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거듭난 삶 2022. 9. 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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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역한 유다

 

성 경: [3:1-10]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2) 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3)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의 애호자시오니

5) 노를 한 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하지 않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배역한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7)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9)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1] 세상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우선 본장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앞에서 2장의 배경을 살펴보았던 바,

그것은 주로 요시야의 개혁이 무르익어 갈 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됨과 동시에 크게 증폭된 회개 운동이

선지자의 예리한 통찰력에는 너무나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비친 듯하다.

 

즉 유다는 개혁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호와로부터 등을 돌렸던 것이며,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예레미야는

이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재혼한 경우

첫 남편과 다시 결합하지 못한다는 율법의 금지 조항을

내세워 유다의 잘못을 징책하고 있는 것이다.

 

(24:1-4 남자가 아내를 취하여 그녀와 결혼한 뒤에 그녀에게 부정함이 있음을 발견하였으므로 그녀가 그의 눈에 은총을 얻지 못하거든 그는 이혼 증서를 써서 그녀의 손에 주고 그녀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2) 그 여자는 그의 집을 떠나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느니라.

3) 그런데 나중의 남편도 그녀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녀의 손에 주고 그녀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혹은 그녀를 아내로 취한 나중의 남편이 죽었으면

4) 그 여자가 몸을 더럽힌 이후에 그녀를 내보낸 먼저 남편이 그녀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그 일은 주 앞에 가증한 것이니라. 너는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할지니라)

 

 

다시 받겠느냐 - 70인역은 이 부분을

'그 여자가 그에게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라고 번역하고 있는 반면

맛소라 사본에는 '그가 그녀에게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신24:4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前夫)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란 내용에 비추어

맛소라 사본의 기록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3:2] 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

 

유다 민족의 배도에 대해서는 높은 산 어디에서나 그 증거를 목도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처럼 산 위로 올라간 것은

신들과 더 가까이 접촉할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우상 숭배의 부도덕한 의식에 빠져드는 모습을

사막의 아랍인 대상을 이 숲 속에 숨어 약탈하려는 행동으로 비유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보다 직접적으로는

음행할 기회를 기다리고 앉아 있는 창녀의 모습과 닮은 것이었다.

 

(38:14 그녀가 자기의 과부의 옷을 벗고 베일로 몸을 가린 채 몸을 감싸고 딤낫으로 가는 길 곁의 트인 곳에 앉았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하였음을 그녀가 보았는데도 그가 그녀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7:12-15 지금 밖에 나와 있는 자며 지금 거리에서 모든 모퉁이에서 숨어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3) 이에 그 여자가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며 뻔뻔스런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14) 내게 화평 헌물들이 있으며 이 날 내가 내 서원을 갚았노라.

15) 그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부지런히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노라).

 

예레미야는 이같은 더러운 범죄 행위를 가리켜 땅을 오염시켰다고 지적한다.

(thompson, Clar-ke, Codvia).

 

 

 

[3:3]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

 

뻔뻔스러운 얼굴을 한 창녀의 전형적인 모습과

그 행위에 대한 처벌로서 가뭄이 든 것을 말하고 있다.

 

단 비는 10.11월에 내리는 이른 비를 말하는 것으로서

토지 경작의 준비에 필요하였으며

늦은 비는 3,4월에 내리는 비였다.

 

그 이후 여름 기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여기서 저자는 그의 사역 초기에 있었던

팔레스틴 지역의 가뭄을 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3: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의 애호자시오니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의 애호자시오니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하나님을 무시하다가 가뭄이 닥쳐오자

비로소 옛날의 행복했던 시절에 사용했던 다정한 말로 여호와께 호소한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애호자'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의 원어 '알루프'는 흔히 '친구'라고 번역되며

때로는 '길들여진 짐승', '황소', '남편', '가장'등의 다양한 의미로도 쓰였다.

 

아마 예레미야는 대단한 주의를 기울여 이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말속에는 여호와의 자비를 악용한 이스라엘이

마치 응석과 고집만 늘어난 아이처럼

제멋대로 가증스러운 길로 나아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Thompson).

 

 

 

[3:5-6] 노를 한 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하지 않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배역한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노를 한 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이스라엘의

얄팍한 신앙의 일면이 엿보인다.

즉 그들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호소와 항의만 하면 자기들의 무수한 악행을

눈감아 주시고 재빨리 구원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번지르르하게 말만 할 뿐 악행을 그치지 않고 있다.

 

 

 

[3:7]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 이 구절에는 이스라엘이

이방 제사 의식에 깊이 중독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인해 몇가지 시련을 당하고 난 후,

여호와께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한편 남유다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멸망에 넋을 잃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다의 반응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그를 내어 쫓고 - 여기에는 B.C.722년에 사마리아 성이

앗수르 군대에 의해 함락되는 역사적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왕하17:1-6 유다 왕 아하스의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하여 구 년 동안 통치하며

2)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였으나 그 이전에 있던 이스라엘 왕들과 같지는 아니하였더라.

3)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 호세아를 쳤으므로 호세아가 그의 종이 되어 예물을 바치니라.

4) 호세아가 이집트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아시리아 왕에게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아시리아 왕이 호세아에게서 음모를 보고 그를 감옥에 넣어 묶어 두니라.

5) 그 뒤에 아시리아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삼 년 동안 그곳을 에워쌌더라.

6) 호세아의 제구년에 아시리아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강가의 하볼과 메대 사람들의 도시들에 두었더라).

 

그러나 사마리아 멸망 전에도 이미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의 침공에 시달렸다.

 

(왕하 15:19 아시리아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었으니 이것은 그의 손이 자기와 함께하게 하여 왕국을 자기 손에서 굳게 세우려 함이었더라).

 

디글랏 빌레셀 3(B.C.745-727) 당시의 앗수르군은

이스라엘 대부분의 도시들을 정복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왕하15:29 이스라엘 왕 베가의 시대에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데리고 가니라).

 

이는 북이스라엘의 배도에 대한 값비싼 대가였다.

그러나 유다는 언약을 어진 이스라엘의 심판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에 빠져든 것이다.

 

 

 

[3:9]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 본절의 주체는

8절과의 연관 속에서 보면 유다인 것 같고,

10절과 관련지어 보면 이스라엘인 듯하다.

문맥상 전자로 보는것이 더 자연스럽겠다.

 

유다의 배도는 아주 심각한 것이어서

여호와의 언약 조항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편 가나안 종교에 있어 주요 관심사는 풍요와 성()에 있었는데,

따라서 그 제사 의식도

주로 땅, 짐승, 여인의 다산(多産)을 빌기 위한 목적에서 수행되었다(Feinberg).

본절에 언급된 돌과 나무 역시 그들의 주요 숭배 대상이었다.

 

 

 

[3: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이스라엘이

언약 파기로 인해 심판을 초래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다는 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이키지않고 그 흉내만 내었다.

 

아마 예레미야는 여기서 요시야의 개혁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B.C. 622년 이후와 관계된다.

 

유다는 므낫세 통치 이전 즉 사마리아 멸망 때까지는

이스라엘보다는 우상 숭배에 덜 물들어 있었다.

그 이후 유다의 종교적 타락은 급속도로 심각해졌다.

 

그러나 요시야의 개혁과 더불어 유다는 다소 바른길로 들어서는 듯하였으나

예레미야에게는 이것이 피상적인 것으로 보여졌다.

 

종교 개혁으로 말미암아 종교적 행사는 활발했을지 모르나

참된 회개는 부족했던 것이며 예레미야는 이에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

 

(5:20-31 야곱의 집에서 이것을 밝히 알리고 유다에서 그것을 널리 알려 이르기를,

21) 오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제 이 말을 들을지어다.

22)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영원한 법령으로 모래를 배치하여 바다의 경계로 삼아 바다가 그것을 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바다의 물결이 일어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러도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이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제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주 우리 하나님을 이제 우리가 두려워하자. 그분께서 정해진 수확 주간을 우리를 위하여 남기시는도다, 하지도 아니하느니라.

25) 너희 불법들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들이 좋은 것들을 막아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26) 내 백성 가운데 사악한 자들이 있나니 그들은 올무를 놓는 자같이 숨어 기다리며 덫을 놓아 사람들을 잡는도다.

27)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그들의 집에는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그들이 크게 되고 부유하게 되며

28) 기름지고 빛이 나는도다. 참으로 그들의 행위는 사악한 자들의 행위를 능가하나니 그들은 사정 곧 아버지 없는 자들의 사정을 공정하게 재판하지 아니할지라도 형통하며 궁핍한 자들의 권리를 공정하게 재판하지 아니하는도다.

29)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런 일들로 인하여 징벌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혼이 이 같은 민족에게 원수를 갚지 아니하겠느냐?

30) 그 땅에서 놀랍고도 무서운 일이 이루어졌도다.

31) 대언자들은 거짓으로 대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방법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것의 마지막에는 너희가 무엇을 하려느냐?;

 

6:16-2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 길로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며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들을 세우고 말하기를,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하였으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8) 그러므로 민족들아, 너희는 들으라. 오 회중들아, 그들 가운데 무슨 일이 있는지 알라.

19) 오 땅아, 들으라. 보라, 이 백성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것을 거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위에 재앙 곧 그들의 생각의 열매를 가져오리라.

20) 무슨 목적으로 세바에서 내게로 향을 가져오며 먼 나라에서 향품을 가져오느냐? 너희의 번제 헌물들은 내가 받을 수 없으며 너희의 희생물들은 내게 향기롭지 아니하니라.

21) 그러므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을 두리니 아버지들과 아들들이 함께 그것들에 걸려 넘어지며 이웃과 그의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7:1-15 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이르시되,

2) 주의 집 문에 서서 거기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주께 경배하려고 이 문들로 들어가는 너희 모든 유다 사람들아, 주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길과 너희 행위를 고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하여금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들이 주의 성전이라. 주의 성전이라. 주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만일 너희가 너희 길과 너희 행위를 철저히 고치고 사람과 그의 이웃 사이에서 철저히 심판을 집행하며

6)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를 학대하지 아니하고 무죄한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너희에게 해로운 다른 신들을 따라 걷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 곧 이곳에서 너희로 하여금 영원무궁토록 거하게 하리라.

8) 보라, 너희가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거짓말을 신뢰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 걸으면서

10)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이 모든 가증한 것을 행하려고 우리가 구출 받았나이다, 하려느냐?

11)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너희 눈에 강도의 소굴이 되었느냐? 보라, 심지어 내가 그것을 보았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12) 오직 너희는 실로에 있던 내 처소 곧 내가 처음에 내 이름을 둔 곳으로 이제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내가 그곳에 어떻게 행하였는지 보라.

13)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일찍 일어나 말하고 말하였어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불렀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한 것 같이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곧 너희가 신뢰하는 이 집과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의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의 온 씨를 쫓아낸 것 같이 너희를 내 눈앞에서 쫓아내리라).

 

이 구절의 연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율법책이 발견되기 전,

즉 요시야가 그의 개혁운동을 강화하기 이전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보다는 종교 개혁 조치의 초기 실패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고

이 구절을 B.C.622년 이후의 내용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