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거듭난 삶 2022. 1. 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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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 통치에 관한 예언

 

성 경: [2:1-4]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

 

문자적으로는

'이사야가 본(하자) 말씀(하다바르)이라'이다. 이런 표현은 매우 드물다.

보다 더 일반적인 표현은

 

'주의 말씀이 에게'이다.

 

(14: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13:1 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1: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1:1 이제 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주의 말씀 곧 그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말씀이라;

 

1: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구시의 아들이요, 그달리야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히스기야의 사대 손이더라).

 

아모스만이 이와 비슷한 표현법을 쓰고 있다.

 

(1:1 유다 왕 웃시야 시대,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시대 곧 지진이 있기 이 년 전에 드고아의 가축치는 자들 가운데 거하던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본 말씀들이라).

 

'다바르''말씀'이란 뜻 이외에도 '사건', '사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으로 파악하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의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사건이며,

사건은 곧 그의 말씀인 것이다.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말일에 - 문자적으로는 '날들의 끝에'(베아하리트 하야밈)이다.

이 말은 본서에서 단 한번 나온다.

그것은 창 49:1;24:14;4:30;31:29 등에서 종말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49:1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함께 모이라. 마지막 날들에 너희에게 임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4:14 보소서,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나이다. 그러므로 오소서. 이 백성이 마지막 날들에 왕의 백성에게 어떻게 행할지 내가 알려 드리리이다, 하더라;

 

4: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네가 환난 중에 있을 때에 곧 마지막 날들에 네가 주 네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면;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뒤에 너희가 철저히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고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너희 손의 일로 그분의 분노를 일으킴으로 마지막 날들에 재앙이 너희에게 닥치리라, 하니라)

 

70인역(LXX)은 이 말을

'이 모든 날 마지막에'(에프 에스카톤 톤 헤메론, 1:2)로 번역하였다.

 

율법 학자들은 그날을 메시야의 날로,

라이트푸트(Lightfoot)는 옛 세대의 끝으로 보았으며,

 

오늘날 많은 주경 학자들은 이를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에 이르는 신약 시대로 이해한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

 

'여호와의 전의 산''시온'을 가리킨다.

 

(2:6 그럼에도 내가 이미 내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노라, 하시리로다;

 

3:4 내가 내 목소리로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내 말을 들으셨도다. 셀라;

 

24:3 누가 주의 산에 오르리요?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서리요?;

 

31:23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들의 포로 된 자들을 다시 데려올 때에 그들이 유다의 땅과 그것의 도시들에서 이 말을 여전히 사용하리니 곧, 오 공의의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주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로다;

 

2:1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내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그 땅의 모든 거주민들이 떨게 하라. 주의 날이 이르느니라. 그 날이 매우 가까우니;

 

3:17 그러므로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거하는 주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때에는 예루살렘이 거룩할 것이요, 다시는 타국인이 그리로 지나다니지 못하리로다).

 

고래(古來)로 산들은 그 높이와 위엄에서

사람들의 찬탄을 받아왔으며 신들이 거주하는

거룩한 공간으로 숭배되어 왔다(예컨대, 희랍의 올림푸스 산 등).

 

그러나 실제로 시온은 전혀 높지 않은 자그마한 언덕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바산의 산들이 이 낮고 하찮은 하나님의 산을

내려다 본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68:16 높은 산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날뛰느냐? 이곳은 하나님께서 거하고자 하시는 산이니 참으로 주께서 그 안에 영원히 거하시리로다).

 

그러나 종말에는 모든 것이 극적으로 변화된다.

그날에 시온은 가장 높아질 것이요, 그 영광 앞에서

다른 모든 산들은 평지나 다름 없어질 것이다.

 

(14:10 그 온 땅은 변하여 게바에서부터 예루살렘 남쪽 림몬에 이르기까지 평야같이 되리라. 또 그것이 들리고 그것의 본 처소에 사람이 거주하리니 곧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째 문이 있는 곳과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즙 틀이 있는 곳까지라).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 '모여든다'(나하루)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흐른다'(stream)는 뜻이다.

그 옛날 범죄의 절정을 상징하였던 바벨탑에서 각처로 분산되었던 인류는

 

(11: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그들이 동쪽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땅에 있는 평야를 만나 거기 거하니라.

3) 그들이 서로 이르되, ,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4) 또 이르되, ,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라.

5) 주께서 사람들의 자녀들이 세우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시니라.

6)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백성이 하나요, 또 그들이 다 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을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이 상상하여 하고자 하는 어떤 일도 막지 못하리라.

7)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이처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 세우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더라)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다시 시온 산으로 물밀듯이 몰려들 것이다.

 

인류의 범죄와 구원의 역사는

'바벨탑에서 시온 산으로'(from the Babel to the Zion)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시온 산이 '하나님이 세운 구원의 높이'를 상징한다면,

바벨탑은 '인간이 세운 죄악의 높이'를 상징한다.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

백성들이 그처럼 시온에 오고자 한 것은

거기에만 율법, 즉 여호와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율법은 '참된 종교'(Alexander) 혹은

'시내 산의 토라와 대조적인 의미에서 시온의 토라라 할 수 있는

복음'(Delitzsch)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문의 강조점은 '시온에서부터'에 놓는다.

이는 구원의 길이 시온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4: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 앞에서 율법의 수여자

혹은 인생의 행할 길을 가르쳐 주시는 참된 교사로 그려졌던 여호와가

본문에서는 민족들 간의 분쟁을 조정하며 판단하시는

재판관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판결과 중재가 가능한 것은

열방들이 율법의 말씀으로써 삶의 지침을 삼고

그 뜻에 기꺼이 복종하려 하기 때문이다.

 

'판단하다'(솨파트)

'다스리다', '왕노릇하다'(Calvin)'징벌하다'(Cocceius)는 뜻보다는

'중재하다'(Alexander)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때 전쟁도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그날에 사람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파괴적인 목적을 위해 제작하였던 칼과 창을

생산적인 농기구로 바꾸게 될 것이다.

 

(9:10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끊고 예루살렘에서 말을 끊으며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교도들에게 화평을 말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그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보습들'(이팀)은 당을 갈아서 흙덩이를 일으키는 도구이며,

'낫들'(마즈메로트)은 쓸데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전지용(剪枝用) 가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