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거듭난 삶 2019. 8. 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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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

 

: [ 13:31-35]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주시리라

33)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제자인 알리라.

 

 

[ 13: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 여기서 "인자", 메시야를 가리킨다.

 

"영광을 얻었다" 말씀은, 그의 부활 승천을 의미한다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유다가 나간 후에, 이어서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서,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리킨다.

 

유다가 나간 것은, 예수님에게 고난이 닥칠 것을 알게 사건이다.

아니라,

 

다음 절에, "영광을 주시리니"라고 미래사(未來詞)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신 후의 (부활, 승천) 의미한 것을 보아서도,

 

구절의 "영광을 얻었고" 과거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실 고난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그의 받으실 고난을 영광으로 보셨다.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 "인자를 인하여" "인자 안에서"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과 일체이심으로,

아들이 영광을 얻으심에 따라서 자신도 영광을 얻으신다.

 

 

 

[ 13: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주시리라 -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 여기 "자기로 인하여" 말은, 하나님 계신 곳을 가리킨다.

 

17:5에서는, 뜻이 "아버지와 함께" 말로 표현되었다.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러면, 구절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 승천케 하셔서 자기의 계신 곳에 함께 계시도록 하심을 가리킨다.

 

(6: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아버지 너희 아버지, 하나님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곳에 가시게 되므로 제자들과는 당분간 나누이게 된다.

다음의 33 말씀이 뜻이다.

 

 

 

[ 13:33]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 말씀이 윗절(32) 무슨 연락을 가지는가?

 

연락은 이렇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주신 결과(32 하반) 그는 아버지의 계신 곳으로 가시게 된다.

 

그의 제자들은 당분간 그와 함께 있을 없다는 것이다.

 

* 참조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 13:34]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여기 " 계명"이란 말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1) " 계명"이란 명칭의 이유,

 

창조 질서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을 혈맥으로 지으셨다고 하였는데,

 

(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혈통으로 만드사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근거를 성립시켰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이웃 사랑하기를 몸과 같이 하라" 계명이 있다.

 

(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구약의 계명도 사랑 중심의 것이다.

 

( 13:8-10 피차 사랑의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것과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 가운데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계명은 독특한 동기들을 제공한다.

 

* 종말관적 동기.

 

그것은, "사랑하라" 계명이면서도 구약의 예언적인 것이 성취된 종류이다.

 

그것이야말로 종말관적인 것이다.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이루신 속죄를 믿는 자들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34 하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다른 신자들을 위하여 희생하며,

필요하면 그들을 위하여 죽을 처지에 있다.

 

* 영원한 기업의 동기.

 

같은 혈맥에 속한 자들 중에서도

 

(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혈통으로 만드사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마침내 영원히 나누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구원 받은 형제들은 영원히 나누이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자리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서로끼리 위하여 희생할 처지에 있다.

 

(2) 계명을 지키는 방법.

 

그것은 물론 위에 관설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34 하반에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것으로써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것이 바로 13장의 제목이 되어 있으니,

곧바로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실이다.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지극한 사랑이라고, 1절은 말하고 있다.

 

그가 그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겸손이지만

 

(겸손도 사랑임 -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그가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10-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그는, 희생의 정신으로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대속의 희생은 없으나, 남들의 짐을 자신이 걸머지게 되는 경우는 있을 있다.

 

* 그것은 사랑이다.

 

(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우리가 진리를 이론으로 배우면서도 실제로 남들을 위해 희생할 줄은 모른다.

우리가 남들에게 대하여 이렇게 무관심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내가 계명을 지켜야만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자신이 머물게 됨을 모르기 때문임.

 

15:10 말하기를, "너희도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하였다.

 

* 내가 남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일을 보지 않기 때문임.

 

자식을 기르노라고 온갖 희생을 어머니는,

기른 자식을 잊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자식을 위하여 희생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하여 희생해 일이 없는 자식은,

어머니를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사랑하려면 먼저 그를 위한 희생으로 시작해야 된다.

 

* 천국 운동의 필요성을 뜨겁게 느끼지 못한 까닭임.

 

신자들이 세상에 있는 것은 마치,

마리가 많은 이리들 가운데 있음과 같고,

백만 군대에게 포위된 것과도 같다.

 

세상엔 불신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

우리는 세력을 복음으로 이겨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 시기하거나 험담하지 말고 서로 아끼고 도와주어야 된다.

 

 

* 신자가 영원한 나라를 기억하지 못한 까닭.

 

그리스도께서도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시게 동기가 그의 가실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심에 있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3 저녁 먹는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32-34절의 문맥도 내용을 보여준다.

 

, 그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영광(내세에 들어가심) 받으시게 것을 염두에 두시고(32) 계명을 주셨다.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자는,

세상의 것은 무엇이든지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희생한다.

 

번은, 구세군 사관들 109명이 아일란드의 황후(Empress of Ireland) 배를 타고 가다가 파선되어 물에 빠졌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함께 빠진 자들의 구명대(救命袋) 없음을 보고 자기들의 것을 벗어 주면서, "나는 당신보다 죽을 있다"라고 하면서 희생하였다.

 

그들은 내세를 확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기까지 사랑을 베풀었다.

 

* 내가 남을 위하여 희생할 의용이 끝까지 생기지 않으면, 가지는 해야 .

 

그것은, 내가 남들을 위하여 죽기까지라도 희생할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감을 가진 자는 그대로 행치 못한 처지에도 극도의 겸손을 소유하게 된다.

 

*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 4:6 그러나 더욱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3) 예수님께서 계명을 주신 목적.

 

예수님의 계명은 모세의 10계명을 폐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와 그의 사도들은, 모세의 10계명을 그대로 세워 나가셨다.

 

(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13:8-10 피차 사랑의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것과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 가운데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는 진리이시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계시된 구약의 계명들을 폐지하실 리가 없다.

 

* 하나님의 계명은 () 자체이다.

 

사실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 선은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질적 의지이다.

 

종교와 도덕(선과 관련된 ), 서로 달라도 서로 독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함께,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된 방면이다.

 

하나님의 의지 자체인 선의 표현 , 계명은 어느 시대의 것이든지 폐지되지 않는다. 모세의 율법 유대인들만을 위한 제도들은 신약 시대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위한 도덕적인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십계명 4 계명에,

쉬라고 것은 보편적 도덕 요소이다.

 

쉬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을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과 짐승의 피곤과 쇠약을 막는 자비를 위한 것이다.

 

아니라, 계명은 창조 질서에 속한 선한 제도이다.

 

, 이것은 모세 이전에 인류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었다.

 

다만 안식일을 지키는데 관계된 법칙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므로 변동되었다.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범한 자를 죽인 것은, 신정 국가(神政國家) 시대, , 정교 일체(政敎一體) 새대에 속한 것이었다.

 

안식일과 날자 순서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신약 시대에 날자가 변한 것으로 보아서 있다.

 

구약 시대에는 7(토요일)이었던 것이, 신약 시대에는 7 첫날(주일) 변경되었다.

 

그것이 그렇게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창조(創造) 기념했으나,

기독자는 그리스도의 부활(復活) 기념하기 때문이다.

 

 

 

[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제자인 알리라. -

 

여기 이른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인도주의(人道主義) 속하는 사랑이 아니고 주님을 믿으며 사랑하는 일의 열매이다.

 

모든 사람들(세상) 사랑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를 식별한다는 것은,

가지 내용을 포함한 말씀이다. 이것은,

 

(1) 예수님의 제자된 표가 사랑이라는 말과 같고,

(2) 또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 참조 (17:21-23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