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왕의 출현과 유다의 회복
성 경: [렘 23: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렘 2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 목자에게(르임) - 다른 곳에서도 이 말이 자주 쓰이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유다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원문상 복수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왕을 포함하여 그의 주변에서 불의와 패역의 길로 인도하는
조언이나 정책을 제시했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말이다(Birght).
한편 히브리어 본문에는 '화 있으리라'는 말이 문두에 놓여 있는데,
이 말은 왕을 비롯한 지도층의 죄악에 대한
단순한 단죄와 비난의 정도를 넘어서는 심판 선언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유다의 마지막 네왕의 죄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절의 목자들에는
이스라엘 양무리를 흩어지게하는 일차적 책임이 있는 이들 왕들이
우선적으로 포함될 것이다.
[렘 23: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 우리는 여기서
교회와 국가의 우두머리들이 범죄했을 때 그 악한 영향력이
백성들에게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왕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제사장들과 귀족들의 범죄와 우상 숭배로 인하여
민족 전체가 파국을 맞게 되었으며 전 국토가 황폐화 되었던 것이다(Clarke).
▶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 이 말의 히브리어는 '파카드'인데,
본 어구에서 번역된 바와 같이
'돌보아주다', '보살피다'란 뜻이 제 일차적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언어 유희에 의해 본절 후반부에서 다시 한번 쓰이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보응하리라'고 번역하였다.
두 번째 의미는 '책임을 묻다', '처벌하다'란 뜻이다(Bright).
원래 목자의 임무는 양떼를 지키고 돌보는 것인데,
이들 이스라엘 자도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오히려 흩어지게 하고 몰아내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렘 23:3]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번성할 것이며 - 여기서는 흩어진 양떼를
다시 모으는 장면이 등장한다.
1절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양떼를 모으는 일을 하는 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천명하신다.
그 백성은 그릇된 목자들의 길을 좇음으로써 언약을 거부하였고
범민족적으로 반역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지만,
그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귀환의 은혜에 참여케 되는 것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구절이 포로기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이 구절은 포로기의 신명기 사상을 가진 저자의 작품이 되고 만다.
그러나 추방과 포로라고 하는 말이 언급되었다고 해서
무턱대고 이 단락이 포로기에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포로 이후의 결실과 번영에 대한 내용은 포로기에도 있었지만
*참고 : (겔 36장;슥 8:9-13)
포로기 이전에도 흔히 등장한다.
(호 2:21-23 그 날에는 내가 들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나는 하늘들의 말을 듣고 하늘들은 땅의 말을 들으며;
암 9:11 그 날에 내가 쓰러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켜 세우고 그것의 무너진 곳을 막으며 내가 그의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우고 내가 그것을 옛날과 같이 건축하리니).
또한 이곳에는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 참조 : (24장, 40-44장).
이 주제 역시 포로기 이전의 선지자들의 글에서도 볼 수 있다.
(사 1:9 만군의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주 소수의 남은 자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같이 되고 고모라같이 되었으리로다;
37:4 랍사게의 주인인 아시리아 왕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그를 보내었은즉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그의 말들을 들으시고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들으신 그 말들을 꾸짖으실 터이니 그러므로 당신은 남아 있는 남은 자들을 위하여 당신의 기도를 올리소서, 하시나이다, 하니라;
미 4:7 다리 절던 여자를 남은 자가 되게 하며 쫓겨난 여자를 강한 민족이 되게 하고 주가 이제부터 심지어 영원토록 시온 산에서 그들을 통치하리라;
7:18 어떤 신이 주와 같으니이까? 주는 불법을 용서하시고 자신의 상속 백성 중 남은 자들의 범죄를 지나치시나이다. 그분께서는 긍휼을 기뻐하시므로 분노를 영원토록 품지 아니하시나니).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들은 본 단락이
포로기 이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무모성을 보여준다.
[렘 23: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그들이 다시는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 여기서 '축이 나다'(파카드)는 말은
2절에서 언급되었던 히브리어 동사 '파카드'(돌아보다)에 대한
언어 유희적 관계에 있는 말로서
'잃어버리지 아니할 것이다'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Bright).
양떼는 보살핌을 받고 일일이 계수되어질 것이기 때문에 축이 나지 아니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회복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포로 이전과 동일한 상황으로 되어질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나 이는 적절치 못하다.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여호와로부터 임명받은 목자들이 그들을 충실하게 돌보아줄 것이고
또 그 땅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다 제거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1차적으로 포로 귀환 이후의 상황을 겨냥하지만
나아가 메시야 시대를 아울러 함축하고 있다.
[렘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 이 구절은
다윗 혈통의 이상적인 왕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의 모든 소망을 실현하게 될 것이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예레미야의 직접적인 언급으로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메시야에 관한 기사 중의 하나이다(Frost).
여기서 '의로운 가지'라고 하는 말은
훗날에 가서는 대망의 앙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가 되었다.
정확한 어구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사상은 사 11:1의 내용과 동일하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자랄 것이요)
그리고 '의로운 가지'(체마흐 차디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음가는
현재 왕위에 있는 시드기야란 이름과 언어 유희적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레미야가 이 예언을
시드기야 통치 초기에 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있을 것이다(Bright).
그리고 '때가 이르리니'란 말은
엄숙한 선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으로 쓰였다(Feinberg).
[렘 23: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 메시야 사상과 관련하여
구약과 후대 랍비 문헌에는 두 가지 양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메시야에 관한 가르침과
메시야시대에 관한 가르침이 그것이다.
5절에서는 메시야 개인에 관한 가르침이 주어졌고
본절에서는 메시야 시대에 관한 가르침이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 11:1-5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자랄 것이요,
2)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3)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
4)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해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이며
5) 의로 자기 허리의 띠를 삼고 신실함으로 자기 콩팥 주위의 띠를 삼으리라,
6-16 이리도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염소 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젊은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인도하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놀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로되
9)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어서 그것이 만백성의 기로 설 것이요,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오리니 그가 베푸는 안식이 영화로우리라.
11) 그 날에 다시 주께서 두 번째 자신의 손을 세우사 자신의 백성 가운데 남은 자들 곧 남게 될 자들을 되찾되 아시리아와 이집트와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여러 섬으로부터 되찾으실 것이요,
12) 또 그분께서 민족들을 위하여 기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의 사방에서부터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함께 모으시리라.
13) 에브라임의 시기도 떠나가고 유다의 대적들도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시기하지 아니하고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요,
14) 그들이 서쪽으로 날아가 블레셋 사람들의 어깨에 앉고 함께 동쪽 사람들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게 손을 대리니 암몬 자손이 그들에게 복종하리라.
15) 주께서 이집트 바다의 혀 같은 부분을 철저히 멸하시고 자신의 강한 바람과 더불어 자신의 손을 강 위로 흔드사 강을 치시고 일곱 갈래로 나누사 사람들이 신을 적시지 않고 건너가게 하시리라.
16) 아시리아를 떠난 그분의 백성 가운데 남은 자들 즉 남아 있을 자들을 위하여 큰길이 생기리니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에 그에게 있었던 것과 같으리라).
예레미야는 여기서 유다가 온갖 제한과 속박에서 해방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외부의 대적들이나 내적인 긴장이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 이스라엘 모든 가족들도 이상적인 왕의 통치를 받을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이라 함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북이스라엘 왕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남북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이 앞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는 이 주제는
30, 31장에서 더욱 자세히 언급된다.
한편, 본절 하반절에 언급된 이상적인 왕이 유다 역사에 등장한 일이 없기 때문에,
즉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로마인들의 예루살렘 파괴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기다리던 그런 메시야가 나타난 바 없으므로,
이는 주 예수께 적용될 수 밖에 없다.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모든 죄와 저주로부터 해방시키는 메시야이며,
정의의 심판을 행하는 의로운 왕이시다(Clarke).
[렘 23: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본절과 그 다음절인 8절은 약간의 변형을 제외하고는 16:14, 15과 동일하다.
메시야와 그의 시대에 이루어질 일들을 묘사하는 문맥을 고려하건대,
본문의 내용은 단지 포로 귀환에만 국한시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렘 23: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거하리라 하시니라 - 여태까지는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왔으나 이제는 새로운 출애굽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러나라에 흩어졌던 여호와의 백성은 이상적인 왕이 통치를 시작하게 되면, 포로된 상태로 그냥 그대로 머물러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북쪽 땅에서, 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흩으사 내어 쫓았던 그 모든 땅에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신약 시대에만 백성이 죄의 올무로부터 벗어나 교회에 편입될 사실을 예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고국으로 남은 자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장면은 사 11장과 겔 34, 37장 등에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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