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거듭난 삶 2019. 7. 3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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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소경과 바리새인들

 

: [ 9:13-34]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어떻게 보게 것을 물으니 가로되 사람이 진흙을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17)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사람이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18)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것을 믿지 아니하고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20)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24)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사람이 죄인인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저희가 가로되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사람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34)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 9:13-16]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어떻게 보게 것을 물으니 가로되 사람이 진흙을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부분의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랐으므로 안식일을 범하였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고침 받은 소경더러 "어떻게 보게 되었는가?"라고 물은 것은,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눈에 발랐다는 말을 듣고자 함이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방해될 영업을 중지하라는 뜻이고, 무슨 동작이든지 금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취할 있는 동작은 안식일에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주로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선행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은 계명의 정신을 모르고, 안식일에는 사소한 동작이나 일까지 일체 없는 듯이 가르쳤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아시면서도 안식일에 고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바리새인들과의 의견 충돌을 각오하시고 진리를 행동으로 드러내신 처사이다.

 

진리는, 비진리로 더불어 충돌되는 기회에 도리어 빛을 나타내고 더욱 힘있게 전파된다.

 

 

 

[ 9:17]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사람이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사람이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 바리새인은, 고침 받은 소경이 저희들의 마음에 맞는 대답을 줄까 하여 다시 물어 보았다.

 

그들은, 사실이나 진리 그대로를 알고자 함보다, 자기들의 편벽된 고집을 어디서든지 통과시키려는 완강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은, 사실과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그들의 부패한 고집을 끝까지 애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간교한 계획은, 진리나 사실 앞에서 실패를 당하였다.

 

고침 받은 소경은 사실 그대로에 입각하여 대답하였는데, 그것이 그들의 간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고침 받은 소경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증거하였다. 물론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증거한 것은 만족하지 못한 고백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기대하였던 것과는 반대 방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진리는 여러가지로 곤고(困苦) 처지에 때마다 도리어 빛을 나타낸다.

 

 

 

[ 9:18-21]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것을 믿지 아니하고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20)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소경의 사건에 있어서 믿으려는 마음으로 질문 하지 않고, 어쨌든지 믿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으로 거듭거듭 질문한다.

 

신자들은 믿으려는 목적으로 사실과 진리를 찾으나, 악도들은 어쨌든지 믿지 않으려는 결심으로 끝까지 진리와 사실을 피하며 힐난한다.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소경의 부모에게서 저희의 불신앙을 지지하는 좋은 재료가 나타날까 하여 저렇게 질문하였던 것이다.

 

부모는 정직하게 그를 저희 아들이라고 증거하였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대답을 회피하였다.

 

이것은,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모르는 그들의 어두운 태도인 동시에, 진리 증거를 회피하는 겁약인 것이다.

 

그들이 저렇게 겁약하여진 이유는,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던 까닭이다.

 

그들은 저런 불의한 법을 무서워하였다.

진리와 경건을 떠나서 인간의 고집을 세우기 위한 법은 실상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저렇게 두려워하였으니, 그들의 심령의 어두움과 생활의 부패가 이로써 추측된다.

 

칼빈(Calvin)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출교권을 주신것은 교권자들로 하여금 영혼들의 목을 매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다만 그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집권자는 하나님 뿐이시고 사람들은 그의 사역자가 되는 뿐이다.

소위 감독이라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소원대로 교권을 가지고 우뢰와 같이 덤빌려면 덤비라고 하여라.

 

그들의 공허한 소리는, 진리를 배우지 못하여 의심 가운데 방황하는 자들 외에 아무도 두렵게 하지 못한다" 하였다.

 

(Calvin's Commentary, John's Gospel, Eerdmans Publishing Co. 1949, Vol. I,P.381).

 

 

 

[ 9:24-25]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사람이 죄인인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

 

여기 "이에" 말의 헬라 원어를 직역하면, "그러므로"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불신앙을 고집하기 위하여 때까지 논의하여 왔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번째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렀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말은 진리를 말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판정한다. 이것은 그들이 저희의 구원 받지 못한 사실을 자증(自證)하는 말이다.

 

실상은 저희들이 죄인이고 예수님은 절대의 의인(義人)이시건만, 그들은 사실을 거꾸로 인식하였다.

 

* 참조 (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것으로 것을 삼으며 것으로 것을 삼는 그들은 있을진저)

 

원통한 사실에 대하여, 소경 되었던 사람은 마음속에 가득한 확신을 발표하려고 일정 풍자식(諷刺式)으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라고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닌 사실을 그가 참으로 모른다는 말이 아니고,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판단을 풍자한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말한 ,

 

"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것은,

 

이론보다도 실제적 사실에 호소하여 바리새인들의 이론을 사정없이 꺾어 버림이다.

 

우리는 이론을 존중히 하여야 한다. 원칙상으로는 진정한 이론이라면, 거기에 기준하여 사실이 결론되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사람들이 참되지 않은 이론으로 사실을 매장하려는 일도 없지 않다. 그런 때에는, 이론보다도 사실이 계속적으로 주장되어야 한다.

소경 되었던 사람은 여기서 그런 방법을 취하였다.

 

그는 사실을 그대로 주장하였다. 크로솨이데(F.W.Grosheide), 점에 있어서 소경 되었던 사람의 심리를 바로 파악하고 말하였다.

 

, "그가 ' 가지' 안다고 했는데, 그것은 실상 그에게 있어서 가지이면서 모든 것을 의미하는 중대한 것이다. , 그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본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I,1950, P.82).

 

 

[ 9:26-29] 저희가 가로되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

 

바리새인들은 불신앙의 고집을 계속하였다.

 

그들이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기를,

 

"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눈을 뜨게 하였느냐"라고 하였다.

 

이것은, 듣기 싫으리 만큼 역스러운 질문의 중복인 것이다. 그들은 담벽을 문이라고 만큼 어두워지고 강퍅해진 것이다.

 

그들의 이론은, 소경의 놀라운 사실 앞에서 여지없이 막혔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쓸데없는 질문을 거듭했던 것이다. 그처럼 그들은 불신앙의 철면피였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자의 신앙의 뱃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저들의 불신앙적 철면피를 산산히 깨뜨릴 만큼, 날카롭게 사정없는 풍자식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저들을 꾸지람하는 방식으로 나오면서,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라고 말이다.

 

신앙자는 어떤 때에 대적을 향하여 조롱하는 태도를 취한다. 물론 그것이 상대방의 영혼을 증오하는 악독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불신앙 사상 그것에 대하여 사정 보지 않는 심판의 철퇴(鐵槌) 것이다.

 

저런 사정없는 철퇴를 효과적으로 사용 있는 자는, 실상 상대방의 영혼을 위하여 있는 자이다.

 

신앙자의 속에는 악독이 없다. 이제는 바리새인들이 하는 없이 악독과 욕으로 소경 되었던 자를 대적한다.

 

불신앙자의 무기는 저렇게 불법과 악독인 것이다.

사람이 악독해지면 사상과 이론도 어두워진다.

그들은, 이론에 있어서 모순성을 띠었다. , 그들 자신이 자칭 모세의 제자라고 하나, 내용에 있어서는 모세의 제자가 못된다.

 

이유는, 그들이 모세의 제자였더라면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5:46 말하기를,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하였다.

 

 

 

[ 9:30-33]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사람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34)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

 

소경 되었던 자는 점에 있어서도 자기의 굳센 신앙을 나타낸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에 대하여,

 

"이상하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불신앙자에게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있는 심리는, 천국과 () 통하고 있는 굳센 신념인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론에 기준하여 그들의 불신앙을 이상히 여겼다.

 

(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한 자를 들으신다는 확신

 

(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사상에 대하여 버나드(Bernard) 성경에서 여러 귀절들을 참조하였다.

 

( 27:9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66:18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28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1:15 너희가 손을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11:11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14: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8: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소리로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3:4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의 악하던 대로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

 

7:1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10:35 나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깨달았도다)

 

(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은 전연 없는데, 예수님께서 이런 위대한 일을 행하셨으니, 어찌 그를 죄인이라고 있겠는가 하는 확신

 

(32-33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의한 있는 논증이다.

 

바리새인들은, 소경 되었던 사람의 신앙적 증거 앞에서 산산히 실패를 당하고, 이제는 말이 없어서 그를 출교하였다.

 

소경 되었던 자는 초신자(初信者)였다.

그러나 그의 올바른 신앙이 확신 있게 증거를 나타낼 때에, 많은 바리새인들도 여지없이 패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