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거듭난 삶 2019. 7. 2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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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 [ 8:12-20]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19) 이에 저희가 묻되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 8:12]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크로솨이데(Grosheide),

여기 이른 " 세상의 "이란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만물 창조의 근본을 이룬 첫째 날의 빛을 연상케 한다고 하며,

빛이 없을 때에는 피조물이 하나의 혼돈체였으나,

빛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질서 있는 우주가 되었다고 하였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I,P.10).

 

"" 영적으로 가지 작용을 의미하는데,

 

, 밝혀 주어 알게함 (계시를 의미함),

구원하여 줌과 깨끗하게 (성결을 의미함)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이라고 하신 동기는,

메시야를 빛과 같다고 구약을 생각하신데 있었을 것이다.

 

(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42:6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4:2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참조 - (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따르는 " 말은,

어두움 가운데서 빛만을 따르는 것과 같은 태도를 생각케 한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 밖에 다른 데는 어두움만 가득한 확신하고

전적으로 분만을 의지하고 따라 간다.

 

그러므로 여기 "따른다" 말은, 신앙의 동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두움" 무지와 죄와 불행을 모두 가리키는 비유이다.

 

"생명의 "이란 것은,

생명에서 나는 ,

, 하나님과 사귄 생명에서 나는 빛으로서 우리의 지능을

밝게 하여 주는 것이라고, 고데이(F,Godet)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을 주는 빛이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6:35 "생명의 "이란 ,

6:68 "영생의 말씀"이란 ,

21:6 "생명수" 말이,

모두 같은 성격 있는 문구로서

생명을 주는 , 말씀, 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이스(B.Weiss),

이것을 "생명 중개(仲介) " 이라고 해석하였다.

(das zum Leben gehorige Licht, welches dieses vermittelt).

 

그러면, 생명을 얻음이,

그리스도의 선물인 빛을 소유함에 달렸다.

 

슈렝크(Von Schrenk) 푸리브노우(Prinbnow)등도

말을 그런 뜻으로 해석하여 말하기를,

 

"빛은 진리를 아는데 인도하고, 진리는 생명으로 인도한다"라고 하였다.

(Das Licht fuhrt zum Erkennen der Wahrheit und dieses zum Leben. a. w. S. 72).

 

 

 

[ 8:13-14]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 바리새인들의 힐난한 말은 모순된 것이다.

그들은 빛의 자중성을 모른 것이다.

 

빛은 다른 것의 증거를 요구하지 않고 직접 자체의 밝음을 나타냄으로,

빛된 사실을 성립시킨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높은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는 자기가 친히 자기를 증거하심으로만 자기를 나타내신다.

 

이런 의미에서도 그는 빛과 같다.

 

 

 

[ 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

 

구절과 다음 구절은,

사람에게 대한 바리새인들의 지식 방법과 예수님의 것을 대조한다.

바리새인들은 남들을 외모(육체) 판단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므로 판단(심판) 하시지 않는다.

그는 누구든지 때에 판단하실 필요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은 일반인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처지에서 그는 판단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 8: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판단하심을 가리킨다.

그가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 판단하시며 증거하실지라도

증거는 참되다고 하신다.

 

이유와 증거는, 그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합하여 나타내시는 유력한 증인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 8:17-18] 너희 율법에도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

 

" 증인" 관하여는,

 

* 참조 : ( 35:30 무릇 사람을 죽인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것이요;

 

17:6 죽일 자를 사람이나 사람의 증거로 죽일 것이요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것이며,

 

19:15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증인의 입으로나 증인의 입으로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예수님은, 증인의 증거가 유력한 사실을 여기 지적하시고,

자기에게 대한 이런 이중의 증거자들이 계심을 말씀해 주신다.

아버지의 증거는 성경의 증거를 가리킨다.

 

(5:37-39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여기 구절을 보아서도 신약에 사용된 "증거", 혹은 "증인"이란 말이

법정의 증거 원칙에 의한 것임이 알려진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관한 증인이 분인 사실을

유대인의 율법에 근거하여 논하신 것이다.

 

스키페르스(R.Schippers), 예수님에게 대한 신약 증인들의 증거가,

법정 증거의 엄중한 성격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예수님은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들은, 법정 증거의 성격을 가지고 사실 그대로에 대하여 증거하는 증인들은, 법정 증거의 성격을 가지고 사실 그대로에 대하여 증거한 자들이다.

 

법정 재판도 그들을 정당성 있다고 간주해야 된다. 더욱 요한의 저술에 있어서는, '증거' 말이 구약에서 처럼 법정 술어의 성격을 것이다.

거기서(요한 복음), 증인이란 것은 친히 보고 들은 사실을 증거하는 자였다.

 

거기 기록된대로, 증인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성부와 성령처럼 그의 무소부지(無所不知) 성품에 기준하여

사실을 밝히 아시고 말씀하신 증거이다.

 

그리고 요한 복음에 있는 모든 증거는,

예수님에게 대한 사람들의 불신앙과 비진리를 걸어서

법정 증거의 성격으로 고소한 것이다.

 

법적 정당성과 사실, 가지는 서로 분리될 없는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법정에서는 사실이라면 정당성 있는 판결을 내리는 법이다.

둘의 관련성은 엄중한 것이다.

 

이런 성격을 띠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요한 복음의 증거이다.

따라서 증거된 사실을 신앙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밖에 없는 것이다.

만큼 증거는 엄중하고 참된 법정 증거의 사실주의에 입각한 것이다"(意譯)라고 하였다.

(Getuigen van Jezus Christus in Het Nieuwe Testament, 1938, PP.198-199).

 

 

 

[ 8:19] 이에 저희가 묻되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

 

그들은, 예수님의 아버지, , 하나님을 모르는 처지에서,

"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원인은,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 드리지 않음(믿지 않음)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계시(啓示)하시는 중보자(中保者)시다

 

(5:38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보았느니라,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1:27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8:20]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

 

"연보궤" 성전 안에 여자들이 서는 밖에 있다. 그곳은 산헤드린 의회가 모이는 방에서 멀지 않다. 예수께서 거기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잡지 못한 것은, 아직 하나님께서 하락하시지 않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