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거듭난 삶 2019. 7. 19.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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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 중에 잡혀온 여자가 용서받다.

 

: [ 8:1-1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나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8: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 그가 감람산으로 가신 것은 기도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나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나아오는지라 - 그가 감람산으로 가신 것은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기도하시기 위함이었겠고, 일찌기 성전으로 들어오신 것은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다.

 

기도하심과 가르치심은 그분의 주요한 일이었다.

 

 

 

[ 8:3-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흠을 잡아 보려고 애쓴 자들이었다.

 

그들은, 범죄한 여자를 끌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잔인한 월권행위를 감행하였다.

 

죄인은 법정에서 취급되어야 하는데, 법관이 아닌 그들로서 죄인을 끌고 다닐 권리는 어디 있었는가?

 

 

 

[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

 

* 참조 (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22:22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통간한 남자와 여자를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목적은, 진실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님의 대답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만일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을 것이면, 로마의 정권을 거스리게 되었을 뻔하였다. 이유는,

 

그때에 로마의 정권이 유대 민간에게 사형 집행권을 허락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만일 여자를 돌로 치지 말라고 하셨더라면, 모세의 율법을 거스린 자라는 죄인 취급을 받으실 뻔하였다.

 

유대인들은 저렇게 교묘하게 예수님을 딜레마(Dilemma=窮地) 빠뜨리려고 시험하였다.

 

 

 

[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 위에 말한 것과 같이,

 

로마 법에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는 법이 없으니 만큼,

만일 예수님께서 모세의 법대로 하라고 명하신다면 로마 법에 걸리게 되고,

모세의 법대로 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산헤드린 공의회에 걸리게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예수님께서 글을 쓰신 일은, 사건에 관련하여 한번 있었을 뿐이다. 글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없다.

 

 

 

[ 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함은,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실언하시는 허물을 찾아 보려는 간교한 마음에서 그리한 것이다.

 

"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것은,

 

여자보다 먼저 각기 자기 자신을 심판하라는 말씀과 같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있어서 범죄자를 취급하는 계명(사랑) 원리이다.

 

(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말씀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속에서 티를 빼리라"( 7:5) 말씀과 같다.

 

그가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저희의 올무에 걸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의 양심을 찌르셨다.

 

 

 

[ 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 혹설에,

 

글은 거기 왔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이름이었겠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을 땅에 쓰신 목적은, 이름의 소유자들이 생명책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려 함이라고 한다.

 

( 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추측에 불과하다.

 

 

 

[ 8:9] 저희가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

 

크로솨이데(Grosheide), 그들의 나가게 원인이 예수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그의 기록하신 글에도 있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

 

"그들은, 예수님의 땅에 기록하신 말씀을 읽었으나 항복하지는 않고 부끄러움을 당하였으니 만큼, 거기서 나가는 밖에 없었다" 한다.

(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I,1950,P.7).

 

그들이 "하나씩" 나간 것은, 그들이 감심으로 행동하지 않고 마지 못하여 행동한 증표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양심적으로 옳은 알면서 그래도 대항해 보려는 억지를 부릴 듯이 머뭇거리다가 없어서 나가게 것이다.

 

그들은 저렇게 진리를 눌러 보려는 강퍅한 심술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을 찌르신 주님의 옳은 말씀의 권위 앞에서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모두 물러갔다.

 

 

 

[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예수님의 말씀은, 여자의 죄과를 가볍게 보시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다만 제멋대로 재판장이 되어 남을 정죄하는 인간들의 월권 행동을 옳지 않게 여기시는 뿐이다.

 

아니라, 그것은, 이제 신약 시대를 당하여 누구든지 주님을 믿을 때에 영적(靈的)으로 사죄함이 있는 사실을 암시한다.

 

 

 

[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회개자에게는 사죄를 선고하시는 사명을 가지셨다.

그러니 만큼, 그가 여자에게 회개를 권고하실 뿐이고 정죄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