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당위성
성 경: [렘 5:1-9]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2)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7)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8)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 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9)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
여기서부터 9절까지는
다시 예루살렘의 죄악상과 도저히 용서받을수 없는
도덕적 타락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되돌아간다.
아마 예루살렘에 임할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함인 것 같다.
이런 내용은 2장에서도 이미 다루었던 것으로서 그 전체적 주제는
여호와의 주권과 그의 언약을 거부한 결과 그들이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 '공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쉬파트'이며
'진리'는 '에무나'인데,
이 두 용어는 구약의 주요 사상인
'의'(체다카)와 '사랑'(헤세드)과 함께 연결되어
여호와의 언약 사상을 구성하는 주요한 용어들이다.
즉, 선지자는 이를 통해서 여호와와의 언약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만악(萬惡)의 뿌리가 바로 이 언약을
배반한데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을
한 사람이라도 찾게 되면,
심판을 면케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 조건이었던
의인 열 사람보다 훨씬 더 쉬운 것이었다.
(창 18:22-32 그 남자들은 거기서 얼굴을 돌려 소돔을 향해 갔으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주 앞에 서 있더라.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아뢰되, 주께서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도시 안에 쉰 명의 의로운 자들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안에 있는 쉰 명의 의로운 자들로 인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려나이까?
25)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여야 하지 아니하리이까? 하매
26)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에서 즉 그 도시 안에서 쉰 명의 의로운 자들을 찾으면 그들로 인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27) 아브라함이 응답하여 이르되, 이제 보소서, 티끌과 재 같은 내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쉰 명의 의로운 자들 중에 다섯 명이 부족하면 다섯 명이 부족하므로 주께서 그 온 도시를 멸하려 하시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마흔다섯 명을 찾으면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9) 아브라함이 또 그분께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마흔 명을 찾으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마흔 명으로 인하여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아브라함이 그분께 이르되, 오 주께서는 노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아뢰오리이다. 거기서 서른 명을 찾으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서른 명을 찾으면 그 일을 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이제 보소서, 내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스무 명을 찾으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스무 명으로 인하여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오 주께서는 노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오리이다. 거기서 열 명을 찾으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열 명으로 인하여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렘 5:2]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는 것은
어떤 약속이나 의무에 대해 여호와를 그러한 약증의 증인,
또는 보증인으로 불러낸다는 뜻을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은 약속이나 의무를 파기할 경우는
여호와의 심판을 자청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맹세가 남용되었으며,
또한 거짓 맹세의 표상이 되고 말았다.
[렘 5: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 어떤 관점에서 보면,
본절이 2절 앞에 위치하는 것이 더 논리적인 것 같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바꾸지 않아도
본문은 전후 문맥상 자연스러운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본다.
즉 1,2절과 관련하여 본문은
유다 백성의 타락상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실을 구하시나
그들 중에는 한 사람도 성실히 행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본절 하반절과 관련하여 본문은,
하나님이 이 백성을 성실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징계라는 방편을 사용하셨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C.W.E. Naegelsbach).
[렘 5: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 비천하고 우준한 것 뿐이라 - '비천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달림'인데,
원문에는 명사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다음 어구인 '우준한 것'과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다음절의 '귀인들'(하그돌림)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맥을 통해서 볼 때
이 말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결여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옳겠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응징에 대한 시대적 감각이 없었으며,
그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렘 5:5]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 정치적, 종교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온갖 속박을 벗어던지고 모든 도덕법들도 짓밟아 버린 사실이,
황소가 멍에를 꺾고 주인에게 반발하는 예화로 소개되고 있다.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선포하던 시기는
요시야의 개혁이 있은 지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 때가 아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지적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은 분명히 요시야 통치 시절에는
왕의 명을 받아 개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그의 명을 시행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렘 5: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 사자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 -
본절에서는 유다 백성이 언약을 파기하고
마치 황소가 주인의 멍에를 부순 것과 같이 달아난 행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황소가 자기 주인의 멍에를 꺾고 달아났지만,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수풀에서 나온 사자나 또는 사막의 이리,
또는 그 주위를 배회하는 표범의 공격을 당하고 만다.
하나님을 버린 유다 백성의 운명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들 야생 동물은 4,6장에서 지적되고 있는 침략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용맹성과 난폭함에 있어서는
영락없이 사자와 같았으며,
탐욕과 욕심에 있어서는 이리와 같았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재빠른 활약상에 있어서는 표범과 같았다(Thompson, Clarke).
▶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 이는 유다가 짐승의 공격을
받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솨'는 반역된 행위들을 가리키며,
'패역'에 해당하는 '메슈바'는 베도를 가리키고 있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을 파기하고
언약에 명시된 의무 조항들을 거부하였으면서도 회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렘 5:7]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 여호와를 거역하고 신이 아닌 것들,
곧 허탄한 우상을 의뢰하고 경배하였던 사실에 대한 지적이다.
아마 므낫세 당시의 극단으로 치닫던 배도(背道) 행각이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고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 이방 종교의 신전 매음 행위가
요시야의 개혁으로 일망 타진된 이후,
그것에 참여했던 창녀들과 포주들은 은밀한 곳으로 숨어
그들의 사업을 계속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창기의 집'이 우상을 숭배하는 곳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선지자들은 우상 숭배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행음이란 말을 종종 사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상 숭배와 함께 의식 순서 중의 일부로서
육체적 행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도 무난할 것이다.
[렘 5:8]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 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 같은 죄악이긴 하나
율법 정신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범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아내된 여자를 범하는 것이 훨씬 더 중한 죄로 여겨졌던 것 같다.
이것은 간음과 함께 타인의 것을 탐하는 죄가 추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아내를 탐하는 것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고
또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근거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렘 5:9]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
하나님의 심판은 여호와를 무시하고
또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반기를 들고 나오는
이런 행위들에 대해서 반드시 임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새 언약하에서도
하나님의 도덕적 질서를 범하는 이런 자들에게는
반드시 같은 처벌을 내리고 말 것이다.
(엡 5:5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 유업도 받지 못하느니라;
히 13:4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한편 ‘벌하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는
'방문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님의 방문은 여기서처럼 징계를 위함일 수도 있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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