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거듭난 삶 2019. 6. 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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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요한복음 3 16-21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정죄는 이것이니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미국 교회 중에는 이런 교회들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라 할지라도 교회의 멤버가 되려면

담임 목사와 면담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느 가족의 어린 자녀가 교회에 등록하게 되어 목사님과 문답을 합니다.

목사님이 가장 중요한 교리인 은혜로 받는 구원에 관해 물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죽지 않으셨다면 하늘나라에 올라 다른 방법이 있나요?".

 

7살난 아들이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있어요, 우주선 타구요.".

 

우주선을 타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길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는 엉뚱한 방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시할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울 만한 ,

우리가 정도하면 되겠지라는 것으로는 결코 구원이 오지 않습니다.

 

구원은 참으로 신비하고 엉뚱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엉뚱하게 보이지만, 말도 안되지만

 

"믿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기쁨"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 ", 로마서 3 20절입니다.

 

우리들의 행동거지가 올바르다고 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길로 갔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동은 이기심에서 출발한 것의 수준을 넘어서기가 어렵습니다.

베풀다가 순간적인 것입니다.

선한 동기에서 시작했다가도 뜻이 갈라지면, 마음이 상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도움주기를 포기해 버릴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21절과 22절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확실하게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율법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7절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그렇게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동이 아닌 다른 길이 있습니다.

 

본문 3 16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는 출발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하시는 사랑은 여기에 따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우리의 행위로가 아니라 거저 주어지는 사랑을 받으셔야 삶이 살아날 있습니다.

 

운동선수의 가장 영예가 있다면 그것은 "Hall of Fame",

말하자면 "명예의 전당" 이름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야구 선수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중에 유명한 미키 맨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야구 경력은 호화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42 동안이나 알콜 중독자로 삶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Billy 40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맨틀에게서 전해받은 병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다른 아들은 동일하게 알콜 중독으로 재활 센터의

신세를 져야만 했던 불행한 것이었습니다.

 

1994 그도 이상 피할 수없이 알콜 중독 재활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95 여름, 담당 의사들은 그의 간이 암으로 완전히 허물어져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달라스에 있는 베일러 병원에 이식 수술을 위해 입원하게 되었을 ,

그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겨 주었습니다.

 

"나의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의 멋진 본보기가 아닙니다.

(Don't follow my example. I'm no role model).

 

작가 Robert Louis Stevenson

 

"사람은 언제인가 자신이 살아 삶의 결과가 베푸는 잔치자리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말한대로 미키 맨틀은 결과의 비극적인 잔치 자리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것입니다.

 

이식 수술이 끝이 주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여전히 세포가 그의 몸속에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게 것을 감지한 맨틀은

자신의 옛적 뉴욕 양키즈의 동료였던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Bobby Richardson 불렀습니다.

 

과거에도 복음을 전한 적이 있었던 Bobby 다시 복음을

그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1995 8 어느 목요일이었습니다.

Bobby 함께 찾아온 그의 아내 Betsy 친구인 미키 맨틀의 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언제인가 우리도 듣게 질문입니다.

 

"미키, 만일 당신이 오늘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섰을

그가 당신에게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어오게 해야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잠시 생각을 하던 미키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요한복음 3 16절의 놀라운 약속을 정확하게 암송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그로부터 3일이 되던 그는 땅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여러분 그가 지금 어디에 있을 같습니까?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동거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믿음으로 고백한다면 우리도 그를 천국에서 만나보게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것입니다.

나의 삶과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회복 불가능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지워버릴 만큼의 죄된 삶은 있을 없습니다.

은혜가 있기 때문에 본문 3 17절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구원받을 없습니다.

우리의 착한 삶으로 구원받을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주전에 설교할 말씀드렸던 Ron이라는

암흑가의 번째 보스 얘기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당시 사건 취재를 위해 기자로 참석해

Ron 고백에 충격을 받았던 Lee Strobel 목사님도 기억나십니까?

 

제가 그날 재판 결과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제가 그날 어떤 판정이 이루어졌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재판장에서 Ron 고백했던 것을 다시 전합니다.

 

"I'm guilty.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일을 저질렀습니다.

모두 나의 책임입니다. 감옥에 가야 한다면 가겠습니다.

그러나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나의 저질렀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한 일은 지극히 단순하게 모두 잘못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I am sorry. I really am."

 

말을 들은 판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Ron 당신의 인생을 이처럼 바꾸어 놓으신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감옥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Go home and be with your family.

당신에게 집행유예를 선언합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있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0 이상의 감옥살이를 해야 사람에게 이런 결정이 있을 있다고 느껴지십니까?

 

재판정을 나오면서 이제는 목사가 Lee Strobel 기자가 물었습니다.

 

"판사의 결정에 대해 말이 있습니까?".

 

Ron Lee 기자의 눈을 깊이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판사가 한일은 그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What that judge did was show me grace-sort of like Jesus dId.".

 

Ron 덧붙입니다.

 

"Lee 기자님, 제가 한가지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만일 당신도 분을 받아들이시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도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점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And Lee, can I tell you something?

If you let him, God will show you grace, too. Don't forget that.".

 

말이 Lee 기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아 마침내 그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으시면,

그리스도를 영접하시면 우리는 심판의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멸망하는 자리에 서지 않게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값없이 구속받아서 영원한 생명의 자리에 서게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의 자리에 사람들이 서기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은혜로 받는 구원의 소식을 들어도 받기를 저절하는 것입니까?

 

19 말씀을 보십시오.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빛보다 어두움!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러운 일은 어두운 이루어 집니까?

성경은 보다 정확하게 꼬집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원래 악합니다.

결코 선하지 않습니다. 시기심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자신을 조금만 공격했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도 소용없습니다.

 

아이들을 보십시오. 우리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거짓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것을 행할 압니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음란과 도적질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살인의 마음과 간음과 채워도 채워도 그칠 모르는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방탕과", ( 7 22)

 

여기에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선함을 자랑할 없습니다.

성형수술로 아무리 눈을 새롭게 만들고 얼굴을 전혀 사람으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성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

성경의 말씀은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 12 말씀을 보실까요?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어두운 우리 삶의 모습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속의 삶이 드러난다면

부끄러워 고개를 없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런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불쌍한 존재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말이 없다면 우리는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날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드리십시오.

약속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들을 오늘 본문 20절은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절대로 빛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빛을 좇아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빛을 피하여 반대방향으로 나갑니다.

 

왜냐하면 빛으로 나가면 자신이 폭로되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빛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빛을 미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배척을 받으십니까?

분은 폭로하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속을 비추어 더러운 것을 자꾸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빛이 오기만 하면 이것을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빛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미워집니다. 꼬투리를 잡고 싶습니다.

 

20 마지막 부분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자신의 행위가 드러날까봐 그들은 빛을 미워하고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어두움을 사랑하여 빛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빛과 어두움이 있을 어두움을 선택할 수도 있고 빛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두고 탐욕을 부릴 수도 있고, 절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21 말씀은

 

"진리를 좇아 빛으로 나아가는 자들"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라고 그들 마음속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을 같습니까?

진리를 좇아간다고 해서 깨끗한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본성은 똑같습니다.

사람의 속에 동일한 더러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안에서 그의 삶이 드러날 줄을 알고도

빛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 것이 다른 점입니다.

 

빛을 피하여 어두움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나아가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은혜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겠다는 선택입니다.

 

나의 삶이 어두움에 있는 자들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더러움이 나의 힘으로는 해결될 없는 것임을 알고

놋뱀을 쳐다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좇는 자는"이란 말의 "좇는다" 말은 practice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연습한다는 것이지요. 연습 완벽하게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꾸 해보고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습한다고 해도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좇아가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쩔 없이

""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케이 아더라는 뛰어난 성경공부 교재 집필자가 고백한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자신이 "영적치유"라는 책의 마지막 장인 "온유함"이라는

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온유함이란 투덜대거나 논쟁하지 않고 보복감이 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는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의를 그녀는 수년 동안 알아왔고, 없을 만큼 많이 가르쳐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것을 읽고 있다가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삶을 들여다보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

전혀 온유하지 않은 삶을 걷고 있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공부 교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뛰어난 성경 연구가이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가지고는 어두움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빛으로 나아 없습니다.

우리는 실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온유해야하고 용납할 있어야 하고 사랑하고 덮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삶에 있어야 우리는 평강을 누리며 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덮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덮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은혜의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구원을 위한 약속의 말씀은 접어두고 혼자 발버둥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심판과 구원의 자리를 우리 앞에 내어 놓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빛으로 나아오시겠습니까?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주님께 여러분을 맡기고 생명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이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