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거듭난 삶 2022. 10.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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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멸망의 고통

 

성 경: [10:17-25]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 네 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

18)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19)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20)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21)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

22)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이 오니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시랑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24)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25)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

 

 

 

[10:17]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 네 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 -

 

어떤 주석가들은 17-25절의 내용이

9:17-22에 이어졌던 것이란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런 견해는 대단히 임의로운 주장일 뿐이다.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에 대한 극명한 대조에 이어

오랫동안 예언되어 왔던 참변이 이제 예루살렘 성문 앞에 이르렀음을 나타내고 있다.

 

본절은 아마 예루살렘이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적들의 침입에 직면하여 피난 보따리를 꾸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습하라'(아사프)란 말은 9:22에서

수확물을 '거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말이다.

앗수르인의 고분 벽화를 보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의 장면이 보인다(thompson).

 

 

 

[10:18]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말 것이라는 예언이다(Nicholsosn).

 

'내어던지다'의 원어 '칼라'는 원래 투석기에 돌을 담아

내어던지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대단히 생동감 있는 내용을 전달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으시고

인내하셨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심판의 시간인 것이며, 눈물과 호소의 때는 지나간 것이다.

 

 

 

[10:19]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의 고통스러운 역할을 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심판과 파멸을 예언해야 했으며,

이와 동시에 그는 그들의 운명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한탄은 그 민족의 한탄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그의 고뇌는 그 민족의 질병이 이제 치유될 수 없는 상태란 점에 있었다.

 

 

 

[10:20]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

 

예레미야는 유목민들이 이주하기 위해

그들의 장막을 철수하는 것을 예화로 사용하여 그의 슬픔을 표현한다.

 

여기서 '장막'이란

유다인들이 거주하던 예루살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말이며,

그 자녀는 예루살렘 거민을 말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쫓겨나서 다시 장막을 치지 못하고 말 것이다.

 

 

 

[10:21]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 이제는 목자와

그들이 치는 양떼를 비유로 하여 슬픔을 토로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목자'는 흔히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말이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시킨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우준한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야수나 다름없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탁받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언약이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임의대로 처신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번영이나 형통함이 있을 수 없었고

이에 대한 결과가 결국 백성들에게까지 돌아가고 만 것이다.

 

 

 

[10:22]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이 오니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시랑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風聲)이 오니 - 이것은 북쪽의 적들이

큰 함성을 지르면서 밀려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유다 성읍들을 쓰레기더미로 만들고 짐승들의 거처가 되도록 할 것이다.

 

이 예언은 B.C. 586년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성취되었는데,

전국토가 거의 초토가 되고 말았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B.C.6세기 초에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었으며,

그 후 대다수가 복구되지 못한 채로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thompson).

 

 

 

[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 이는 인간의 운명이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통제하에 있다는 내용이다(Nicholson).

 

유다의 형편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예레미야의 관심은

계속해서 자기 동포의 운명에 쏠려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다.

 

그의 탄원의 요지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이 점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연약하여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죄악에 빠지기 쉬운 도덕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탄원한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다고 큰 소리친다한들,

결국 그것은 인간의 한계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임할

재앙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10:24]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 백성들 편에 서서 드리는

예레미야의 중보기도가 계속 이어진다.

 

그는 유다 백성이 징벌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지만,

견딜 수 없는 처벌을 받아 결국 완전히 파산되어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빠지지 않기만을 탄원하는 것이다(C.L. Feinberg).

 

한편, '징계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동사 '이사르'

구약의 여러 다른 용례들을 보면 교육적 의미에서 징벌을 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0:25]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대적들에게는

엄격한 공의의 심판을 적용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외부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오직 정복을 위한 정복, 살육을 위한 살육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 -

 

적들의 잘못된 행위를 열거함으로써

에레미야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호소를 더욱 뒷받침한다(Thompson).

 

이러한 예레미야의 기도는 갈대아인들에게서 그대로 성취된다.

느부갓네살은 훗날 미쳐버리고, 그의 아들은 반역자들에게 살해된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은 결국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종종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불경건한 족속들에 대한 저주문으로 인용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