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거듭난 삶 2022. 10.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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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응답-징벌과 회복

 

성 경: [12:5-17]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8) 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 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다

9)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10)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11)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12)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13)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15)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7)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5]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의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느닷없는 대답을 볼 수 있다.

 

아마 하나님은 '현재의 이런 고난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더욱 험난한 일이 닥치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하고

타이르시고자 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또한 두 가지 은유법이 쓰이고 있는데,

 

첫 번째 것은 보행자와의 경주가 힘이 드는데,

어찌 말과의 경주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유다인들의 박해나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가

장차 임할 재난과 파멸에 비하면

은유는 요단 강의 창일함에 대한 내용으로서,

이것 역시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이 평화로운 땅을 덮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12: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 5절 말씀에 대한 하나의 실례로서,

집안 사람들에게마저 핍박을 당하는

고통스럽고 다급한 상황이 소개되고 있다(Delitzsch).

 

한편, 예수께서도 성도들의 당할 핍박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셨다.

 

(10:21 또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음에 넘겨주며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대적하여 일어나 그들을 죽게 하리라).

 

 

 

[12: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내 집, 내 산업,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는 내용상 정반대되는 동사들이 쓰이고 있는데

버리며’, ‘내어던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란 말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하나님의 애정과 보호의 대상이었던 백성이었지만,

이제 심판이 불가피한 것임을 강조한 표현이다.

 

 

 

[12:8] 내 산업이 삼림 중의 사자 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고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다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 - 이는 유다 백성들의

뻔뻔한 반항심을 묘사한 말이다.

그들은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악의에 찬 교만한 행동을 보였으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참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Calvin).

 

 

 

[12:9] 내 산업이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를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 '무늬 있는'의 히브리어 '차부아'

혹자는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육식조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한다(Blayney).

 

그러나 이 단어가 분사형인 점을 중시할 때,

이것은 단지 ''를 수식하는 말로 이해됨이 더 낫겠다.

 

벌게이트역(Vulgate)이나 시리아역(Syriac Versions)

이를 '다채로운', '변색된' 등의 의미로 옮겼다.

 

결국 '무늬 있는 매'란 포학하여 길들이기 힘든 완고함(Calvin),

우상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종교적 혼합주의, 가증스러운 변절성 등을 암시하는 듯하다.

 

 

 

[12:10]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 이 구절은 빈정대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즉 이제 유다 백성은 주변 열국들의 약탈과 유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적들에는 모압, 블레셋, 암몬, 앗수르, 애굽 등과 함께

특히 갈대아인들까지 포함될 수 있겠다(Clarke).

 

한편 하나님의 백성을 포도원에다 비유하는 표현은

이사야서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3:14 주께서 자신의 백성의 원로들과 그들의 통치자들과 함께 심판 자리로 들어가시리라. 너희가 포도원들을 먹어 버렸도다. 가난한 자에게서 노략한 물건이 너희 집에 있느니라;

 

5:1-7 이제 나는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되 그의 포도원에 관해 내가 사랑하는 자에 대한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는데 열매를 풍성히 내는 작은 산에 있도다.

2) 그가 거기에 울타리를 두르고 그것의 돌을 주워 내고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거기에 심고 그것의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또 그 안에 포도즙 틀을 만들었도다. 포도원이 포도 내기를 그가 바랐는데 그것이 들포도를 내었도다.

3) 오 예루살렘 거주민들아, 유다 사람들아, 청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해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었으랴? 그 안에서 내가 행하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포도원이 포도 내기를 내가 바랐거늘 그것이 들포도를 냄은 어찌된 일이냐?

5) ,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행할는지 너희에게 말하리라. 내가 그것의 울타리를 제거하여 그것이 먹히게 하며 그것의 담을 헐어서 그것이 짓밟히게 하리라.

6) 또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리니 거기서 가지를 치거나 땅을 갈지 못하고 다만 거기서 찔레와 가시가 올라오리라. 내가 구름들에게 명령하여 그것들이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7) 만군의 주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의 집이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초목은 유다 사람들이니라. 그분께서 공의를 바라셨으나 도리어 학대하는 것을 보시며 의를 바라셨으나 도리어 부르짖는 것을 보시는도다).

 

 

 

[12:11] 그들이 이를 황무케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무함은 이를 개의하는 자가 없음이로다

 

온 땅이 황무함은 - 대적들의 침입으로 유다 땅 전체가 초토화되리라는 예언이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B.C. 7세기 말경

유다의 어떤 도시들, 예컨대 라기스 같은 도시는

두 단계에 걸쳐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12:12]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무릇 혈육 있는 자가 평안치 못하도다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 이들 '훼멸하는 자들',

곧 파괴자들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도구로서

그의 심판의 목적을 성취시키게 될 것이다.

 

이런 자들 중에는 느부갓네살과

(34:2-3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가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말하고 그에게 이르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도시를 바빌론 왕의 손에 내주리니 그가 이 도시를 불태우리라.

3) 네가 그의 손에서 피하지 못하고 반드시 붙잡혀서 그의 손에 넘어가리니 네 눈이 바빌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가 너와 말하되 입으로 입을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빌론으로 갈 것이니라)

 

앗수르 군대도 들어 있다.

 

(10:5-6 오 내 분노의 막대기 아시리아 사람이여, 그들의 손에 있는 지팡이는 내 격노니라.

6) 내가 그를 보내어 위선을 보이는 민족을 치게 하며 또 그에게 명하여 나의 진노의 백성을 쳐서 노략하고 탈취하게 하며 거리의 진흙같이 그들을 짓밟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심판을 실행에 옮기시는 날이면,

그 누구도 환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편, '혈육 있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사르'

6:12의 용례에서 미루어 볼 때 죄악된 인생을 암시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6:12 하나님께서 땅을 보시니, 보라, 그것이 부패하였더라. 이는 땅 위에서 모든 육체가 자기의 길을 부패시켰기 때문이라)

 

 

 

[12:13] 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인하여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

 

우리가 말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 본절은 7-12절에 언급된

파멸 상황에 대한 결론 역할을 하는 바,

유다 백성의 죄악된 행위는 결국 그들의 기대와 노력과는 정반대의

불운을 초래할 수 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시사한다(Delitzsch).

 

그리고 구체적으로 본문은 애굽을 의지했다가 도리어 낭패에 봉착하게 될,

혹은 바벨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할 사실에 대한 언급이라 하겠다.

 

 

 

[12: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 유다를 황폐화시키려고 작당한

주변의 모든 이웃 나라들은 이제 그들 차례를 맞이하여 황폐화되고 말 것이란 내용이다.

 

그들 역시 사악하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들을 공의의 집행인들로 삼았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똑같이 공의의 집행이 시행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은 종종 한 민족을 응징하기 위해 악한 민족을 도구로 사용하셨으며,

그런 다음 다른 민족을 불러 그 악한 민족을 응징하셨다(Clarke, Harrison).

 

 

 

[12:15]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 이것은 포로에서부터 귀환과 회복을

약속하는 내용으로서, 여기에는 또한 적들 중에서도

얼마정도는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Clarke).

 

 

 

[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 원문상 이 구절은

 

'그들이 배우고 또 배우면'이라는 강력한 조건절로 시작된다.

 

또 이 구절뿐만 아니라 10:2에도 언급되고 있는 ''(데레크)

'', '여정', '양식' 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종교적 관행, 곧 여호와 신앙을 뜻하는 것 같다.

 

이들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웃이

하나님의 관심의 테두리 내에 포함될 수 있는 조건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종교를 따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본문에서처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맹세를 주장하는 자가 여호와를 섬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31:51-53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너와 나 사이에 쌓아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기를 원하노니 이로써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와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치지 아니할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에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매 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분을 두고 맹세하였으며).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 전에는 그들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였으며

또한 바알의 이름으로 맹세하도록 가르쳤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고

여호와를 그들의 주권적인 주시요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은 장성할 것이고 또 하나님의 백성 중에 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약속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놀라운 우주적 구원의 성격을 띤 분명한 서술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원수라고 하더라도 구원의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유용한 것이다.

 

 

 

[12:17]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뽑으리라 - 여호와의 주권을 거부하는 자면,

이스라엘이든지 이방이든지 간에 재앙을 받아 끝장이 날 것이다.

 

여호와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가능성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Thomp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