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거듭난 삶 2019. 9. 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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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고백

 

: [ 16:25-30]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날에 너희가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 16: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 '비사'(比辭) 번역된 '파로이미아' 본서에서 '비유'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파로이미아' 확연히 드러나지 않거나 난해한 , 또는 상징적인 말의 형태를 가리킨다.

 

한편 '이것' 의미하는 것은 14:1에서 본장 24절까지 말씀하신 것으로 제자들이 이해할 없는 비유(비사)들이다.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 '밝힌다' 동사는 10:24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향하여 예수 자신의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했던 곳에서 언급되었다.

 

(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여기서 예수는 숨기는 것과 밝히는 것을 이유를 깨닫는 집단과 그것을 깨닫지 못한 집단을 대조시켜 설명하시지 않고 ''라는 단어와 연결시켜 설명하신다.

 

본절에서는 비유의 깊은 뜻에 대한 이해의 유무가 마가의 기록처럼

 

( 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제자이냐 아니면 막연한 집단이냐에 따라 구분되었다기 보다는 계시를 밝히시는 때에 의하여 비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에 따라 구분된다.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함께 했던 모든 무리들(제자들 포함) 부활을 경험한 무리들 사이에 대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밀을 밝히 알리시는 '' 직접적으로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시는 때를 의미하므로 예수와 지상 생애를 함께 했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오시는 때에 가서야 성부에 관한 것을 포함한 모든 비밀을 알게 것이다.

 

 

 

[ 16:26] 날에 너희가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 성령을 통해서 비밀을 밝히 알게 되면 제자들은 마땅히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능력이 생길 것이다.

 

(23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실제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로는, 구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14:16이나 17:9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한은 보혜사 성령이 오신 후에도 예수가 성부 앞에서 대언자로 성도를 위해 활동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8:34 9:24-26 역시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를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9:24-26 그리스도께서는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따라서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성령의 오심 이전이나 이후나 계속되고 있음을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중보는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완성되었으므로 희생의 공로는 지속적이다. 무릎을 굻고 아뢰지 아니한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직무에 의해 성도들의 기도는 보좌 앞에 상달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중보 기도는 부활하신 후에도 지속된다.

 

그러나 세상에 게신 동안에는 보좌를 향해 예수가 친히 제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신다(17).

 

따라서 본절은 성령이 오신 후에는 제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멈추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 계시는 동안 예수가 제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로 기도하셨던 것과 같은 기도를 멈추신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시면 성령에 의해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27절은 이유를 걸음 나가서 설명해 준다.

 

 

 

[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 구절에서 '친히'(아우토스)라는 말이 보통의 경우와 같이 강조적인 용법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의미는 '자의적인' 또는 '자발적인' 것으로 해석할 있다. (C.K. Barrett, Field).

 

본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를 사랑하고 그가 아버지께로부터 자인 것을 믿음으로 아버지께서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사랑과 믿음이 아버지의 사랑을 보장하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설득에 의하여 사랑을 베푸시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랑은 오직 당신 스스로의 자의(自意) 의해 베풀어지는 것이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에 대해 칼빈(Calvin)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설명했다.


없는 자들을 부르셔서 있는 자들로 만드시고,

딱딱한 심령을 부드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 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 요한은 본서를 시작할 아버지로부터 오신 아들의 신성과 말씀이 육신이 성육신의 비밀과

 

(1: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것이 없느니라

4)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자라

9)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들을 통한 구속 사역을 설명했다.

 

이제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 이것을 다시 한번 요약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는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아버지로부터 오신 예수는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이처럼 본절에서 예수는 자신의 오고 가심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기원이 결코 세상이 아님을 밝히셨다.

 

이러한 예수의 말씀 속에는 자신을 정치적 메시야, 세상적 메시야로 생각하며 그러한 메시야로 삼으려는 자들의 의도가 전혀 소용없음도 암시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가 세상을 떠나심은 성령의 오심에 대한 확실한 조건이요 신호이다.

 

 

 

[ 16: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 제자들은 실제로 예수의 비유들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10:6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예수 역시 비사로 말씀하신 후에 그날에 가셔야 제자들이 밝히 있을 것이라고(23, 25)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며 특히 25절과 서로 모순되는 진술로 보인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밝히 드러날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또한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사랑과 올바른 신앙 고백을(27, 28)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말씀하시는 비사의 의미를 이해한 것처럼 대답했다(C.K. Barrett).

 

(2) 제자들은 의혹의 안개가 걷혀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같지만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Bernard, Lindars).

단지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께서 비사로 말씀하지 않았으며

또한 쉽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어렵게 생각한 것은 예수의 언어적 표현(비유 또는 비사) 아니라

미래에 되어질 일들 자체에 대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알고 있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그때 당시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L. Morris).

 

(3)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도를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단지 어떠한 느낌에 의하여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다.

제자들은 어렴풋하게 느끼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처럼 과장되게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복음에 대한 아주 미비한 지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확신으로 외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Calvin).

 

(4) 25절에서 약속한 '그때' 제자들에게는 성취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으므로

당시 제자들은 모든 의심을 해결할 있었다는 것이다(H.R. Reynolds).

 

그러나 부활한 그리스도를 목격한 이후에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을 생각하면

 

(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25절에서 약속한 것들이 시점에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5) 제자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어서 예수 자신의 실존에 대한

모든 비밀들을 세심하게 들으면서 예기치 못했던 깨달음에 사로 잡혔다.

그래서 자발적이면서도 만장 일치적인 고백이 그들의 입술에서 튀어 나왔다(Godet).

 

그런데 31, 33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밝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체포되던 스승을 버려두고 도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모든 견해들을 종합해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감추어진 비밀에 대하여 조금 이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본절과 같이 말한 것은 약간의 과장이 포함된 같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믿었으므로 이와 같은 고백을 있었다.

 

 

 

[ 16: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아나이다 - 모든 것을 온전히 아는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이시다.

 

단지 제자들은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를 안다고 고백한다.

 

예수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아신다.

 

(2:24-25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문을 아시고

 

(19 예수께서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의문을 해결해 주실 있다.

제자들은 이같은 예수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믿음은 아직 지극히 연약하여 그들이 고난을 극복할 만큼의 믿음은 되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 본절과 29절에서 언급된 제자들의 고백은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있다.

 

(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생각대로 실현할 없음을 보여준다.

 

(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그들은 스승 앞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한 것처럼 대답했으나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해는 아직 불완전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32절의 말씀은 예수가 굳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32 보라 너희가 각각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