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거듭난 삶 2019. 8.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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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

 

요한복음 13 34-35 :

'내가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만약 서로 사랑하면, 이에 의해,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명이란,

 

너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없는 것은, 너희가 사랑하라는 계명은,

과연 새로운 계명인가, 그것입니다.

 

구약성서 레위기 19 1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원수를 갚지 말라. 동포에 대하여 원한을 품지 말라. 자기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그렇듯 이미 모세에 의해 주어진 계명이 결코 새로운 계명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역시 교법사에 대답하여, 모세의 율법 중에서

 

가장 것의 2,

 

자기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마태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계명으로서, 그리스도가 제자에게 주신 계명 이라고는, 아무리 보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서의 오해가 없어서는 됩니다.

혹은 오역이 없어서는 됩니다.

그리고 조금 원문에 비추어 본다면,

그것이 오역임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다' 아래 구분 지은 것이 애당초 오역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계명이란, 34 전체에 걸쳐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그리스문(헬라어) 따라서, 어구대로 이것을 직역한다면,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기 위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새로운 계명이라'

 

보통의 일본역에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라고 있는 것은,

아무리 해도 '사랑한 같이' 아니어서는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개역할 , 의미는 이것을 찾기에 어렵지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여기서 주신,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의 새로운 이유는,

사랑의 성질에 있습니다.

 

단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재세(在世) , 제자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그들을 사랑하신 같이,

그처럼, 또는 그것과 같은 성질의 사랑으로서,

그들 서로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일종 특별한,

세상이 아직 알지 못했던 사랑이었음은,

우리들 그리스도 신자에게는 해득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것이 새로운 사랑이었으므로,

사랑으로써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어서는 됩니다.

그리스도는 계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전절에 따라 나의 직역을 말씀드립니다.

 

'너희가 만약 사랑을 상호간에 가진다면,

이것으로써, 사람들이,

너희가 특히 제자임을 것이다'

 

보통역으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이라고 있는데, 원문에 따라

 

'사랑을 상호간에 가진다면'으로 하는 편이 약간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애써서 애정 행위로 나가는데 그칠 아니라,

심중에 사랑을 가득히 가지면,

그리고 마음의 충만한 데서 이것을 행위로 나타내기에 이른다면,

이라는 의미가 원문 중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역의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참고하십시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서로 가지는 것이,

이러한 것이 그들이 특히 예수의 제자라는 것의,

세상에 대한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특히' 글자를 넣은 것은, 원문 emoi 있는 어세를 나타내고자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훈계에 의하면,

사람이 그의 제자 증거는,

특종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이것을 행위로 나타내는 가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침례를 받은 자가 제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별한 교의를 굳게 유지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자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됨은,

그리스도가 제자를 사랑하신 사랑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아주 명백합니다. 누구도 이것을 곡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계명을 주신 전후의 관계를 조사해 보면, 의미가 보다 일층 명백하게 되어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어찌하여 이때에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일지요?

그것은, 33절을 읽으면 있습니다.

 

'소자들아, 내가 잠시 너희와 함께 있다.

너희가, 나를 찾으리라.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없다'

 

이에 의해 보면, 새로운 계명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별의 말씀임을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제자들을 떠나려 함에 있어서, 그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스승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호자를 잃으려는데 있어서 그들이 세상에서 의지할 것은 가지로 스승을 따르던 동지들 외에 없습니다.

 

그들은 이제 바야흐로 고아로 되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는 새로이 '위로자(보혜사)' 보내어 그들을 인도하시려 대도,

그러나 주의 모습은 이제부터 이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지금부터 그들은 목자 없는 같은 자로 되어,

이리 중에 들어가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바 커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언하는 마음으로서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약하고, 도울 없는 소자여,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는 잠시 동안뿐.

내가 너희를 세상에 남겨두고 아버지께로 가야할 때는 목전에 임박했다.

내가 후에 너희는 적막한 나머지 나를 찾으리라.

하지만 나를 없을 것이다.

너희는 지금 내가 가는 곳에 없다.

아직 죄의 세상에 남아서 사업을 해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훈계로서 말을 너희에게 남긴다.

이는 특별한 훈계이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 서로가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내가 후는,

너희가 오늘까지 내게서 받은 사랑을 서로 사이에서 구하라.

이제부터 후에 너희가 서로에 대하여 아버지어라, 형이어라.

그리하여 너희가 요구하는 사랑의 결핍을 채우도록 하라.'

 

만약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부연(expatiation)하여 본다면 거의 같은 것으로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는 모우리 모도나리(5 361역주) 죽음에 임박하여 아들을 경계함 같은 것으로서,

 

' 개의 화살은 쉽게 이것을 꺾을 있으나,

개의 화살을 묶음으로 하면 이것을 꺾을 수가 없다.

그같이, 형제가 개개별별로 서면 쉽게 적의 멸하는 바로 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 단합하여 일체로 되어 서면,

어떠한 적도 이에 당해낼 수가 없다'

 

이것이 모우리 모도나리가 아들에 남긴 유언으로서,

그것이야말로, 이것을 동기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유훈과 조금도 다를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관계된 이때의 우려는 결코

기우(baseles anxiety)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의 제자만큼 도움 없는 자는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과는 전혀 관계를 끊은 자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수종한 까닭에

부모형제 친척에게 마저 미움 받기에 이른 자입니다.

 

세상에 의지할 없는 자라 해도 실로 그리스도의 제자 같은 자는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있어서는 외국에 체류하는 나그네 같은 자입니다.

고독, 적막, 궁핍상은 가장 심하게 그들에게 있어서 보는 것입니다.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

주는 가고 천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

불신자는 발호하고, 악인은 도량(rampancy)하고,

우리들의 귀히 여기는 이름은 조소되고,

우리들은 세상의 티끌, 또는 만물의 때처럼 취급된다.'

 

경우에 이어서 그리스도의 제자 자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에 가련한 자치고서 실로 그들 같은 자는 없습니다.

 

바울은

 

'만약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우리들의 소망이 다만 세상뿐이라면, 모든 사람 중에 우리는 가장 가련한 자이다'(고린도전서15:19)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조금 바꾸어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들 그리스도의 제자로 서로의 사랑 없으면,

모든 사람 중에 우리는 가장 가련한 자라고.

 

세상 사람은 이익 위해 결합합니다.

명예 위해 결합합니다.

 

그러나 이익과 명예를 방기한 그리스도의 제자는 이것으로서 일치 결합의 동기로 수는 없습니다.

 

* 내촌감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