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책망의 근거 2
성 경: [렘 2:29-3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35) 그러나 너는 말하시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 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렘 2: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가 다 내게 범과하였느니라
▶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 여기에는 다시 법정에서 사용되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상대로 소송을 재개하려고 하나
여호와는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죄를 다시 공격하신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자신의 범과를 반성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본문의 이스라엘의 불평과 똑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렘 2:30] 내가 너희 자녀를 때림도 무익함은 그들도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 징책을 받지 아니함이라 - 대군주가 봉신(封臣)의 잘못을 책망하기 위해 오게 되면
봉신은 몸가짐을 가다듬고 조심하기 마련인데,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방문조차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교정(矯正)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들인 선지자들을 내쫓고 죽이려고 하였다.
▶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 이 구절은 비유 이상의
어떤 역사적 사건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므낫세 치하에서 선지자들을 포함한 많은 무죄한 자들이 살해당한 사건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 생전에도 여호야김은 우리야라는 선지자를 살해한 바 있다.
(26:20-23 또 주의 이름으로 대언한 사람이 있었으니 곧 기럇여아림의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도시와 이 땅을 대적하여 대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들과 모든 통치자들이 그의 말들을 들을 때에 왕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우리야가 그것을 듣고 두려워서 도망하여 이집트로 들어갔으므로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들을 이집트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나단과 그와 함께한 몇 사람을 이집트로 보내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호야김 왕에게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무덤에 던졌느니라, 하니라).
[렘 2: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연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하느냐
▶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 - 본 구절은
'이 시대의 너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70인역(LXX)은 이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 이스라엘의 반역적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여호와께서 당신이 이스라엘을 냉대한 일이 있는지 반문하신다.
여기서 사용되는 비유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상황을 말하고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위험하고 메마른 광야를 지나 여행하는 중에
여호와의 인도하심 덕분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 8:15 너를 인도하사 그 크고 무서운 광야 곧 불 뱀과 전갈과 가뭄이 있고 물이 없는 땅을 지나게 하시고 또 너를 위하여 부싯돌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않겠다 – 여호와께서
승리의 원천이며 희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자기의 행위를 자기가 결정하는
자유를 갈망하여 여호와에게서 돌아섰다.
'주께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거만한 말은
그 당시 언약 백성의 전체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그런 무지하고도 완고한 태도는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여호와의 의도를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었다.
[렘 2:32]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 유다의 배은 망덕을 책망하는 내용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베푸셨던 모든 은혜와 이적들을 잊는다는 것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것으로서 이스라엘 선지자들과 구약의 기자들이
거듭 지적하는 주제였다.
(신 8:11 너는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명령과 법도와 법규를 지키지 아니함으로 주 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조심할지어다;
시 78:11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들에게 보이신 이적들을 잊었도다;
사 17:10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네 능력의 반석에게 마음을 두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초목들을 심고 낯선 가지들과 함께 그것을 세우며).
한편 여호와께서 과거에 큰 은혜를 베푸사 그들을 불렀던 것은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가 누구이며 또 그들이 누구인가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에서도 이를 중요한 목적으로 두었으며,
그들의 과거사에서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들을 구해주시는가 하는 점을
그들은 언제나 새롭게 기억해야 했던 것이다.
▶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 여호와의 언약을 잊고
육신의 정욕대로 자행자지(自行自止)했던 기간이 오래 되었음을 말한다.
므낫세는 5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다를 통치했는데
그 기간 동안 유다는 우상 숭배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고
그의 손자인 요시야 왕의 개혁으로도 완전히 정화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렘 2: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 여기서는 인칭의 수가
복수에서 2인칭 여성 단수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33-37절의 내용은 예레미야의 다른 독립된 설교인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2인칭 단수가 때로는 보다 보편적인 대중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런 식의 이해가 가능하다.
▶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 이스라엘의 바른 행위는
그녀의 참된 남편인 여호와를 위해 정조를 지키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다른 정부(情夫) 곧 이방의 허탄한 우상을 찾아 헤맸다.
▶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 이스라엘이 악한 짓을 하는 데 아주 능숙해 있어서
도리어 악한 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는 뜻이다.
[렘 2:34] 또 네 옷단에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로 너를 책망함을 인함이니라
▶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 -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의 행위와
(왕상 21:16 나봇이 죽었다는 것을 아합이 듣고 일어나 예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소유로 취하려고 거기로 내려갔더라)
예루살렘 거리를 무죄한 자의 피로 범람케한 므낫세의 행위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왕하 21:16 므낫세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여 유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할 때 이용한 자기의 죄 외에도 또 무죄한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피로 가득하게 하였더라)
▶ 담 구멍을 뚫음을 인함이 아니라 - 율법에는 도적이 집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현장에서 쳐죽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 22:2-3 도둑이 든 것을 보고 그를 쳐서 죽게 하면 그를 위해 피를 흘릴 필요가 없으나
3) 그 도둑 위에 해가 돋았으면 그를 위해 피를 흘려야 하리라. 도둑이 반드시 전액 배상하되 배상할 것이 없으면 자기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들의 범죄는 현장범에 대한 살인이 아니라
직언과 선의의 책망에 대한 보복살인이었다.
[렘 2:35] 그러나 너는 말하시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 함을 인하여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 나는 무죄하니 그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 유다 백성의 죄질의 심각성은
그들의 영적 무감각과 그로 인한 뻔뻔스러움으로 인해 한층 더해졌다.
그들은 34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끔찍스러운 죄를 범하고서도
(영역 성경 NIV와 RSV는 34절과 본절의 연결을 강조하기 위해
Yet in spite of all this,
곧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도리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공의의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자들이었다.
(요일 1:8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며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렘 2: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 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 네 길을 바꾸어 - 이스라엘은 변덕스럽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손을 내밀고 추파를 던졌으나
정작 신뢰할 만하고 또 진실된 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선지자는 지적하고 있다.
▶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 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앗수르나 애굽에 의지하려고 하나,
그들은 변덕스럽고 의지할 만한 자들이 못되며,
오히려 유다에 수치와 굴욕 그리고 절망만 안겨다 줄 것이다.
앗수르는 이미 북왕국에 수치를 안겨다 준 바있으며,
당시에는 유다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한편 본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의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1) 앗수르는 더 이상 유다를 후원해줄 처지에 있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서 여호야김 통치 기간 중에
애굽으로부터 당하는 고난을 지적한 것이며,
(왕하 24:4 또한 그것은 그가 흘린 무죄한 피로 인함이었으니 그가 무죄한 피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일을 용서하려 하지 아니하셨더라)
본절의 기록 연대가 요시야 시대의 것이긴 해도
훗날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가 직접 이 부분을
부가적으로 편집해 놓었을 것이라는 견해.
(2)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 상태를 견지했던 요시야시대 초기로 보는 견해.
이중 후자가 더 타당할 듯하나, 어떠한 견해를 취하든 간에
이 구절이 말하는 내용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치 않을 때는
침울한 재앙과 저주가 임한다는 것이다.
[렘 2: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라 – 여호와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지배하시는 이상,
유다가 어떤 나라를 신뢰하든 간에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시면
그들 나라들은 유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 나라들은 반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뿐이다.
반면에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선택하여 자기 백성을 돕기로 결정하면
이스라엘은 복을 받을 수 있다.
(사 44:28-45:7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내 목자라. 그가 나의 기뻐하는 것을 다 행하리라, 하고 예루살렘에게는 이르기를, 너는 세워지리라, 하며 성전에게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놓이리라, 하는 자니라.
45:1) 주가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민족들을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또 왕들의 허리를 풀어 문짝이 두 개인 성문들을 그 앞에 열게 하고 그 성문들을 닫지 못하게 하리라.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구부러진 곳들을 곧게 하고 놋 문들을 쳐서 산산조각 내며 쇠 빗장을 꺾고
3) 네게 어둠의 보화와 은밀한 곳의 감추어진 재물을 주어 네 이름으로 너를 부르는 나 곧 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 내가 나의 종 야곱 곧 나의 선택한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 이름으로 너를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이름을 주었노라.
5) 나는 주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으며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내가 네게 띠를 띠어 주었으니
6) 이것은 해 뜨는 곳에서와 서쪽에서 온 자들이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라. 나는 주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그리고 본장을 마무리 지으면서 전체적으로 이를 정리하자면,
본장의 내용이 기본적으로 예레미야 사역 초기의 설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볼 때
본자의 메시지가 전파된 때는
대체적으로 요시야의 개혁이 점차 무르익어 갈 때이다.
요시야의 개혁 운동은 B.C.622년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기 전에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개혁은 예레미야의 사역 전인 B.C.629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하 34:3-7 그가 아직 어릴 때에 곧 자기의 통치 제팔년에 자기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하고 또 제십이년에 산당들과 작은 숲들과 조각한 형상들과 부어 만든 형상들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기 시작하였더라.
4) 그들이 그의 앞에서 바알들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또 그가 그 제단들 위에 높이 달린 형상들을 찍어서 떨어뜨리고 또 작은 숲들과 조각한 형상들과 부어 만든 형상들을 산산조각 내며 그것들을 가루로 만들어 그것들에게 희생물을 드리던 자들의 무덤에 그것을 뿌리고
5) 또 그 제사장들의 뼈를 그들의 제단들 위에서 태워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심지어 납달리의 도시들에서도 곡괭이로 사방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7) 제단들과 작은 숲들을 허물며 새긴 형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 온 이스라엘 땅에 두루 있던 모든 우상을 찍어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따라서 예레미야는,
그 전통이 모세 시대로 소급되는 언약 사상으로부터 강한 동기를 부여받았다.
이 언약 사상은 예레미야 사역의 핵심 주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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