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거듭난 삶 2019. 9. 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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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解産) 고통과 해산 후의 기쁨

 

: [ 16:19-24 예수께서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기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16:19] 예수께서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묻고자 함을 아시고 - 요한은 제자들이 서로 말하는 것을 예수가 '들으셨다'(아쿠오)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셨다' 표현하여 예수의 신적인 통찰력을 강조했다.

 

한편 18절과는 달리 '알다'라는 동사가 '기노스코' 언급되었다.

 

(18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여기서도 요한은 동사가 지닌 독특한 의미에 따라 사용하지 않고 17절에 사용된 '오이다' 반복을 피하기 위해 '기노스코' 사용했다.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 말은 또는 '애곡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울다'(크라이오) 비슷하게 사용된다.

 

여기서는 '울다' 함께 사용되어 예수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슬픔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를 따랐던 사람이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와 나눈 대화를 기술했던 누가는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슬픈 빛은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수의 제자들도 그런 슬픔에 잠겨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예수는 자신의 죽음 제자들이 크게 슬퍼하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 각자 본래의 곳으로 흩어질 것을 미리 아시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하신 그의 말씀이 사실이었음을 제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그들에게 증거가 있도록 예수는 '슬픔'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 예수의 말씀은 슬픔 대신에 기쁨이 주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라는 의미이다.

 

십자가가 제자들에게는 처음에 슬픔의 원인이 되나 나중에는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못한 자들에게는 수치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예수와 일시적인 이별로 인한 슬픔을 주지만 결국에는 기쁨으로 변하여 영광의 대상이 된다.

 

칼빈(Calvin) 십자가를 복음의 결실을 위하여 저희들이 감수해야 슬픔이라고 설명하였다.

 

 

 

[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기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 예수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해산(解産)하는 여인에 비유하셨다.

 

해산하는 여인이 주는 일반적인 의미는 출산의 고통 뒤에는 아기가 태어난 것으로 인한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구절은 다음에 이어지는 '아이를 낳으면'이란 구절과 같이 '호탄'(whenever) 연결된 부정의 시상절(indefinite temporal clause)로서 '해산할 때마다'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고통 후에 따르는 기쁨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구약에서 해산하는 여인의 비유가 지닌 의미를 살펴본다면 본절에서 예수가 비유를 사용하신 근본적인 목적을 깊이 파악할 있을 것이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은 종종 슬픔과 위험에 처한 이스라엘을 묘사할 때에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에 비유하였다.

 

( 26:17-19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18)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66:7-14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8)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같이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같이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젖을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무릎에서 것이라

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원수에게 더하리라;

 

4:3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있도다 살륙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6:24 우리가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13:13-15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14)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목전에 숨으리라

15)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근원이 마르며 샘이 마르고 적축한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세상이 멸망하는 고통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 13: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후기 유대교는 수난기를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위한 해산의 고통이라고 교리화시켰다. (C.K. Barrett).

 

예수는 이러한 구약의 예언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적용하여 종말론적인 언어로 묘사하심으로써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부활의 사건을 미리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 본문이 구약의 메시야적 종말론 사상을 전제하고 있지만 태어난 '아이' 9:6 나오는 ' 아기'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C.K. Barrett).

 

( 9:6 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것임이라)

 

오히려 새로 태어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며 나아가 제자들의 고통과 함께 탄생할 새로운 이스라엘(L. Morris) 교회를 의미한다.

 

 

 

[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 이는 16절과 19절에서 사용된 '나를 보리라' 암시된 부활의 사상과 관계되어 있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19 예수께서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16절과 19절에서는 제자들이 보는 것에 예수의 부활뿐 아니라 성령의 강림이 이중적 의미로 암시되어 있으며

본절에서는 예수 자신이 직접 제자들을 보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는 부활 40 동안 지상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스런 부활을 나타내실 것을 미리 알리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어떠한 처지 속에 있다 할지라도 저들을 찾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마음이 기쁠 것이요 - 성도가 얻는 마음의 기쁨은 성경에서 크게 가지로 구분된다.

 

(1)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한 :

 

다윗은 숱한 고난 가운데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했던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 16:8-1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앞에 모심이여 그가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마음이 기쁘고 영광도 즐거워하며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리고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기뻐할 것을 권했다.

 

( 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원수에게 더하리라).

 

(2)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그들의 삶에 있어서 두드러진 점은 기쁨이 충만했다는 사실이다.

 

(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바울은 성령의 열매 , 사랑 다음으로 '희락' '기쁨' 언급했다.

 

(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기쁨은 모진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 나타나는 영원한 기쁨이다.

 

본절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기쁨은 가지 종류의 기쁨 모두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기쁨을 얻게 되었으며,

 

( 24:52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예수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성령의 강림으로 인해 그들의 기쁨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말은 제자들이 결코 슬픔을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제자들이 받게 기쁨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므로 세상 사람들이 잠시 체험하는 일시적인 기쁨과 구별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말은 제자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한 더욱 심화된 기쁨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L. Morris).

 

한편 '빼앗다' 동사가 미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현재형이 사용될 있는 것은 미래의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미래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 26:18 가라사대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때가 가까웠으니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27:63 주여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 16:23]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이름으로 주시리라

 

날에는 - 신약 성경에서 주로 '마지막 ', '시대의 종말'등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 13:17 날에는 아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9 이는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러나 본절에서 구절은 부활 이후의 시간을 가리킨다고 봄이 바람직하다.(L. Morris).

 

' ' 19절의 '조금 있으면'이라는 단어와 같이 유동적 의미를 지녔다고 '성령이 오시면'이라는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다.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 예수의 제자들은 고별 설교 가운데서 계속 의문을 가졌다;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발을 씻기시나이까,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14: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16:17-18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18)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구절은 성령이 임하시면 제자들이 예수께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이름으로 주시리라 - 구절은 '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26; 15:16) 표현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성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또한 그의 이름으로 기도 응답을 받는다.

 

 

 

[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 지속적인 기도는 다른 이름으로써는 소용없고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 응답이 있을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라는 구절은 미래적 시간에는 어떤 일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증보자 개념은 본절에서 아직은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직 십자가 상에서 피흘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성전의 휘장은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으며, 신성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다.(Calvin)

 

그러나 그의 구속 사역이 완성될 그날 '조금 있으면' 제자들은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