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거듭난 삶 2019. 7. 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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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것이 아니요 2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 [ 8:52-59]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말은 사람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아버지시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 8:52-53]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말은 사람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부분에서는, 유대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 들렸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변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예수님께서 어떻게 신자들을 죽지 않게 하여 주실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영생하고야 비로소 남들도 영생케 터인데,

예수님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 선지자들과 아브라함도 죽지 않았는가?"한다.

 

 

 

[ 8:54-5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아버지시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난제들을 다음과 같이 해결하여 주셨다. ,

 

(1) 그의 말씀은 절대로 믿을 만한 것이라는 .

 

그의 주장은,

순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를 그대로 순종하여 전하시는 뿐이니 만큼,

그것은 절대적 진리라는 의미의 변론이다.

 

그의 주장,

, 그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아버지시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이니라" 하셨다.

 

이렇게 그의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만큼, 절대적 진리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불신앙한 원인은,

하나님을 아는 그들의 지식이 형식뿐이고 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신앙의 원인을 지적하시는 의미에서 그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라고 하셨다(54-55상반).

 

(2) 그가 유대인들의 그릇된 사상(예수님을 선지자들이나 아브라함보다 낮게 보는 사상((52-53) 시정시키심,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선지자들보다도 높다고 생각된 아브라함의 지위에 대하여, 그는 말씀하셨다(56-58).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6) -

 

랍비들의 사상에도,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메시야 시대가 계시되었다는 신념이 있었다.(C.K. Barrett,P.291).

 

그러나 그보다도 구절 상반절의 내용,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의 출생에 대한 약속을 받고 기뻐한 사실이다.

 

( 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이삭의 출생 약속은,

 

"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22:18) 약속 내용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메시야께서 그의 후손으로 나시게 것을 내다보게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내다보고 즐거워하였다.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말씀은, 과연 약속되었던대로 1 후에 이삭이 출생하게 되었는데, 아브라함은 약속 성취를 보고 기뻐했다는 뜻인 듯하다. (Hendriksen, PP. 64-65).

 

그러나 크로솨이데(Grosheide) 말하기를,

여기 보고 기뻐하였다 말은 아브라함이 땅에 있을 동안에 기뻐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늘에 가서 체험한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였다.

(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I,1950, P.60).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아브라함을 관설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았으니 만큼,

그가 아브라함보다 자기의 위대하심을 증거하시려는데 있다.

 

* 참조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

 

네가 아직 오십도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57). - 여기 "오십도 되었는데" 때문에, 학자들은 예수님의 연세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 때에 그의 연세가 30대라면,

 

"네가 오십도 되었는데"라고 유대인들의 말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 "오십"이란 것은, 예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시간 거리(2000년동안) 대조하여 생각된 짧은 연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58) -

 

"네가 오십도 되었는데"(57) 라고 유대인들의 힐문에 대하여 그는 대답하신다.

 

예수님은 그의 세상 연령에 의하여 위대해지신 분이 아니다.

그의 생애는 33 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그의 하신 일의 위대는 그의 초자연적 인격에 달렸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초역사적(超歷史的) 인격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셨다.

 

여기 이른바, "내가 있느니라" 하신 말씀의 헬라 원어는 현재사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계셨다는 뜻이 아니고,

때나 지금이나 그의 존재는 현재란 뜻이다.

 

비켄하우젤(Alfred Wikenhauser),

여기 "내가 있느니라" 말씀에서

그의 존재가 어느 역사적 시간에든지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표현되어 있다고 하였다.

 

(Durch bin ich "bringt er zum Ausdruck, dass seine Existenz unabhangig ist von jeder Zeit.- Das Evangelium nach Johannes, P.185).

 

다시 말하면, 그는,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시는 하나님이란 뜻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13:8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의미이다.

 

그는, 이렇게 초시간적 인격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세계에서 33 동안 행하신 그의 행적도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

 

우리는, 이렇게 위대하신 구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어떤 파선 당한 선객이 바다 가운데서

수면에 솟아 오른 바위 때문에 생명의 구원을 받았다.

바위의 꼭대기 면적은 비록 좁았으나 바위 밑은 매우 크며,

깊이 뿌리박고 있었으므로 안전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세상 역사의 생애는 짧게 가지셨지만, 인격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게 된다. 우리의 세상 생애가 짧아도 걱정될 것은 없다. 우리의 중요성은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데 있다.

 

 

 

[ 8: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

 

* 참조 (10:31-33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11:53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 생명을

원수들에게 내어 맡기지 않으셨다.

그는 위험을 피하여 숨기도 하셨다.

 

희생이 귀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낭비된 희생으로서

도리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