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거듭난 삶 2022. 10. 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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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촉구

 

성 경: [13:15-21]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16)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19) 남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13: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 수세기에 걸쳐 선지자들에 의해 전달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였던 이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백성에게

다시 한번 순종할 것을 호소한다(Nicho lson).

 

본절에는 두 동사, '듣다'(솨마)'귀를 기울이다'(아잔)란 동사가

대칭적인 위치에 놓여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부터 27절까지는

두 가지 비유에 이어 임박한 심판에 관한 세 가지 경고를 싣고 있다.

 

그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15-17절은

하나님께 대한 교만과 자만심을 버릴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13:16]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

 

'흑암'의 강도가 점차적으로 심해져가는 묘사를 통해

유다의 멸망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가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여기서 '흑암'은 재앙의 전조적인 현상임과 아울러,

유다 백성의 죄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어둠과 빛의 대립은

성경 전체를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상인데,

이러한 대립 속에서 어둠은 다음 세 가지 측면을 내포한다.

 

(1) 중생하지 않은 자에게 내재한 자연적 어둠,

 

(4:18 그들은 지각이 어두워졌으며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함과 자기들 마음의 눈먼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2) 의도적으로 빛을 거부하는 고의적 어둠,

 

(3:19-20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3) 완고한 죄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징벌로서의 어둠(Feinberg).

 

 

 

[13: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통곡하리라 - 신약 성경은 교만을

인생의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죄성(罪性)들과 나란히 기술하고 있다.

 

(7:22 도둑질, 탐욕, 사악함, 속임, 색욕, 악한 눈, 신성모독, 교만, 어리석음이 나오는데).

 

그리고 이것은 또한 온유나 겸손과 정반대된다.

 

(4:6 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나니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은 물리치시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시느니라;

 

벧전 5:5 젊은 사람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바울에게 있어서 교만이란

타락한 이교 사회에서 오염되는 전형적인 산물로 여겨졌으며,

예레미야가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런 관점이다(R.K. Harrison).

 

한편, 클라크(Clarke)는 본절을

 

'너희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구제책이 없다.

그리고 파멸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이제 나에게는 너희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은밀히 슬퍼하고 곡하는 것 외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설명한다.

 

 

 

[13: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본절과 19절은

두 번째 경고의 말씀으로서 왕과 왕후에 대한 애도의 노래가 주조를 이룬다.

 

너는 왕과 왕후에게 고하기를 - 이는 여고냐와 그의 모친을 말하는 것으로서,

여고냐는 어려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모친의 섭정을 받았던 것 같다(Clarke).

 

그녀가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그의 어린아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유다의 왕후란 것이 공식적인 직책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왕후 역시 왕관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왕상 2:19에 의하면 왕좌 곁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Nicholson).

 

(왕상 2:19 그러므로 밧세바가 아도니야를 위해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매 왕이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그녀에게 절한 뒤에 자기의 왕좌에 앉고 왕의 어머니를 위해 자리를 베풀게 하니 그녀가 그의 오른쪽에 앉았더라)

 

한편 본절의 역사적 정황에 관해서는 왕하 24:8-12을 보라.

 

 

 

[13:19] 남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남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 남방이란 원어로 '네게브'인데,

아마 유다 남쪽의 메마른 넓은 광야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Nicholson).

 

원어의 원래 뜻은 '건조하다'인데,

그 위치는 가사-브엘세바에 이르는 도상에 있었고 시내 반도 고원으로 이어진다.

 

이곳의 성읍들은 침략자들을 피해 유입해 들어오는

피난민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차단될 것이다(R.K. Harrison).

 

반면에 클라크(Clarke)는 이를 유다의 남쪽까지 갈대아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어

말 그대로 끝에서 끝까지 파괴될 것을 말한다고 보기도 한다.

 

 

 

[13: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본절에서부터 27절까지는

유다의 처벌이 그들의 죄에 대한 완고한 성향에 따르는

불가피한 결과일 것임을 최종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내용이다.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냐 - 이 말씀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달되고 있다.

 

'거기 살던 수많은 부유한 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양떼들이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슬프게도 그들은 바벨론 군대 앞에서 쫓겨나

포로로 잡혀 가버린 것이 아닌가?'(Clarke)

 

 

 

[13: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너의 친구삼았던 자 - '친구'에 해당하는 '알루핌'

영역 성경 KJV'두령'(captains)으로 번역한 반면,

'친구'(friends)'각별한 동료'(special allies)로 각각 옮겼다.

 

실제로 이 단어는

 

'족장',

 

(36:15 에서의 아들들 중에서 추장들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맏아들 엘리바스의 아들들 중에서는 추장 데만, 추장 오말, 추장 스보, 추장 그나스)

 

혹은 '두목'의 뜻으로 쓰이는가 하면,

 

(9:7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이빨 사이에서 그의 가증함을 제거하리라. 그러나 남는 자 곧 그는 우리 하나님을 위한 자가 되어 유다에서 다스리는 자같이 되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

 

'가족'이나 '친한 벗'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16:28 비뚤어진 자는 다툼을 뿌리며 수군거리는 자는 중요한 친구들을 갈라놓느니라;

 

7:5 너희는 친구를 신뢰하지 말고 안내자를 신임하지 말며 네 품에 눕는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들을 지킬지어다).

 

여기서는 문맥상 후자의 뜻이 자연스럽겠다.

 

유다는 바벨론이 신흥 강국으로 등장하기 전,

당시 중근동을 주름잡았던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이들과 동맹을 맺은 적이 있다.

 

(왕하 20:12-15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인 바빌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것을 들었으므로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내매

13) 히스기야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귀한 물건과 은과 금과 향료와 귀한 기름이 있는 온 집과 또 자기의 온 병기고와 자기의 보고에서 찾은 모든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더라. 그의 집과 그의 지배 하에 있던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14) 그때에 대언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나이까? 그들이 어디에서 왕에게 왔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이르되, 그들은 먼 나라 곧 바빌론에서 왔나이다, 하거늘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매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그들이 보았나니 내 보물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하매).

 

그리고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이 애굽을 격파했을 때에도,

유다는 바벨론에게 조공을 바치며 동맹을 맺은 바 있다.

 

(왕하 24:1 여호야김 시대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 동안 그의 종이 되었다가 그 뒤에 돌이켜 그를 배반하였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