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거듭난 삶 2019. 5. 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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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다

 

 

요한복음 2 1-11 :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는 가나의 혼연석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여 일면에 있어서는

주인을 궁상(窮狀)에서 구조해 내고,

다른 일면에 있어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셨다.

 

'이는 표적(이적) 시초로서, 영광을 나타내셨다. 제자, 그를 믿었다'(11) 있는 대로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1 기적으로서,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모범적인 기적이었다고 수가 있다.

 

그는 희열의 사람으로서, 남과 희열(기쁨) 함께 하기를 좋아하셨다.

그는 능력의 사람으로서, 그의 하는 일은 모두 조용히 행해졌다.

그는 평민으로서, 그의 행동은 평민의 경계를 넘지 않으셨다.

 

세상에 아주 흔한 물로 이것을 맛좋은 포도주로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수의 성격을 가장 나타낸 기적이다.

 

물은 지상 가장 흔히 있는 ,

담담하면서,

그래도 없어서는 되는 것이다.

 

그렇듯 많고, 그러면서도 무미한 것을 화하여, 진하고, 맛좋은 포도주가 되게 하셨다고 한다. 실로 예수께 어울리는 기적이다.

아무 흥미도 없는 평민의 생애를 흥미로 것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그분이시다.

 

상인의 일일의 생업,

연월과 함께 변치 않는 가업,

이것으로 시가 되게 하고,

음악 되게 하며,

예술 되게 하신 것은 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있어서는 보통의 사물이 결코 보통은 아니었다.

 

물은 포도주였다.

잔돌(a pebble) 보석이었다.

잡초는 모란(a tree peony),

작약(a peony)보다 나은 진화였다.

 

그가 세상에 강림하신 목적의 하나는,

실로 사람이 보통이라 부르는 것을 화하여 가치 있는 것으로 하시는데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사업의 일면을 보인 것이,

갈릴리의 가나에 있어서 그가 행하신 기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혼인석에 있어서 행해진 가장 알맞은 기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혼인은 인생행복의 절정이라고 하는데,

동시에 평범한 생애에 들어가는 출발이다.

 

인생의 운문(verse) 혼인으로서 끝나고,

산문은 혼인으로서 시작한다고 수가 있다.

 

이제부터 하찮은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남편은 생업에, 아내는 부엌에,

각자 무의미한 같이 생각되는 생애에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비극이다, 희극이다.

하지만도 그것은 문사라든가 천재들로 일컬어지는 사람의 생애를 말하는 것으로서,

대다수의 사람의 생애는 비극도 희극도 아니고 평범 담담 같은 생애이다.

 

여기에 시도 없으려니와 노래도 없다.

다만 일하며 살뿐이다.

 

실로 무미담백의 생애인 것으로서,

때로는 보람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일단 예수께서 이에 임하시면,

같은 생애는 화하여 포도주 같은 생애로 되는 것이다.

 

일상의 노동에 깊은 의미가 가해지는 것이다.

 

하찮은 것이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특별히 사람에게 칭찬 받는 것은 아니지만도,

정부 또는 사회 또는 교회에 가치를 인정받는 아니지만도,

살아 있는 ,

그것이 행복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만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다.

 

예수를 모심으로서,

농부는 전원에서 만족하고,

상인은 가게(shop)에서 만족하고,

공인(worker) 공장에서 만족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담미(lightness) 평민의 생애에 의미와 흥미를 더하는 점에 있어서 예수의 감화력은 독특하다.

 

근대인은 무엇보다도 쾌락을 구한다.

그들은 짧은 인생을 아주 행복하게 보내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오락기관을 요한다.

음악, 극장, 무도(dance), 만유 ,

그들은 이것 없이 행복할 없다.

 

문화생활이라 하면서, 인생을 최대한도로 즐기려 한다.

 

하지만 인생은 본래 이는 물이다.

담수(민물) 아니면 함수(바닷물)이다.

아무리 인력을 다한다 해도 이것을 환락의 물인 포도주로 화하게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근대인의 모든 노력도 또한 헛되어,

그들의 생애라 해도 역시 고통 근심의 연속이다.

 

전능의 하나님만, 물로 맛좋은 포도주로 되게 하실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에 있어서 물로 포도주 되게 하신 같이,

그는 오늘도 평민의 보통의 생애를 화하여 의미 있는 즐거운 생애로 만드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에 의해 생애는 끝에 가까워짐을 따라서 맛이 더욱 높고,

은화 입은 자로 하여금,

연회장의 말을 자기로 하여금 되풀이하게 한다.

 

'사람은 먼저 좋은 술을 내고, 취하기에 이르러 나쁜 술을 낸다. 그런데 당신은 좋은 이제()까지 두어 두었다'(10) .

예수에 의해,

보통 평범의 생애도 환락 그치지 않는 생애로 되고,

마침내 무궁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조용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하지만 행복한 효과 오르는 생애가

오늘날까지 기천만의 참된 그리스도 신자에 의해 영위된 것이다.

 

행불행의 별은 단지 예수를 () 우러러 앙망하느냐의 여하로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에 참된 행복의 기본이 있다.

우리들은 행복을 구하고자 하여 직업을 바꾸고 지위를 바꿈의 필요는 없다.

 

지금 위치한 지위에서 주어진 직업에 종사하면서

예수를 초청함으로서 가장 확실한 행복을 즐길 수가 있다.

 

이것을 ,

고린도전서 7 24절에 있어서의 바울의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다.

 

'형제여, 각각 부르심을 받은 때에 있던 그대로 있어,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