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지혜의 여인 룻

거듭난 삶 2009. 11. 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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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의 선택

 

룻1:6-14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얼마 전 이천의 냉동창고에서 불이 나서 40여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 중에는 중국에서 온 동포들도 많았습니다. 중국 동포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중국에 거주했던 사람들입니다. 만주와 간도 등으로 이주해서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당시 조선 땅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떠나기도 했고, 일제의 착취와 억압을 벗어나 살기 위해,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서 정착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분들은 그들이 살던 중국에서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고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많은 빚을 지면서도 희망을 품고 역이민 혹은 역이주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죽음이 안타깝지만 그들의 역경에 찬 삶의 여정을 알기에 더욱 이번 비극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사건으로 희생되고 부상당한 이들의 유족들과 가족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다시 힘을 내서 이미 생명을 잃은 이들이 못 다 이룬 희망을 되찾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룻기의 내용도 외국으로 이주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유대 베들레헴에 오랫동안 흉년이 계속되었습니다. 도무지 먹고살 방법이 없자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 그리고 그의 두 아들애 모험을 각오하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은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한 명의 이름은 오르바이고 또 한 명의 이름은 룻이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두 아들도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뿐입니다. 정착하여 산 기간이 오래되어 그 지역의 풍토에도 익숙하고 삶의 기반도 잡혔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도무지 그 땅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얘들아, 나는 늙고 지쳤다. 남편과 두 아들을 뭍은 이 땅이 결코 정겹지 않구나, 들리는 소문에 떠나 온 고향이 이제는 먹고 살만 하게 되었다는구나, 하나님께서 돌보시어 고향에 양식이 풍성하게 되었다고 하니 고향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나오미와 두 며느리들은 이삿짐을 싸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던 나오미가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난 날 내가 생면부지의 이 땅으로 와서 이제는 남편도 자식도 다 잃고 오늘까지 고향을 그리며 살았는데 이 두 며느리도 그렇게 되겠구나. 나야 고향으로 가니 좋다만 남편도 없이 타국으로 가야하는 며느리들이야 좋을리 없을게다."

그래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이제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지금까지 너희 남편들과 내게 잘해주어 고맙구나. 하나님께서 그런 너희들을 기뻐하실 것으로 믿는다. 분명히 하나님이 너희를 선대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허락하시어 재혼하여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새생활을 시작하려므나. 그렇게 되도록 너희를 위해 기도하마." 나오미가 두 며느리들을 안고 차례로 입을 맞추며 말하자 며느리도 울고, 시어머니도 울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중에도 고부간에는 통곡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던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어느 사회이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의 관계는 애증이 겹치는 관계입니다. 시어머니를 친정 어머니처럼 지극 정성으로 대하는 며느리도 있고, 며느리를 친딸처럼 대하는 시어머니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로, 날마다 시어머니와 으르렁거리다가 남편이 죽으면 낼름 제 살 길을 찾아가는 며느리도 있고, 허구헌 날, 며느리를 달달 볶아대는 시어머니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록 서로가 피붙이는 아니어도, 결혼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통해 형성되어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관계이기에, 가족으로서의 그 관계는 세상의 어느 관계보다 소중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존중하고 위해 주며 살갑게 살아가는 가족이 세상에는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 가족들을 보면 너무나 보기 좋고 아름다워서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나오미와 두 며느리들이 그러했습니다. 나오미는 참으로 선한 시어머니였습니다. 본문에 보니 두 며느리를 일컬어 "내 딸들아"라고 부릅니다. 며느리들을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진심이 보여지지 않나요? 시어머니요, 장차 시어머니가 되실 여러분! 이런 나오미의 모습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며느리들 역시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지는 두 며느리들의 모습, "어찌되었든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과 같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앞날을 걱정해주고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걱정했습니다. 비록 많은 시간동안 살면서 서로 갈등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관계를 형성하게 한 남편들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은 그런 내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가족이라는 관계를 해체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들로 인해, 남편으로 인해 맺어진 가족이란 관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에 두었습니다.

며느리들이 함께 가겠다고 하자 나오미가 재차 말합니다.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구약에 형사취수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돌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나오미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죽은 남편들의 동생을 가진 것도 아닌데 따라올 것 없다. 돌아가려무나. 나는 이제 늙었다. 재혼해서 남편을 둘 것도 아니지만 설령 내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다해도 그 아이가 어느 세월에 장가 갈 만큼 자랄 것이며 너희가 그 날을 기다릴 이유도 없다. 아직도 시퍼렇게 젊은 너희가 남편 없이 지낼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구나." 그러면서 나오미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들의 죽음을 가리켜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고까지 말합니다. 시어머니의 말이 그들을 더욱 눈물나게 했습니다. 14절을 보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었다"고 말합니다. 시어머니의 배려하는 마음이 며느리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 며느리는 선택을 달리 했습니다. 오르바라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을 좇아 이별의 입맞춤을 뒤로하고 친정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며느리 룻은 뜻을 굽히지 않고 시어머니를 좇아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떠난 오르바나 시어머니를 좇은 룻이나 어느 한편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거나, 특별히 어느 한 편이 옳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현실적인 면에서 마음을 서로에게 주었습니다.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지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했고 그것은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선택으로 인해 두 며느리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시어머니의 곁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간 오르바는 이 후 어느 곳에서도 그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르바는 잊혀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모압의 어떤 남자와 재혼하여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부자를 만나 부유하게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재혼하지 않고 평생 남편을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오르바가 그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오르바의 선택에 대해 아무 말이 없고 그 이후의 삶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르바는 행복했든 불행했든 그렇게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난 후 잊혀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며느리 룻은 다릅니다. 오늘 본문 이후의 내용을 보면 나오미가 룻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오르바가 떠난 것은 단순히 시어머니의 곁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품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전에 섬기던 신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룻이 이렇게 말합니다. 16-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룻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룻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모셨다는데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룻의 선택이 아름답고 귀한데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룻이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시집 온 그 순간에 모압이라는 이방 민족의 한 여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이 유대인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간주합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룻은 세상의 것으로 자기 길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룻기 전체를 읽어보면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가난과 싸우며 참으로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너무나 다정하게, 너무나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며느리를 사랑한 시어머니 나오미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며느리를 자기 곁에 붙잡아두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를 자기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그 지역의 부유한 유지였던 보아스의 밭으로 보내, 이삭을 줍게 함으로써 보아스와 룻이 부부로 맺어질 수 있도록 은연중에 배려해 주었습니다. 결국 보아스와 룻은 결혼하였습니다.

 

룻기 4:10을 보니 보아스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면서 룻을 가리켜 자기 아내임과 동시에 그 결혼이 이미 죽은 룻의 남편 말론의 후사를 잇는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섬기는 시어머니를 따라 나섬으로서 세상은 물론 하나님께도 기억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룻기 2:11을 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그리고 룻기 2:12절을 보면, 룻의 선택은 하나님께 기쁨이었고 하나님은 룻에게 특별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룻의 시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행실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됨을 선택한 룻에게 보아스를 통해 이렇게 약속합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은 보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온 룻에게 온전한 상, 가장 큰 상을 주셨습니다.

룻기 4:13을 보면 하나님은 나오미를 통해 룻을 보아스와 맺어주셨고 룻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였고 보아스의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아기를 낳아 시어머니의 품에 안겨드렸습니다. 룻기 4:14-15을 보면 사람들이 아기를 안고 있는 나오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후사를 잇게 하셨고 룻이 낳은 아들이 당신의 "생명의 회복자" 곧 후손이며 "노년의 봉양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룻이 낳은 아들을 가리켜 시어머니를 극진히 사랑하는,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가 낳은 자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룻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사랑했고 귀한 며느리였습니다.

 

룻기 4:16-17을 보면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웃 여인들이 이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불렀습니다. 이 오벳이 바로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 곧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룻의 후손에서 다윗이 나게 하셨고, 다윗의 후손으로 구세주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 보면 룻은 예수님의 조상으로 선명하게 그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룻의 선택은 너무나 크고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룻은 세상의 행복을 얻으려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룻이 선택한 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룻의 선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위해 크게 쓰임받게 된 복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선택해야 할 순간들이 많습니다. 룻의 행실과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의 아름다운 행실과 하나님을 선택함이 복받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룻의 선택에서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복된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과감히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거나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선택의 순간은 때로 어렵고 괴로울 수 있지만 좋은 선택은 하나님의 기쁨을 얻고 만복을 받는 비결이 됩니다. 룻의 선택에서 신앙과 삶의 교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2008. 1. 27(오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둥교회 목사 박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