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거듭난 삶 2022. 12. 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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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지자 하나냐

 

성 경: [28:1-11]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년 오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4)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지라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할쌔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기를 원하노라

7)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28:1]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년 오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

 

본장의 사건은 예레미야가 주변 국가의 사실들과 조우한 지

 

(27:3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려고 예루살렘에 오는 사자들의 손으로 그것들을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족속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얼마 되지 않은 때인 B.C. 593년에 발생하였다.

 

10절에서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 걸린 멍에를 빼앗아 꺾었던 것으로 보아

그 멍에는 여전히 예레미야의 목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하나냐는 베냐민 땅 기브온 출신이었는 데

기브온이란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9.6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으로서

오늘날의 엘-(el-Jib)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근에 이 고대 유적지가 발굴되었는데,

이곳은 수많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결부되어 있던 곳이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속이고 파멸을 모면한 바 있으며

 

(9:1-15 요르단 이편의 산지와 계곡과 레바논 맞은편 대해의 지경에 있던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모든 왕이 그 일을 듣고

2)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더라.

3) 기브온 거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는

4) 교묘히 행하되 가서 마치 자기들이 사신인 것처럼 꾸미고 낡은 자루와 낡고 찢어져 꿰맨 포도즙 부대들을 나귀에 싣고

5)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마르고 곰팡이 난 빵을 모든 양식으로 예비하니라.

6) 그들이 길갈에 있던 진영으로 나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와 동맹을 맺으소서, 하매

7)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족속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하는 듯하니 어찌 우리가 너희와 동맹을 맺을 수 있으랴? 하거늘

8)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누구냐? 너희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9)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은 주 당신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매우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우리가 그분의 명성과 그분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모든 일에 관하여 들었으며

10) 또 그분께서 요르단 건너편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던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관하여 들었나이다.

11)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거주민들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행을 위해 양식을 취하고 가서 그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오니 그런즉 이제 우리와 동맹을 맺으소서, 하라, 하였나이다.

12) 우리의 이 빵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의 집에서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한 것인데, 보소서, 이제 그것이 마르고 곰팡이가 났으며

13) 또 우리가 포도즙을 담은 이 부대들도 새 것이었는데, 보소서, 그것들이 찢어졌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매우 먼 여행으로 인해 낡아졌나이다, 하니라.

14) 그 사람들이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주의 입에서 조언을 구하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그들과 화친하며 그들과 동맹을 맺어 그들을 살게 하였고 회중의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다윗 시대에는 사울의 군사와 다윗의 부하 사이에 대결의 장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삼하 2:12-17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하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으로 가고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하들은 나가서 기브온 연못가에서 함께 만나니라. 그들이 앉되 한 쪽은 연못 이편에, 다른 쪽은 연못 저편에 앉았더라.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이제 청년들이 일어나 우리 앞에서 경기하게 하자, 하니 요압이 이르되, 그들이 일어나게 하라, 하매

15) 그때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속한 베냐민의 열두 명과 다윗의 신하 가운데 열두 명이 수효대로 일어나서 나아가더라.

16) 그들이 각각 자기 상대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의 옆구리를 찌르매 그들이 함께 쓰러졌으므로 기브온에 있는 그곳을 헬갓핫수림이라 하였더라.

17) 그 날 싸움이 매우 심하였고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하들 앞에서 패하였더라).

 

또한 이곳에서 요압은 아마사를 살해한 바 있다.

 

(삼하 20:8-10 기브온에 있는 큰 돌에 이르렀을 때에 아마사가 그들 앞에 나오니라. 요압이 자기가 입은 의복을 졸라매고 그 위에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찼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나왔더라.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건강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려 하였으나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던 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이에 요압이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흘러 나와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였더라).

 

'하나냐'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자비하시다'이다.

 

비록 하나냐가 잘못된 신앙을 가졌긴 하였으나

이 이름은 유다가 곧 회복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이 사람에게는 어울리는 이름이었다(Thompson).

 

그는 자칭 선지자로서 자신이 여호와와 교통하고 있고

또 그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성역 도시인

 

(21:17 또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브온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게바와 그것의 주변 지역과)

 

기브온 출신인 것으로 보아서 그는 제사장이었을 것이다(Clarke).

 

한편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 년 오 월이라는 연대는 양력으로 B.C.5938월 초순에 해당된다.

 

또한 본장은 27장의 계속으로서,

앞 예언의 정확한 연대를 제시해주고 있기도 하며

또한 27:1에 언급된 여호야김이란 표현이 잘못된 표기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Clarke).

 

 

 

[28: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하나냐는 예레미야가 사용했던 비유를

사용하여 예레미야의 예언과 반대되는 예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B.C. 597년에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을

고국으로 속히 돌려보내실 것이며 또한 바벨론인들에 의해 빼앗겼던

성전 기구들을 복수시켜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3, 4).

 

하나냐는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27장에 언급되어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표본이 되고있는 것이다(Nicholson).

 

 

 

[28:3-4]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4)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지라 -

 

여호와로부터 임한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하나냐의 예언 내용은

두 해가 되기 전에 바벨론의 멍에가 꺾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유적 표현은 예레미야가 그때까지

계속해서 걸고 있었던 그 멍에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하나냐는 그 결과 성전의 신성한 기구들과 물건들이

왕을 위시한 포로민들과 함께 다시 복귀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왕은

여고니야 곧 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내용의 희망 사항은

그 당시 백성들 중에 일부가 아직도 그를 합법적인 통치자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참고로 바벨론 성문에서 발견된 문헌 중 바벨론의 기름 수납 영수증을 보면

여호야긴이 유다의 왕으로 언급되고 있다(Thompson).

 

한편, 하나냐는 두 해가 차기 전이라고 말했는데

바벨론이 멸망되기는 커녕 두 해가 되기 전에 하나냐 자신이 죽게 될 것이다.

 

(17절 이에 대언자 하나냐가 바로 그 해 칠월에 죽었더라).

 

 

 

[28: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할쌔 -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은

본장에서 예레미야와 하나냐란 말이 언급될 때마다

시종 일관되게 선지자란 말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70인역은 이를 오히려 일관되게 생략하고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이 두 사람의 이름 앞에다 계속 반복해서

선지자란 말을 붙이는 것이 불필요하고 어색한 듯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을 빌어 서로 대치하고

반박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Bright).

 

 

 

[28: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 하나냐의 거짓 신탁에 대한

예레미야의 이같은 반응과 응답이

단순히 빈정거리고 풍자적인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예레미야는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냐의 예언 내용대로

되기를 진정으로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예언이 사실이 아니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하옵소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사'

'준비하다', '시행하다', '성취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는 바,

애초부터 작정된 계획을 따라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심을 의미한다.

 

 

 

[28:7]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

 

이는 곧 하나냐와 같은 자의 축복 예언은

백성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달콤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뜻을 암시한다(Calvin).

 

 

 

[28:8]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

 

선지자 하나냐와 선지자 예레미야가 맞서고 있는 이 당시에는

참선지자가 누구이고 또 거짓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알기가 힘들었다.

 

두사람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빌어 말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말만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일 만한

가시적인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외형상으로는 이 둘 중에

누가 참선지자인지 식별해낼 방법이 없다 하더라도,

더 깊이 내려가서 살펴보면

그들 사이에는 분명하고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즉 한 사람은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했었던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23:18 누가 주의 계획 가운데 서서 그의 말을 깨닫고 들었느냐? 누가 그의 말을 주목하고 들었느냐?,

 

22 그러나 그들이 내 계획 가운데 서서 내 백성으로 하여금 내 말들을 듣게 하였더라면 저들의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저들을 돌아서게 하였으리라).

 

또한,

한 사람은 여호와의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에

민감한 반응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아전 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하나님의 뜻을 곡해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이 백성의 거룩하고 겸손한 순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만 내세우고

그 특권이 왜 있는가 하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였다.

 

이런 엄청난 잘못은

소위 경건하고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범하여 왔던 비극이었다.

그들은 바로 이 하나냐와 같이

자신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혼동해버리곤 하였다.

 

진정한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참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예레미야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성이다(Nicholson).

 

한편 예레미야 이전의 선지자들이라고 함은

요엘, 아모스, 호세아, 미가, 스바냐, 나훔, 하박국 등의 선지자들을 들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의 메시지는 대부분 이 부패한 민족에 대한

회개의 촉구와 심판 선언에 관한 것이었다(Clarke).

 

 

 

[28: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

 

시간이 지나면 하나냐의 낙관적인 청사진이 거짓이고

예레미야가 제시한 청사진이 옳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부인할 수 없는 기준은

그의 예언 성취 여부에 달려 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순종과 거룩한 행실을 요구하고 계심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특권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였다(Thompson).

 

'진실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

'세우다', '확고하게 하다'는 뜻인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확실함', '진리', '진실로' 등으로 번역된다.

 

 

 

[28: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

 

하나냐는 여태까지 예레미야의 예언을 말로써 반박하고 있었으나

이제와서는 예레미야의 목에 있는 멍에를 벗겨내고

그것을 꺾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반박하고 나섰다.

 

즉 하나냐의 행위는

단지 예레미야 예언에 대한 모독과 멸시의 표현이었다기보다는

예레미야와 정반대되는 예언과

또 정반대되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력하게 만들려고 하였던 것이다(Clarke,Nicholson).

 

 

 

[28:11]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

 

25:11, 29:10에는 70년간 유다가 바벨론의 지배하에 있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25:11 그리하여 이 온 땅은 폐허가 되고 놀랄 일이 되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빌론 왕을 섬기리라,

 

29:10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빌론에서 칠십 년이 찬 뒤에 내가 너희를 돌아보고 너희를 향한 나의 선한 말을 이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하나냐는 이를 정면으로 공박하기 위해

자신도 2년이라는 구체적인 기간까지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는그 예언의 성취를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백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칠게 행동하였다.

 

어쨌든 그의 예언은 그 당시로서는

반바벨론 동맹과 반역을 꾀하고 있었던 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자기 길을 가니라 -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심판 예언을 계속 선포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단순히 그곳을 피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본절에서는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다.

 

그가 아무런 변명도 없이 자리를 뜬 이유에 대해

혹자는 하나냐의 동조자들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혹은 하나냐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보다는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장래의 구체적 사건을 통해

예레미야 자신의 메시지의 진실성을 입증해주시리라고

믿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Fein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