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거듭난 삶 2022. 11.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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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인간의 신앙적 고투(苦鬪)

 

성 경: [20:7-12]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20: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이기셨으므로 - 여기서 '권유하다'에 해당하는

'파타''유혹하다', '속이다', '설득하다' 등의 뜻을 지니며,

22:16에는 이 단어가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을 나타낸다.

 

(22:16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그녀와 함께 누우면 반드시 지참금을 주고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을 것이요)

 

혹자는 신성 모독적인 어감을 피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설득하다', '부추기다' 등으로 약하게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속이다', '꾀다'라고 번역한다고 해서

예레미야가 신성모독적 감정을 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소명 당시부터 그 소명을 감당하기 두려워했으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마음으로 그 일에 전념하였으나,

 

(1:4-10 그때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배 속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거룩히 구별하였으며 너를 민족들을 향한 대언자로 세웠노라, 하시기에

6) 그때에 내가 이르되, , 주 하나님이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을 할 수 없나이다, 하니라.

7) 그러나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나는 아이니이다,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보낼 모든 자에게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건져 내리니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라. 주가 말하노라, 하시고

9) 그때에 주께서 자신의 손을 내미사 내 입에 대시며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들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이 날 너를 민족들과 왕국들 위에 세워 그것들을 뿌리째 뽑고 무너뜨리며 파멸시키고 파괴하며 세우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1)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기에 내가 이르되, 내가 아몬드나무 막대기를 보나이다, 하매)

 

점점 심각해오는 핍박의 양상을 맞아 다만 깊은 갈등에 사로잡혀

역설적 항변을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Feinberg).

이는 그가 15:18에서 여호와를 가리켜 속이는 시내라고 말한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15:18 어찌하여 나의 고통이 영원토록 계속되고 나의 상처가 고쳐지기를 거부하며 고칠 수 없게 되었나이까? 주께서는 내게 전적으로 거짓말쟁이같이 또 마르는 물같이 되려 하시나이까?)

 

 

 

[20: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치욕과 모욕거리가 예레미야가

줄곧 외쳐왔던 메시지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이러한 심판 선언이 이제는 사람들로부터 모욕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Brigh).

 

한편 전반절의 '외치다'(자아크)란 동사와 '부르짖다'(카라)란 동사는

공격적이고 큰소리로 선언한다는 인상을 전달한다.

 

그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언약을 위반했다고 하는 비난과

예루살렘의 멸망 선포는 조소거리가 되었으며,

거센 반발과 핍박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예레미야는 더 거세어져가는 핍박의 와중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결심도 해보았다.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선지자가 가장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을 포기하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불과 같아서 속에다 담아둘 수가 없었다.

 

'답답하여'의 히브리어 '라아는 '기진하다'의 뜻으로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한편 사도 바울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 9:16)라고 고백하였다.

 

 

 

[20: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 이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기 마골밋사빕이 지나간다'라고

수근거리며 비난했던 것을 가리킨다.

 

'마골밋사빕(사방의 두려움)'이란 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스훌에게 붙여준 이름이었지만, 이제 예레미야의 별명이 되었다.

 

예레미야가 당했던 고뇌는 친한 벗들처럼 예레미야의 반대 편에 서서

그가 잘못된 길로 가기를 바랐던 데서 한층 심화되었다.

 

그들은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그때가서 그를 때려 잡자'라고 수군거렸다.

 

여기서 '유혹을 받아'라고 하는 동시에 7절 상반절에 언급된

'권유하다'란 말과 같은 히브리어(*,파타)이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미혹된 길에 빠져 반역죄로 몰아 붙일 수 있는

망언을 내뱉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Feinberg).

 

이처럼 선지자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단절감과 소외로 말미암는 이런 고독은

예레미야에게 참으로 처량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20: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 선지자의 절망과 낙심에 대한

묘사의 한가운데 이르러서 다소 문맥의 흐름과는

벗어난 듯한 내용이 등장하고 있다.

 

즉 여호와로부터 받은 소명조차도 회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내용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회의와 갈등 속에 방황하다가 마침내 그의 신앙의 최종적인 영역에

도달했으며, 그랬기 때문에 다시 여호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두려운 용사와 같고 또 자기와 함께하신다'라고 하는 고백은

24:8에도 언급되어 있다.

 

(24:8 누가 영광의 왕이시냐? 강하고 능하신 주시요, 전투에 능하신 주시로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박해자들이 강한 것 같아도 자기를 쓰러뜨릴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위기의 순간을 맞았을 때 예레미야는

1:18,19의 여호와의 약속을 회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18-19 보라, 내가 이 날 너를 방벽을 세운 도시,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여 그 온 땅과 유다의 왕들과 그것의 통치자들과 그것의 제사장들과 그 땅의 백성을 치게 하였노라.

19) 그들이 너와 싸우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건져 내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는 이전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 약속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힘을 얻은 적이 있다.

 

(15:20 내가 너로 하여금 이 백성에게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싸울지라도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너를 건지리라. 주가 말하노라).

 

 

 

[20: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 이 구절은

약간의 변형을 제외하고는 11:20이 반복된 내용이다.

 

여기서 '폐부와 심장'이라고 하는 말은

'은밀하게 감추어져있는 생각'을 뜻한다.

 

'폐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켈라요트'

감정이나 감추어진 동기 등이 들어있는 장소로,

그리고 '심장'(레브)

생각과 의지가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각각 간주되었다.

 

한편 사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브'는 법정 용어로서

논쟁, 소송, 변론 등을 의미한다.

 

예레미야의 대적들은 그를 치려고

그에게 불리한 증거를 수집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0절 많은 사람이 중상 모략하는 것과 사방에서 두렵게 함을 내가 들었나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전하라. 우리도 그것을 전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이들도 다 내가 그만두기를 기다리면서 말하기를, 혹시라도 그가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겨 그에게 우리의 원수를 갚으리라, 하나이다;

 

18:18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계략을 꾸며 예레미야를 치자. 율법이 제사장에게서, 계략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말씀이 대언자에게서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말 중에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말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재판이 열리면 여호와께서 그의 변호사가 되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