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시온을 향하여 군기를 세우라. 뒤로 물러나며 머물지 말라. 내가 북쪽에서 재앙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거듭난 삶 2022. 9. 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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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4장 해석

 

(예레미야서 45-31) 너희는 유다에서 밝히 알리며 예루살렘에서 널리 알려 이르기를, 너희는 그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고 또 소리 내어 외치며 함께 모여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방벽을 세운 도시들로 들어가자, 하고

6) 시온을 향하여 군기를 세우라. 뒤로 물러나며 머물지 말라. 내가 북쪽에서 재앙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7) 사자가 자기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이방인들을 파멸시키는 자가 자기 길로 오고 있도다. 그가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자기 거처를 떠났은즉 네 도시들이 황폐하게 되어 거주민이 없게 되리니

8) 너희는 이 일로 인하여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며 울부짖으라. 주의 맹렬한 분노가 우리에게서 돌아서지 아니하였느니라.

9)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왕의 마음과 통치자들의 마음이 소멸되고 제사장들은 놀라며 대언자들은 기이히 여기리라, 하라.

10) 이에 내가 이르되, , 주 하나님이여! 참으로 주께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셨는데 도리어 칼이 혼에게 이르나이다.

11)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향한 말이 있어 이르기를, 광야의 높은 곳들에서 건조한 바람이 나와 내 백성의 딸에게 다가온다, 하리니 이것은 키질을 하려 함도 아니요, 깨끗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12) 심지어 세찬 바람이 그곳들로부터 내게로 임하리니 이제 또한 내가 그들에게 판결을 내리리라.

13)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리니 그의 병거들은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가 노략을 당하였으니 우리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하리라.

14) 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을 씻어 사악함에서 떠나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으리라. 네 헛된 생각이 어느 때까지 네 속에 머물겠느냐?

15) 음성이 단에서부터 나와 밝히 알리며 고통이 에브라임 산에서부터 나와 널리 알리느니라.

16) 너희는 민족들에게 말할지니 곧, 보라, 예루살렘에 널리 알리기를, 순찰자들이 먼 나라에서 와서 유다의 도시들을 치려고 소리를 지른다, 하라.

17) 그녀가 나를 거역하였으므로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사방에서 그녀를 치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18) 네 길과 네 행위가 이 일들을 초래하여 네게 임하게 하였느니라. 이것이 네 사악함이니 그것은 쓰고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19) 애가 타고 애가 끓는도다! 내 마음이 심히 아프고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소리를 내는도다. 오 내 혼아, 네가 나팔 소리 곧 전쟁의 경보를 들었으므로 내가 잠잠할 수 없도다.

20) 그 온 땅이 노략을 당하였으므로 패망 위에 패망이 크게 소리를 지르는도다. 나의 장막들이 갑자기 노략을 당하고 나의 휘장들이 순식간에 노략을 당하였도다.

21) 내가 어느 때까지 저 군기를 보며 나팔 소리를 들을까?

22) 내 백성이 어리석어 나를 알지 못하였나니 그들은 미련한 자녀들이요, 지각이 없는 자들이로다. 그들이 악을 행하는 데는 지혜로우나 선을 행하는 데는 지식이 없도다.

23)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하늘들을 보니 거기에는 빛이 없었고

24)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25)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새들이 다 도망갔고

26)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27)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온 땅이 황폐할 터이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인하여 땅이 애곡하고 위에 있는 하늘들이 검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말하였고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도다.

29) 말 탄 자들과 활 쏘는 자들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온 도시가 도망하여 그들이 수풀로 들어가고 바위들 위로 기어오르며 모든 도시가 버림을 받아 아무도 그 안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30) 네가 노략을 당할 때에 어찌 하려느냐? 네가 진홍색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며 화장으로 네 얼굴을 꾸밀지라도 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꾼 것이 헛된 일이 되리라. 네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고 네 생명을 찾으리라.

31) 내가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산고를 겪는 여자의 소리 같고 첫아이를 낳는 여자의 고통 소리 곧 시온의 딸의 소리 같았도다. 그녀가 스스로 탄식하며 자기 손을 펼치고 이르기를, 이제 내게 화가 있도다! 살인자들로 인하여 내 혼이 지쳤도다, 하는도다.

 

 

이 장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예언은,

예언문학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인 동시에,

가장 현저하게 예레미야의 특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제 1장에 기록되어 있는 끊는 가마의 묵시는,

여기서 다시 그 의미가 명백해지고,

예감으로서 예레미야의 마음을 엄습한 북방의 재화는,

이제는 세계 역사의 대변동에 의해 사실로 되어 임하기에 이르렀다.

 

북방민족의 이동과 이에 따르는 전란의 참극의 소문이,

순식간에 젊은 예언자의 마음에,

임할 때 여호와의 진노를 직감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장을 통독하고서, 누구나가 꼭 느끼는 일은,

 

첫째로,

이것이 특히 청년의 말이라는 것,

더구나 가장 예민한 감정을 갖춘 청년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말이 열렬하고, 감정적이며, 만사를 극언하고,

단정을 겁내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다음으로,

그의 도의적 관념이 비상하게 예민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인들에게 느껴지지 않는 죄가 느껴졌고,

역사적 변동 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셋째로,

그가 가장 뛰어난 시적정상에 있어서 발달했던 사람이었음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최후로, 그는 실로 고귀하고, 열렬한 애국자였다는 것이다.

그 이상으로 깨끗하게 깊이, 그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을 달리 찾아볼 수는 없다.

 

19-20절 같은 것은,

그의 지순한 애국심이,

자국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보는 때,

아주 비장한 말로써 그의 창자에서 솟아나왔던 것이다.

 

아아, 내 창자여, 내 창자여, 아픔이 마음속에 미쳐, 내 가슴 고동치도다.

나는 잠잠 할 수 없도다. 내 영혼(심령), 너는 나팔 소리와 전쟁의 소란을 듣는도다.

패망에 패망의 소식 있도다.

이 땅은 모두 황폐해지고, 내 장막은 홀연 파괴되며,

내 휘장은 순식간에 파열 되었도다’(4:19-20 일역)라고(8:22; 9;1등 참조).

 

이러한 예언을 불러일으킨 직접의 원인,

외적 사정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이것을 아는 일은,

그의 말을 이해하는데 아주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에 있어서 확실하게 알기는 불가능한대도,

거의 다음과 같은 역사상의 사실로 분명하다.

 

, 당시 서방 아시아 일대에 걸쳐, 민족적 대 변동이 행해지고 있었다.

 

기원전 641년 앗시리아(앗수르)왕이, 이것을 평정한 이래,

얼마동안 계속된 정치조직은,

기원전 625년경,

메디아인이 앗시리아에 대하여 반기를 들기에 이르러 일대 혼란해졌다.

 

이 배반은 직접성공하지 못했으나

그 해에 앗시리아 왕 앗슈르바니팔(앗슈르. . 아플리)의 죽음과 함께

정권은 차츰 바벨론 장군 나보폴라시르에게로 옮겨지고,

이어서 메대는 이와 동맹하여,

재삼 앗시리아를 공략,

마침내 이를 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 또 북방에서 가공할 한 민족이 나타나,

남하하여 메대 기타의 서방의 제국을 습격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동요 중에, 이 북방민족의 출현은,

대공포 꺼리로 되었다.

 

이 북방의 민족을 그리스의 역사가는 스구디아인으로 불렀다.

지금의 러시아 남부의 초원에 거하던, 용장 표한한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일정한 주소 없이, 표랑의 생활을 하면서,

때로 약탈을 행했다.

 

그들이 어찌하여 남하 했는지는 분명치 않고,

혹은 기근 때문이었는지, 또는 단지 약탈을 위해서였는지,

혹은 메대와 내통하여 앗시리아(앗수르)를 치기 위해서였는지,

어쨌든 그들은 흑해연안을 돌아,

비교적 비옥한 서방 아시아의 평지에로 침입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말 타고 창던지기를 잘했으며,

그 행동은 민속하여 그 잔학은 맹렬을 다했다.

 

그 침입을 받은 나라들은, 그 강포에 전류했던 것이다.

 

지금 예레미야의 성소를 기원전 626, 7년으로 한다면,

그가 북방의 백성또는 북방에서 올 재앙이라고 한 것은,

이 장에 기록된 기사와 대조하여 이 스구디아인이였음이 추정된다.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4:7)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4:13)라고 있는 말은,

확실히 그들의 습성을 묘사해 보여주는 말이다.

 

이제 가공할 북방의 민족의 습래해 온다는 소문이, 유다 전국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이미 듣던 바 이들 잔학한 백성으로 인하여,

벌써 기세를 잃으려했던 것이다.

 

이렇듯 공포에 질려 있는 백성에게 향하여,

예레미야는, 이 말을 발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상상하면서 이 장을 읽지 않으면,

충분하게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이르기를,

 

너희는 유다에 고하며 예루살렘에 보여 말하라,

나팔을 나라 가운데서 불라!

시온에 보이는 신호의 기를 세우라. 도피하라. 머물지 말라.

내가 북에서 재앙과 큰 멸망을 가져올 것임이로다.

사자는 그 수풀에서 나와 올라오고, 나라를 멸하는 자는 나아오도다.

그가 네 땅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를 나셨도다’(4:5-7 일역).

 

검은 구름, 하늘을 뒤덮고,

폭풍은 불어 오려하는 것이다.

나팔을 불며, 기를 세워 그 습래를 경고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말로써 예레미야는 일부러 백성의 공포심을 더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명백한 목적이 있었다.

이 임박해온 대 재화는,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 재앙을 부른 것은, 곧 너희의 죄라, 그는 말하는 것이다.

 

만약 백성이 곧 그 죄를 회개치 않으면,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노는

불같이 불 탈것인데 이것을 끌자 없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목적은, 백성의 회개에 있었다.

그러므로 재앙이 올 것을 고함과 동시에,

이것을 피할 길을 지시했다.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대저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 돌이키지 아니 하였음이니라’(4:8 한글 개역).

 

14절에 이른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4:14 한글 개역).

 

그러나 백성에게 회개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벌을 도저히 면할 수 없음을 아는 예레미야에게는,

이 외적의 습래와 유다국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파괴는

이미 사실로서 그의 마음에 보였던 것이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4:23-25 한글 개역)

 

그래서 그의 말은 절망의 비조를 계속하는 것이다.

 

아아, 나는 화로다. 내 심령(영혼), 죽이는 자로 인하여 지쳐 버렸도다’(4:31 일역).

 

이상은 예레미야의 예언이었다.

 

그러면, 과연 이 예언은 실현 되었던가?

세계 역사상의 사실은, 이 말대로 성취되었던가?

 

이 예언은 결국 예레미야의 말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유다를 엄습하려던 저기압은, 중도에 그 방향을 바꾸고,

어떤 이유 때문에 스구디아인은 결국 유다에 침입치 않았다.

그리하여 사실은 예레미야의 예언에 어긋나,

유다는 그들의 참학을 입는 것을 면했던 것이다.

 

이에 있어서 세상의 비평가들은, 예언자를 조소하여 말하리라.

예레미야는 그렇게도 극단적인 말로서 유다의 형벌을 예언했지만도,

결국 그의 말은 적중되지 않은 것 아닌가?

 

그러므로 그의 열심에는 존경을 표하지만,

그러나 그의 말은 반드시 하나님의 직접의 영감에 의한 것은 아니다.

 

가령 또 직접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접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죄를 책망하지 않았어도,

달리 방법이 있었던 것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진리보다도 자기의 감정에 지배되었던 것 아닌가고.

 

예레미야의 예언은, 이 경우 분명히 적중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예언을 그치지 않았다.

그는 더욱더 대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했다.

더구나 그의 과격한 어조,

진지한 태도는 여전하여 변치 않았다.

그는 일생동안 말을 다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여 굴하지 않았다.

 

*내촌감삼의 (석원병영필기)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