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환의 조언
성 경: [삼상 9:6-10]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7)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삼상 9:6]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 여기서 '이 성'은
라마다임소빔,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곧 라마를 가리킨다(Smith, Fay).
(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사무엘이
그의 사사직과 제사장직을 수행 하던 근거지였다.
(7: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한편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직무를 담당하던
'선지자'에 대한 일반적 명칭이다.
(2: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삿 13: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왕상 12: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3:1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14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좇아 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뇨 대답하되 그러하다;
왕하 1:9 이에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저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서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저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3 왕이 세번째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 이 말은 사울의 사환이 한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무엘이 그 당시 일반 백성들에 의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즉 이것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3:20) 라는
말씀이 실제적인 사실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반영해 주는 말이다.
▶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 이것은 참선지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객관적 증거였다.
(신 13:1-3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18:21-22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또한 이것은 3:19에서 본서 저자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말한 바가 실제로 백성들에게 사실로서 인정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
사환의 이같은 말은
그가 사무엘의 선지자 됨을 온전히 믿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사환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사사로운 점(占)이나 치는 사람으로 잘못 이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상생활에 관한 제반 문제들까지도
사무엘에게 문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F.R.Fay).
▶ 우리의 갈 길을 - 이것은 사울과 사환이
길을 잃어버렸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암나귀를 찾을 수 있는
방법과 장소를 알고 싶어한 것이다(Keil).
한편,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고찰할 사실은
사무엘에 관한 이야기를 사환이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당시 사울이 사무엘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일개 사환이 알고 있었던 지식을
유력한 집안의 아들인 사울이 전혀 몰랐을 리 없다.
다만 나귀를 정신없이 찾는 중에 라마성 근처에 이르자,
사울의 사환이 먼저 그 사실을 깨닫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어지는 7절에서 사울이 선지자에게 드릴
예물의 풍습까지 알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확실하다.
[삼상 9:7]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 일반적으로 중근동 지방에서는
존경하는 어른을 방문할 때, 그의 신분에 걸 맞는
예물을 지참해 가는 풍습이 있었다(Pulpit Commentary).
특히 이러한 관습은
성경에서 선지자에게 무엇을 물으러 가는 경우와 관련하여 많이 나타난다.
(왕상 14:3 그대의 손에 떡 열과 과자와 꿀 한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저가 그대에게 이 아이의 어떻게 될 것을 알게 하리라;
왕하 4:42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암 7: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미 3: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 하였으니 - 이 말은 선지자에게 드릴 예물로서
음식이 절대적이거나 또는 제일 좋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울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집에서 갖고 나온 것이 단지 음식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음식조차도 바닥 난 상황에서
사울이 위와 같은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 예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테수라'는 희귀한 단어로서,
곧 선지자(선견자)에게 무엇을 문의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사례'를 뜻한다(R. Payne Smith).
[삼상 9: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 은 한 세겔의 사분 일 - 이것은 주조(鑄造)된 은화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헬레니즘 시대까지는 은화 및 동전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Klein).
한편 은(銀)'한 세겔'은 약 11.5g에 해당되며,
따라서 사분 일(1/4) 세겔은 약 2.9g이다.
▶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 이것은 선지자에게
반드시 예물을 바쳐야만 그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사환은 다만 그 당시의 풍습에 합당한 기본적 예의를 갖춘 후
선지자에게 물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삼상 9: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 옛적 이스라엘에 - 본서의 저자는 사무엘이 활동하던 당시를
이처럼 오래 전의 일로 봄으로써,
사무엘서가 사무엘이 활동했던 얼마 후에 성경으로 기록되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6:18 드린 바 금쥐는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한편 혹자는 9절 전체를
후대의 어떤 필사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주해(註解)하여 삽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R. Payne Smith).
(11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18-19절 사울이 성문 가운데 사무엘에게 나아가 가로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컨대 내게 가르치소서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 이것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던
계시 수납의 방식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Westermann).
(출 28: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물론 이후 시대에도 우림과 둠밈이 간혹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그 당시에는 여러 형편에 따라 우림과 둠밈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이것은 그 당시 제사장의 권위가 현저히 떨어졌고,
그 역할도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 선견자 - '선견자'(로에)는 '보다'(see)라는 동사 '라아'에서 파생된 말로,
곧 '보는 자'(seer)라는 의미이다.
이 명칭은 '선지자'(나비)라는 명칭이 아직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시기에
사용된 명칭으로서(Klein),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측면에 강조점을 둔 고대적 명칭이다.
아울러 성경에는 '로에'(Roeh)와 더불어
'선견자'(先見者)로 번역되는 단어가 또 있는데,
곧 '호제'(Chozeh)이다.
(삼하 24: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왕하 17: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대상 25:5 이는 다 헤만의 아들들이니 나팔을 부는 자며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 하나님이 헤만에게 열네 아들과 세 딸을 주셨더라;
대하 9:29 이 외에 솔로몬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대하여 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사 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암 7: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미 3:7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이 '호제'(Chozeh)는 정신적(영적)인 것을 '인지하다'(perceive)라는 뜻의
동사 '하자'에서 파생된 말로, 역시 '보는 자'(beholder)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명칭은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신령한 환상'을 보는 측면에 강조점을 둔
시적(詩的) 명칭이다(R. Payne Smith, F.R. Fay).
한편 '선지자'(나비)라는 명칭은
'말하다' (speak), '선포하다'(declare)라는 뜻의 동사 '나바'에서 파생된 말로,
이 명칭은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측면을 강조한 율법적 명칭이다.
그러므로 선견자('로에' 또는 '호제')와 선지자('나비')는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으로서,
(삼하 24: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사 30:9-10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10)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공히 '영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가리키며,
따라서 선견자와 선지자는 일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실을
꿈, 환상, 계시 등을 통해 '보고'(seeing), '파악하며'(perceiving),
나아가 그 보여 진 것이나 파악된 것을 일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speaking forth) 자들을 일컫는 명칭들이다.
[삼상 9:10]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 네 말이 옳다 - 초기의 사울은 사환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만큼 진지하고 겸손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의 자세는 왕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9: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10:22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그러나 이러한 초기 사울의 겸손의 모습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주관적으로 행동한 망령된 제사 사건 이후,
(13:8-14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점차 퇴색되고, 오히려 교만한 자로 바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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