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진리는 너희에게 자유를 얻게 할 것이다 2

거듭난 삶 2019. 7. 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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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지식과 자유(2)

 

요한복음 8 32


' 너희가 진리를 알리라. 그리고 진리는 너희에게 자유를 얻게 것이다'(요한복음 8;32)

 

중에 가지의 커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1 '진리'입니다.

2 '안다' 것입니다.

3 '자유'입니다.

 

모두가 말로서, 깊은 연구를 요하는 것입니다.

 

보통, '진리'라고 하면 학문상의 말입니다.

 

이학상의 진리라든가 철학상의 진리라고 하여,

학자가 연마의 결과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그러한 의미의 진리는 아닙니다.

이것을 진리라고 역한 것이 애당초 오해의 시작입니다.

 

학문상의 진리는 아닙니다. 신앙상의 실체입니다.

공허에 대한 실물입니다. 참된 이는 아닙니다.

사실인 것입니다.

 

계시록 19 11절에 말하는바

 

'충신 성실로 불리는 '(신실하고 참된 )입니다.

 

예수가 자기를 가리켜

 

'나는 진리이다'(요한복음 14;6)라고 하신 의미에 있어서의 진리입니다.

 

생명이요 빛이신 예수는 동시에 진리였던 것입니다.

 

사람을 떠난 이론상의 진리는 아닙니다.

진리가 사람으로서 나타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진리' 학문상의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실현자인 예수이시므로,

 

'안다'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물건을 안다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접근하고 그의 친구로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이신 당신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것이다'(요한복음 17;3)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서 한다면,

 

'(예수) 그들에게 있고, 당신(하나님) 내게 있나이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로 완전하게 하시렴이니이다'(요한복음 17;23) 되는 것입니다.

 

'안다' 것은 '있는 '입니다.

 

나를 그의 안에 두는 일입니다.

그와 나와 하나로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 같은 것입니다. 일체로 되는 일입니다. 일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안다' ,

 

예수와 일체로 되는 ,

결과가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바 자유란 사상상의 자유는 아닙니다.

그것이, 정치상의 자유가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유' 죄를 범하지 않는 자유입니다.

 

예수는 자유의 반대인 노예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여 말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릇 악을 행하는 자는 악의 노예다'(요한복음 8;34)라고.

 

악을 행하지 않기에 이르는 ,

악자 악마의 기반에서 벗어나는 ,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바의 자유입니다.

 

쉽게 선을 행할 있는 자유,

자유의 가장 고상한,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그를 믿고 그와 일체가 되어,

우리들은 그의 거룩하심 같이 거룩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참된 의미에 있어서의 자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안에 있고 그와 함께 되어 우리들도 또한 그와 같이 자유의 사람으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일절을 같이 해석할 , 의미가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으로서 크리스천인 기자(요한) 입장에서 않고,

우리들 현대인의 입장에서 이것을 해석하려 ,

우리들은 전연 이것을 잘못 해석하지 않을 없습니다.

 

오늘날 '진리'라고 하면 사상사의 진리입니다.

 

'안다' 하면 지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자유'라고 하면, 사상상으로가 아니면 정치상의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너희가 진리를 알리라. 그리고 진리는 너희에게 자유를 얻게 것이다'라고 것을 들으면,

 

우리들은,

 

예수를 플라톤(7 191역주) 같은 철학자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로크같은 정치학자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철학자도 아니고 정치학자도 아니라,

사람의 영혼의 구주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신 진리도 지식도 자유도,

사람의 영혼에 직접 관계있는 것이 아니어서는 됩니다.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니테리안 주의(Uniterianism-2 79역주) 변호로 하는 것은 오용이라고 하지 않을 없습니다. 유니테리안 주의는 유니테리안 주의로서 귀한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말씀에 의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은 유니테리안 주의와는 아주 다른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유니테리안 주의가 미치지 못하는 바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한마디로 유니테리안 주의를 배척하는 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일절로서 하는 주의의 변호에 반대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촌감삼의 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