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분

거듭난 삶 2009. 11. 6. 23:42
728x90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분

 

눅 10:38-42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즘 放學기간이라서 매일 매끼 아내가 해 주는 음식을 대접 받고 사는데 음식이 맛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의 대답은 거의

괜찮아! 정도로 대답을 합니다. 이왕이면 설혹 맛이 없더라도

어! 그럼, 정말 맛있네! 하고 감탄하듯 말해줘야 서로 기분이 좋을 텐데도 나는 그런 표현에 매우 인색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서양 남자들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 표현에 못 마땅했든지 계속되는 대화 끝에 아내는

다른 여자와 6개월만 살다오거나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과거에 없던 아내의 핀잔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의례껏 나의 대답은

그래도 돼? 하고 은근히 자신있는 듯한 나의 응수 였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대화를 했다가 오히려 한 방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젖은 낙엽 신세인데 가 볼 테면 가보라. 그리고 더 당당한 소리가

오지 않아도 된다. 고 하는 아내의 당당하고 자신있는 그 한 마디에 내 나이가 정말 낙엽 신세가 되어 이제는 아내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젖은 낙엽의 신세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굴려보고 과연 이젠 그 정도까지로 내려가 있는 내 인생의 세월인가하고 되생각해 보는 씁쓸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것을 자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구나...하면서 자조하기도 합니다.

 

 ♡7000피트 上空을 날고 있는 비행기에서 엔진이 고장났습니다. 곧 추락위기에 놓이고 安全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 승객들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좌석의 중간 즈음에 앉아있던 중년 부부의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미안해 내 인생에 마지막으로 당신을 즐겁게 해 주려고 여행에 나섰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구료." 그러자 부인은 속삭이듯이 남편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나는 당신과 같이 앉아 있고 같이 죽는 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요. 인생 자체가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그러하여도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자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또 강하여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온전케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植物의 씨앗 속에는 줄기와 나뭇잎, 그리고 찬란한 꽃, 그리고 열매의 모든 可能性이 담겨져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처음 태어난 아담과 하와는 영생과 부활의 화려한 가능성을 그 속에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不順從과 犯罪함으로 인해서 그것을 빼앗겼고 死亡에게, 그리고 罪惡에게 복종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닮아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불순종과 범죄로 그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아담과 하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교제하여 그들의 가문 속에서 예수님을 오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중의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성경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하나님의 마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곧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 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들은 변하지 않아

내가 아플 때 보다 니가 아파할 때가 내 가슴을 철들게 했고

너의 사랑안에 나는 옷을 벗었다. 거짓의 옷을 벗어 버렸다.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까지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을 사랑으로 남게 해 주오.

가수 김 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옆에 있어주는 그것을 원한다는 것이지요. 또 내 자신의 존재의 아픔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이 자신을 철들게 했다는 애정 깊은 마음을 표현합니다.

자기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이 자기의 아픔보다 더 아파오니까 그 아픔 속에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랑은 그저 옆에 있어만 줘도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랑일 것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사람.

여러분, 사람들 중에 멋있는 사람 그리고 좋은 사람,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노래의 가사처럼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닐까요?

 

아는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사람은 그윽한 사람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남자든 여자든 그윽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생활을 하시다가 그런 그윽한 여자를 보면 보는 즉시 저에게 문자를 쳐 주시기 바랍니다.

제 문자 번호는..... 그런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이야기 하고 싶고 무엇인가가 깊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지요. 보이는 그것이 전부인 사람보다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그 뒤에 무엇인가가 있는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면 그 뒤의 무엇인가가 보고 싶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윽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어느 자매들과의 만남에서 일어난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라는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그녀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집에 들어오신 이후로 줄곧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 마르다는 손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많아 마음이 몹시 분주했습니다.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무엇을 대접할까하며 분주했습니다.

 

과거에 봄, 가을 대심방 기간에 심방을 다니다 보면 집집마다 커피를 비롯한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들을 내어 와서 많게는 하루에 12잔 정도는 마시게 됩니다. 안마시면 준비하신 가정들에게 실망을 줄 것 같아서 순교적 각오를 하고 맛있는 척 하고 기쁘게 마시고 먹어주어야 심방을 받는 가정들이 기뻐합니다. 안마시거나 쪼끔만 먹어도

맛이 없으신가요? 하고 서운해 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먹어 줘야 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목사님이 여느 집에 오셔도 그렇게 준비를 하는데 예수님이 모처럼 마르다의 집에 오셨는데 어떠했겠습니까? 마르다는 다만 식사 한 끼라도 잘 대접을 해 드려야지 하는 고민에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이 많아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도와주어야 할 동생이 분명히 있는데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바쁜 줄을 알면 당연히 와서 함께 준비를 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인데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엌에서 나와 보니까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과 지금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언니 마르다는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요즘 말로 표현을 한다면 열을 받았을까요?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니 저것이,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나를 돕지 않고 거기서 놀기만 해!'하면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예수님, 내 동생에게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것으로 근심을 하는데 몇 가지만 하든지 아니면 한가지만이라도 하여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 할 것이다'고 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가 하는 것을 인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음식을 준비하는 마르다 보고도 여기 와서 같이 이야기 하자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냥 그렇게 하도록 놓아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으로 근심하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쁘고 분주한 것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려면,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려면 한 가지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르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강박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은 무엇인가 일을 해야만 자기의 존재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유가 없는 사람이지요.

(막내 처제가 교회에서 그렇게 온갖 일에 봉사 또는 혹사라고 할 정도로 교회에 묶여서..., 또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내 아내에게서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무엇인가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마르다의 일 중독증인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自己中心的 思考가 있습니다.

자기가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되어야 한다는 思考方式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만큼 했는데 왜 너는 이만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문제인 것입니다.(ex 김장환목사님. 수시로 암행 출동해서 全職員 呼出, 密使를 통해서 정보를 얻고 봉급까지도 그것으 로 조정하기까지)

마르다 그녀도 나는 이만큼 하고 있는데 동생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그 생각이 바로 이런 것인 겁니다. 그러기에 마르다가 자신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마리아는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劃一的 思考方式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지 못하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調和가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즐거웠습니다. 기뻤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분을 위해서 무엇을 열심히 준비는 하지 못해도 그저 그분을 바라보는 것으로 좋았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그저 듣고만 있어도 幸福했던 것입니다.

 

그분과 對話를 하면서 웃을 때는 함께 웃고 진지할 때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속에서는 먹지 않아도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감을 마리아는 체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사람. 여러분 서로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런 분은 우리 주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겠지만요.

우리가 거울을 보듯이 직접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분이 지신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이제는 너무나 많이 달려 있기에, 밤거리를 다닐 때 고개를 조그만 들고 쳐다보면 보이는 것이 붉은 네온 십자가들입니다.

감격과 위로를 주어야 할 십자가가 가끔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면 그리고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문제인 것입니다.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生의 意味가 무엇인지 모르고 헤매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다닐 때, 그저 바라만 봐도 새 힘이 솟는 그런 십자가와 교회가 되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닫혀진 붉은 네온 십자가들 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어세오세요! 놀다가세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都市속에서 이리 저리 방황하는 마치 욕정에 빠져서 미친 개들처럼 그들의 눈에 보이는 정욕의 상징인 휘황한 네온사인들과는 분명히 구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무거운 그 십자가에 내어놓으시면서 돌아가셨는데

그러기에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기도와 감동이 그리고 눈물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감사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다시 살아났구나! 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의 간절한 감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저 좋은 십자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으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주셨는데, 틀에 박히고 敎理化된 틀 속에 더욱더 사람을 얽어 매이게 한다면 그런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두 목사 가족의 實例

☆친구목사님 본인은 새벽기도와 저녁기도 아내목사는 0時기도와...

계속 드리는 릴레이식 기도로 4500평을 헌납의 땅으로 시작해서 기도처와 각종 부속건물들 그리고 자동차 3대, 그리고 50평짜리 성전약속까지 ... 그리고 기도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이목사를 위해서도 친구목사는 매일 한 번씩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어제 전화 통화중 그것을 고맙다는 얘기중 한 번이 아니라 두 차례씩 드리고 있다고...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수개월간 장기간 요양생활, 병약한 모습으로 교인들의 후한 대접들과 그에 대한 미안함과 보답하는 마음에서라도 빨리 조기 은퇴하고 다른데 가서 개척을 해서라도 현재의 목회하고 있는 교회를 떠나 주어야 한다는 마음...

 

이제 우리는 각자의 심령을 들여다보고 십자가를 십자가 되게 하기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예수님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만 봐도 좋으신 분으로 원래의 그 모습으로 회복시켜 드려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 그분은 그저 바라봐도 좋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신앙의 비밀은 하나입니다. 첫째도 사랑이요. 둘째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독생자도 주셨고 십자가도 성령님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 사랑을 믿는 자만이 응답받는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을 비롯한 이 한주간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해 더욱 예수님의 복스러운 삶을 나누며 살아가는 기회가 되시기를 축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