사도 나다나엘 생육의 땅이다.

 

나다나엘이,

' 이스라엘 사람으로,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라고 그리스도에게 평된 것을 보아,

촌민(村民) 얼마나 순박(simplicity)했는지를 있다.

'예수의 어머니'

 

물론 마리아이다.

근면한 빈가의 주부.

구비(oral tradition) 의하면, 예수는 18세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것이고 보면,

이때 그녀는 과부로 된지 이미 13, 4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 있었다'(거기 계셨다-한글역) 것은,

가나의 촌에 마침 있었달지!

혹은 조력 위해 땅에 것으로 보아도 무관하리라.

'예수도 제자와 혼연에 초대되었다'(2)

 

소촌 가나의 혼연(marriage; feast),

이는 왕후귀족(princes and peors) 연석과 다르다.

 

예수 이에 초대되어 기꺼이 갔다.

가서 희락을 돕기 위해서이다.

 

만약 신상 공리의 혼연 이었더라면 그는 결코 여기에 임석하지 않았으리라.

신상공리의 무리에게 귀빈의 아유(flattery)하는 있고,

악인(musician) 악을 연주하는 있으며,

술이 모자라는 염려 없고,

따라서 예수께서 여기에 임석할 필요 없다.

 

세상의 주해자는, 예수가 잔치에 가신 것을 가지고서,

혼인의 신성을 인정하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는 혼인의 신성을 인정하심보다는,

보다도 빈의 신성을 인정하시기 위해서였음을 가지를 마음에 두지 않고서,

전후 수절의 진의를 해득하기 어렵다.

 

'포도주가 모자라매, 어머니, 예수에게 이르시기를,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3)

 

빈자(貧者) 연회,

헤아려 알고도 남는다.

 

아무리 예상외의 객을 청했대도,

포도주가 떨어졌다니,

공핍(exhaustion) 비애, 또한 추량할 있지 않으랴!

 

이는 가주의 치욕(disgrace),

만약 이것이 폭로 것이면 일좌 흥을 잃어,

가촉의 흥락(merriment) 실의로서 끝나리라.

 

말씀 마시라.

이는 벽촌의 일소사일 뿐이라고.

 

(그러나) 가주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는 종생의 일대사이다.

 

말씀 마시라.

하늘의 하나님은 서민(the common people) 사사로운 일에 동통(pain) 느끼시지 않는다고.

 

그는,

제왕의 대군이 위기에 처한 손가락 하나로도 이를 돕지 않는 있으리라.

하지만 없는 촌민의 회합에 그는 그들 중에 계셔서 일대기적을 행하지 않으시랴!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이르시기를, 여자여,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나이다'(4)

 

이것 그가 어머니에 대하는 말로서는 무례한 같다.

어찌 어머님이라 않는가?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모자(母子) 정으로서는 감내(endurance) 어려운 아니랴!

옳다. 이는 예수가 범상(common) 않은 주이신 증거의 하나이다.

 

마리아는 생모(生母)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에게 '순종했다'.

 

하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의 구주이시다.

 

인류의 구주로서의 예수는 공직을 누구에게도 좌우 받을 아니다.

마리아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아들의 초자연적 능력을 사용할 것은 못된다.

 

그런데 그녀가 목전의 번극(pressure of business) 쫓겨,

그녀의 성자가 어떠한 인지(認知) 잊어버리고,

그에게서 비상한 원조를 빌려 했다.

 

그는 물론 이것을 빌려 드리기에 인색할 없었다.

하지만 이를 행함에 있어서 그는 부드러운 견책의 말로서 그녀의 주의를 촉구했다.

 

'여자여'

(그리스어의 gunai 영어로 woman등과 같은 격렬한 아니다).

 

당신은 그저 어머니로만 생각하지 마소서,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를 압니다.

내게는 나의 천여의 공직 있어,

이는 사람의 사용할 아닙니다.

당신이 번극 중에 있대도 이것을 잊지 마소서라고.

 

예수에게 있어서 그렇다.

오인 평범인에게 있어서도 역시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지 않으랴!

 

오인도 역시 부모의 유체(body handed down) 아니다.

오인도 어떤 천직을 가지고서 세상엘 태어나온 자이다.

오인은 물론 가능한 오인의 부모에게 복종해야 것이다.

오인은 사욕사분 때문에 그들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해야 것이다.

 

하지만 나이 이제 30 달하고, 대체로 오인의 공직을 자각하기에 이르러,

오인의 능력은 오인 자신 위해서만 사용할 것이 아님은 물론,

오인의 부모일지라도 그들의 편익(convenicnce)위해 오인을 사용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자녀는 우마기구와 달라 사유품이 아니다.

이는 양육의 임무를 가지고서 하나님께로부터 의탁된 ,

이미 하늘에서의 사명을 수행해야 때에 있어서는,

부모 자는 삼가 성직을 익찬 하도록 힘써야 것이다.

 

진정한 효도란 부모의 명에 그저 복종하는 것만을 말함이 아니다.

오인이 오인의 천여의 공직에 충실하여 비로소 진정한 효자일 있다.

예수의 말씀, 오인의 경독심사 해야 아니랴!

 

'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나이다'

 

공공연하게 구주로서 세상에 나타나실 때를 말한다.

예수는 어머니의 원을 들으셨다.

하지만 그의 이번의 행위는 그를 제자들에게 나타내는 것으로 그치고 널리 그를 세상에 소개하는데 이르지 않았다.

'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향하여, (예수) 너희에게 명하는 대로 하라고 일러두었다'(5)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말씀에 보통과 다른 데가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인 마리아는 아들의 진의를 알았다.

 

그녀(마리아) 그가 비난의 말을 함과 동시에 그녀의 원의를 받아들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므로 가인에게 명하는데 말이 있었다.

 

' (예수) 너희에게 명하는 대로하라'

 

아들의 하는 일에 틀리는 (오류)없다.

그의 명대로 하라이다.

선량한 어머니여,

당신은 아들의 비난의 소리를 듣고서 노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믿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명에 따르게 하셨도다.

 

세상에 당신 같은 어머니 있어서 진정한 효자는 있을 있었나이다.

아들의 진의를 살피는데 신속히,

그를 노하게 하는 없이

 

* 참조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선을 격려하여 직분을 도우셨나이다.

원하기는 사리사욕으로서 충만 세상에 당신 같은 어머니가 많이 있으옵소서.

 

 

'하인들'

 

그리스어의 diakonoi 역자이다.

하복(manservant)또는 노복의 아니다.

교회의 집사도 후에는 이름으로 불렸다.

 

일을 처리하는 자를 일컫는 것으로서,

경우에 있어서는 거들어 주는 사람(일꾼) 가리켜 말함이다.

 

그러므로 안에 예수의 제자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것이다.

이것을 '하인'이라 읽으면, 가주(家主) () 헤아려 알기 어렵다.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4-5말들이의 항아리 여섯, 거리에 놓여 있었는데, 예수 그들(일꾼)들에게 물을 항아리에 가득 채우라고 하시니, 그들이 아구까지 채웠다. 이것을 이제 떠서 가지고 가서, 잔치 맡은 이에게 주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했다'(6-8)

 

'결례대로'

 

유대인은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청결을 좋아한(사랑한) 백성이다.

그들이 식전에 수족을 씻은 것을 성서가 가끔 기록한 바이다.

여기 말한 항아리란 식전에 손을 씻기 위해 것이었으리라.

 

'4-5말들이의 항아리'

 

조금 지나치게 같다.

그리스어의 '1메트레테스 Imetretes' 영량 8갈론 (8 gallon-1 gallon 4. 5리터)으로 어림잡아서의 계산이다.

고대의 도량권형(weights and measures) 오늘의 그것으로 환산함의 어려움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그들이 아구까지 채웠다'

 

예수의 명명은 모두 행해졌다.

조수들은 무슨 때문인지를 몰랐다.

그것이 포도주로 변해지리라고는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바이다.

 

하지만 예수 자신은 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이에 실시한 기적의 완전명료를 위해서이다.

 

'잔치를 맡은 , 술로 변한 물을 맛보고, 어디에서 것을 몰랐다. 하지만 물을 떠낸 하인들은 알았다'(9)

 

'잔치를 맡은 '

 

주인을 말함 아니고.

신랑 아님은 물론이다.

혼연에 있어서는 그런 것이 특별히 마련되었던 것이리라.

 

'술로 변한 '

 

이때는 이미 물은 포도주로 변했다.

그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묻지를 마시라.

 

대저 이는 무익한 문제임으로이다. 물은 수소(hydrogen; H.) 산소(Oxygen; O.)와의 화합물이다.

그리고 포도주에는 알코올(alchol) 탄소물(carbon; C)있고 당분 있고 지방 있고, 중에 질소물(Nitrogen; N.) 흔적(traces)마저 있다.

 

어찌 수소를 변하여 탄소질소로 되게 있는가?

 

망탄(a lie), 미신, 화학의 법칙으로 돌아가,

가능일 없는 것이라고 하여 조소하는 많으리라.

 

하지만 '어떻게 해서',

오인이 여기서 공구 문제가 아니다.

 

과학의 진보는 아직 끝을 고하지 않았다.

모든 원소(디드춧) 수소 또는 알미늄(Alminium) 변형이라는 것은 일찍이 어떤 유력한 과학자가 주창한 ,

수소를 바꾸어 탄소를 함의 술이 발견될 없다고 오늘 단정하기는 어렵다.

 

요는 여기서 일대사실을 인정하는 있다.

 

무미(無味) 냉수가 변하여,

감미로운 포도주로 되었다는 ,

이것이다.

 

잔치 맡은 이는 이것을 못보고 기뻐했다.

신랑신부는 이것 있어서 치욕을 면할 있었다.

객은 모두 이것을 상미(appreciation)하여 가주를 송양(admiration)했다.

일대자선적 기적은 행해졌다.

그리고 연석에 임한 이는 사람 남김없이 만족할 있었다.

 

회의자는 오인에게 물어 말한다.

 

'어찌하여서'인가고.

오인은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한다.

 

'맛보라'.

무위평범의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유위비범인이 되자,

철학자와 비교종교학자는 놀라 말한다.

 

'어찌하여서'인가고.

그들은 순서(process) 알지 못하면 결과를 믿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의 철학에 합하지 않는 사실이 아니면 사자가 갱생하는 있대도 이것도 믿지 않는 것이다.

 

'잔치를 맡은 이는몰랐다. 하지만 물을 떠낸 사람은 알았다'.

 

마시는 자는 다만 맛을 아는데 그치고,

그것이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는지를 모른다.

 

하지만 물을 떠낸 자는 이것을 알았다.

전도에 종사하지 않는 자는 참회회개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전의 방탕 자식이 지금은 근직(prudent)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로 것을 .

 

예수의 명하심에 청종하고 그에게 사역되지 않으면 그의 공적의 절대 함을 알지 못한다.

 

세상은 불과 그리스도교의 결과를 뿐으로서 행동의 비결을 알지 못한다.

 

가련하다!

 

'잔치를 맡은 이가,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사람은 먼저 좋은 술을 내고, 취한 , 나쁜 술을 내어놓는데, 그대는 좋은 술을 지금까지 두어 두었도다'(10)

 

주께 은혜 입은 자는 모두 그러하다.

 

먼저 나쁜 있고 뒤에 좋은 있다.

이것 우리들의 가지는 법과 세인의 가지는 법과 정반대이다.

 

황금시대를 약속한 정치가는 대개 타락패멸로서 끝나고,

앞서 평민주의를 주창한 자는 후에는 벌족(Clique; clan) 노복으로 되며,

희망으로서 교회와 선교사에게 환영된 청년은 오속에 침륜(sinking)하여 주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에 이른다.

 

희망으로서 시작하여 실의로서 끝난다.

용두(bright beginning) 사미(dull finish),

세상만사 모두 같지 않은 없다.

 

하지만 주의 법은 전혀 이것과 다르다.

 

가령 그의 충복이었던 영국의 재상(the prime minister) 글래드스턴(-9 26역주) 같다.

 

그는,

청년시절 보수주의를 제창하고,

노년에 이르러 진보주의로 옮긴다.

 

영국의 무관왕 크롤웰(-2 66역주) 같은 이다.

그는 국적(國賊)으로서 무덤 파헤쳐져,

그리고 300 후의 오늘,

애국자로서 그의 국인의 마음에 존숭 된다.

 

일찍이는 교회를 허는 자로서 배척된 이가 후에는 이것을 세우기 위한 초석으로 된다.

전에는 사랑(jackal and wolf)으로서 기피(evasion)되던 자가 후에는 성자로서 보인다.

 

먼저 좋은 것을 약속하는 자에게 주의하라.

대저 그는 속인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가까워짐을 따라서 향기를 발하는 많은 ,

이는 참으로 주께 축복 받은 자이다.

 

처음에 세상에 박수갈채로서 환영되는 같은 이는,

먼저는 좋은 술을 내어놓고 뒤에는 나쁜 술을 마시게 하는 무정불실의 가주와 같은 무리일 .

 

'이것을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심은, 표적의 처음으로서, 영광을 드러내셨다. 제자, 그를 믿었다'(11)

 

'표적'

 

기적을 말함이다.

 

이것을 '표적'이라 함은,

기적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적은 불필요하다는 자는,

아직 기적, 그리스도, 모르는 자이다.

 

' 영광을 드러내셨다'

 

어떠한 영광인가?

왕후의 앞에서 드러낸 영광이 아니다.

인민의 세망(popularity) 넓힌 영광이 아니다.

 

빈가의 연석(宴席) 있어서 신랑신부를 치욕에서 구해 내기 위한

초천연적 행위로서 나타낸 영광,

이는 실로 하나님으로서의 행위이며.

그의 영광이 아니랴!

 

예수로서 만약 위공을 예루살렘인 헤롯의 궁전에서 올렸다면 이는 그에게 있어서 영광이 되었을 것이다.

 

영광은, 기적의 위대함보다도, 무릇 이것을 시행한 경우 여하에 있다.

그것이 대자비적 행위였기 때문에 영광은 이에 동반했다.

 

물론 포도주로 변한 것은 위적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것을 빈가의 혼연에 있어서 신랑신부에게 적면(blush)없게 하시렴에서 행하심으로서,

예수는 자신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지명하신 인류의 구주이심을 증명하시었다.

'제자, 그를 믿었다'

 

술을 맛본 이는,

연회장(잔치를 맡은 ) 비롯하여,

신랑신부, 가주, 빈객 ,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물로서 술이 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는 겨우 그의 제자뿐이었다.

 

가련한 사람들이여,

술은 밤의 쾌락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수를 아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이것을 맛보고서 그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기적을 보는데 다만 실리의 한편에서 했다.

하지만도 어리석은 자는 그들에 그치지 않는다.

세인 대개 모두 그들의 () .

 

그들은 장대한 우주에 서식하며 실리에만 주목하고,

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를 창조하신 것은 그의 성애를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사람은 금은, 보옥, 곡류를 사랑하고,

이를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

 

말씀 마시라.

 

'우리가 만약 눈으로 기적을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기적을 목격해도 그를 믿지 않는 것이다.

 

먼저 믿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기적 아닌 우주의 대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을 있으리라.

 

내촌감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