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거듭난 삶 2019. 6. 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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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

 

: [ 3:31-36]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 본격적으로 예수와 침례 요한과의 대조와 침례 요한에 대한 예수의 우월성이 증거되고 있는 31-36절까지의 본문은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언급된 내용과 유사한 일면이 있다.

 

(12-13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본서를 기록한 요한의 근본 의도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신적 탁월성(卓越性) 드러내는 있었기 때문에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가 일간되게 부각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침레 요한에 대한 예수의 상대적 우위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탁월성에 대해서이다.

 

침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중에 요한보다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여전히 '땅에서 '라는 점에서 감히 예수의 신적 존재와 비길 상대가 못되는 것이다.

 

한편 '땅에서 ' 직접적으로는 침례 요한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인 측면으로 확대해서 생각 하면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오시나 '라는 표현은 대망의 메시야에 대한 다른 칭호로서 침례 요한에 의해 사용되곤 했다.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것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7:19 요한이 제자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그리고 위로부터 오시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며,

 

표현은 그리스도의 신적 초월성과 유일성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에 여기서 ''(the earth)이란 표현이

 

'세상'이라는 표현 속에 들어 있는 '악한 ', '속한 ' 의미한다고 단정 지을 없으며 그렇다고 하나님께 향하는 어떤 요소를 지녔다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요한의 표현에 있어서 ''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것과는 대조적인 의미에서의 인간 실존의 자연 상태 창조주와는 구별되는 피조물을 지칭한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 말이다.

 

(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땅에 속한 - 구절 또한 앞에서 설명한 '' 개념에 근거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직접적으로는 침례 요한의 모든 사역 회개에의 권유와 회개한 자들에게 행한 침례를 지칭한다.

 

침례 요한을 위시한 모든 선지자의 사역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것일 직접 영생(eternal life) 제공하지는 못한다.

 

예수가 오시기 이전의 모든 선지자의 사역은 예수의 오심을 알리기 위한 '전령(傳令)' 해당하는 것이고, 예수가 세상에 오셔서 하늘로 다시 올라가신 이후의 모든 제자들의 사역도 결코 예수에 대한 '증언'(testimony) 범주를 넘지 못한다.

 

 

 

[ 3:32]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보고 들은 - 표현 역시 앞서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유사하며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보고 들은 바의 구체적 내용은 없으나

하늘로부터 자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신령하고 비밀스러운 일들이나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

그리고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사실,

그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다고 하는 사실 등을 두루 포함한다.

 

받는 - '능동적으로 취하다'(take), '영접하다'(receive), '깨닫다'(apprehend) 등의 뜻으로 복음에 대한 성도의 합당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 3: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 예수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다.

 

(12:44-50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나의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49) 내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요일 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반면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의 기원이 하늘로 부터임과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를 통해 밝히 드러났다는 사실

하나님의 성품과 모든 약속이 진실되고 참되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증거하게 되는 셈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하나님의 진실성은 인간의 인정이나 증거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실하심에 대한 인침(certification)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 하겠다.

 

'인치다' 본래의 뜻인 '밀봉하다' 의미보다는 '재가(裁可)하다', '증명하다'(certify)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본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용되었다.

 

 

 

[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 하나님이 예수께 성령을 한없이 (without limit) 부어주셨음을 뜻한다.

 

예수는 성자(聖子)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모든 신성(神性) 지니셨고 성령과도 하나이셨던 것이다.

 

 

 

[ 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손에 주셨으니

 

만물을 손에 주셨으니 - 말씀에는 가지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1) 사랑으로 연합된 아버지와 아들 간의 상호 관계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28:18;고전 15:27; 1:18) 표현과 유사한

 

(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고전 15:27 만물을 저의 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1:18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구절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과 권세로써, 만물 모든 피조물들을 그의 뜻대로 지배하시고 명령하실 있는 완전한 권위를 부여받으신 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만물은 각각 예수와의 관계에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다.

 

(2) 인간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께 의존하시는 모습이다.

 

전능성(全能性) 삼위(三位) 하나님 모두에게 속한 것이며 어느 쯤에서 다른 쪽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신성과 아울러 진정한 인간으로서 땅에 오셨고 바로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권세를 수여받으셨던 것이다.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의 '낮아지심' 인생의 완전한 모범을 보게 된다.

 

 

 

[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본절은 사람들에게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을 권고한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영생에 이를 것인지 아니면 불순종 가운데서 멸망에 처하든지 하나가 앞에 놓여 있을 중간 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영생이 있고 - 아버지가 아들이신 예수를 사랑하고 만물의 지배권을 주셨다는 앞절의 말씀이 결코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생이야말로 성도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적용되고 주어질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인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여기서 영생이 현재적 소유의 측면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성도들 또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육체적 죽음을 경험해야 하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사건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이미 발생하였으므로 그는 영원한 삶에로 들어간 것이다.

영생을 보지 못하고 - 요한에게 있어서 '영생' '하나님 나라' 매우 유사한 단어이다.

 

본절에서 영생은 하나님 나라를 보는 또는 영원한 평화와 사랑의 나눔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삶을 이미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구약 성경에서 즐겨 사용되고 있는 표현은

 

( 22: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32:11 모세가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3:17 너는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너의 열조에게 맹세하심 같이 수효를 번성케 하실 것이라)

 

인간의 일시적인 성냄이나 분노를 의미하는 헬라어 '뒤모스'와는 달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패역한 세대에게 내리시는 일관된 '심판', '' 등의 뜻인 '오르게' 의미한다.

 

'머물러 있느니라' 번역된 '메노' 직역하면 '남아 있다'(remain)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새롭게 부여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하나님의 진노(God's wrath) 아래서 살아가던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예수의 증거를 용납하지 않는 자는 죄와 사망과 악의 권세에서 결코 해방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악의 세력 속에 그대로 방치(放置)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처벌은 이미 시작되었고 장래에 끝마치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