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거듭난 삶 2022. 9. 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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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할 때 받을 축복

 

성 경: [3:11-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3: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

 

여기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비교 논쟁이 언급된다.

즉 배역한 이스라엘이 패역한 유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범죄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당한 사건으로 경고를 받았음에도

자기 길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 히브리어 원문상으로 언어 유희가 쓰였다.

그래서 이를 살려서 번역하면

 

'돌아선 이스라엘아 돌아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자기 백성이 뉘우치고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하나님의 부성애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내용이다.

 

여호와는 자비하시고 그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신다.

 

한편, 여기에는 사마리아에 임한 심판이

너무 심했다거나 또는 적절치 않았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따라서 유다가 더 악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용서받는다는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지적되고 있는 핵심은

유다의 오랜 죄악에도 하나님이 참고 기다렸다면,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만 하면

어떻게 용서함을 받지 못하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Thompson, Harrison, Nicholson).

 

 

 

[3: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으로서

세 가지 회개 사항이 지적되고 있다.

 

'듣지'에 해당하는 '솨마'

그냥 말씀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지적의 배경에는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라는 신명기적 언약관이 자리잡고 있다.

 

(28:1-2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을 지키고 행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들 위로 너를 높이 세우시리라.

2)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너를 따라잡으리니,

 

15 그러나 만일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여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과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라잡으리니).

 

여호와의 언약 백성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사항은

그 언약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외 다른 방식에 의해서는 언약 백성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Thompson, Harrison, Nicholson).

 

 

 

[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 '남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알'

'주인(남편, )이 되다'라는 뜻으로

가나안 신 바알과 음가가 같은 동사를 사용한 언어 유희인 바,

하나님만이 참된 보호자가 되실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나는'(아노키)이란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신부로 삼아주신 것이다.

 

(2: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치며 말할지니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를 기억하며 네 젊은 시절의 친절과 네 정혼한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그때에는 네가 씨 뿌리지 않은 땅 곧 광야에서 나를 따랐느니라;

 

2:2 너희 어머니와 변론하고 변론하라.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니라. 그런즉 그녀가 자기 눈앞에서 행음을 버리게 하고 자기 젖가슴 사이에서 간음을 버리게 할지니라).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 이 말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지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체적인 귀환을 가리키지 않고

각 성읍에서 하나와 각 족속 중에서 둘을 데려오는 정도의 극히 부분적 귀환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가장 자비로운 부르심에 응답하여

회개하는 자들이 소수에 불과할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여기서 북이스라엘 사림들의 귀환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시온'

통일 왕국 시대에 정치, 종교의 중심지였다.

 

북쪽 포로들이 시온으로 돌아오면 이스라엘 전체가 다시 통합될 것이며

성소 역시 하나가 되어 정치적, 민족적 분단이 제거됨과 동시에

하나의 백성, 한 분 하나님만이 있게 되는 것이다.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 회복 시대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가 언급되고 있다.

 

즉 다윗처럼,

 

(삼상 13:14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하리이다.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주께서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이 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의 마음에 합하는 통치자가 여호와의 뜻에 따라 백성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23:1-6 주가 말하노라. 내 초장의 양들을 멸하고 흩어지게 하는 목양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2) 그러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 백성을 먹이는 목양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들을 쫓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으니, 보라, 내가 너희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너희를 징벌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3) 내가 내 양 떼를 쫓아내어 머물게 한 모든 나라에서 그들의 남은 자를 모아 그들의 양 우리로 다시 데려오리니 그들이 다산하고 번창하리라.

4) 또 내가 그들을 먹일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부족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5)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요, 한 왕이 통치하고 형통하여 땅에서 공의와 정의를 집행하리라.

6) 그의 날들에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안전히 거하리라. 그의 이름 곧 그를 일컬을 이름은 이것이니 곧 주 우리의 의라;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을 먹이게 하리니 그는 곧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되리라;

 

37:24 내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이 또한 내 법도 안에서 걸으며 내 법규를 지켜 행하리라).

 

한편 예레미야는 여태까지 심판을 선포하다가

여기서는 은혜 장면으로 넘어간다.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을 엄숙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이러한 은혜로운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인기를 누리던 낙관적 선지자들은 심판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랬기 때문에 심판 이후에 도래할 은혜 역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심판이란 없었고

오직 '값싼 은혜'만 있을 뿐이었다.

 

(27:16 네가 만드는 물품이 많으므로 시리아가 네 상인이 되었으며 그들이 에메랄드와 자주색 옷감과 수놓은 제품과 고운 아마포와 산호와 마노를 가져와 네 장터에서 거래하였도다;

 

28:2-4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통치자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네 마음이 높아졌으므로 네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이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들의 한가운데 앉아 있다, 하였도다. 네가 네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같이 정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니라.

3) 보라,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그들이 네게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일이 없나니

4) 네가 네 지혜와 네 명철로 너를 위해 재물을 얻었고 금과 은을 얻어 네 곳간에 넣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