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바벨론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인을 죽였으며

거듭난 삶 2023. 1. 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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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함락

 

성 경: [39:1-10]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기타 모든 방백들이었더라

4) 유다 왕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길로 좇아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인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바벨론으로 잡아 옮겼으며

10)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39:1]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구년 시 월에 - '시 월'은 에 2:16에서 데벳월로 기록되어 있다.

이 데벳월은 양력 정월 초승달이 뜨는 날에서부터 시작 되었다(Clarke).

 

이곳의 연대적 서술은 52:4과 연결지어 볼 수 있는데,

 

(52:4 시드기야의 통치 제구년 시월 곧 그 달 십일에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자기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와서 예루살렘을 향해 진을 치고 그것을 치려고 사방으로 요새들을 쌓으매)

 

거기에는 이달 10일째라고 날짜를 덧붙이고 있다.

 

본절과 2절은 52:4-6의 내용을 축약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2:4-6 시드기야의 통치 제구년 시월 곧 그 달 십일에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자기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와서 예루살렘을 향해 진을 치고 그것을 치려고 사방으로 요새들을 쌓으매

5) 이에 그 도시가 시드기야 왕의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으며

6) 사월 곧 그 달 구일에 그 도시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의 백성을 위한 빵이 없더라)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애 의해 함락된 것은 B.C. 5867월이었다(52:5 이하 참조).

 

성이 함락되고 한 달 후 느부갓네의 경호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예루살렘 포위 공격은 B.C. 5881월에 시작되어

B.C. 5867월까지 계속되었으며

그 사이에, B.C. 588년 여름에 일시적으로 포위 공격이 풀렸었다.

물론 그것은 애굽 원정군의 등장으로 인한 것이었다.

 

 

 

[39: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시드기야의 제 십 일년 사월 구일에 - 히브리 종교력으로 4월은

바벨론식 이름으로 담무스월이라고 불리었다.

이 달은 오늘날의 7월 초승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Clarke).

 

 

 

[39: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기타 모든 방백들이었더라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 본문은 시드기야가

바벨론 방백들이 중문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보고 달아났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 왕은 어떤 방어 조치가 취해질 것을 기다리지 않고

성이 파괴되는 그날 밤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여기서 '중문'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오직 이곳에만 언급된다.

어쩌면 이것은 성을 두 구역으로 갈라놓고 있던

벽의 출입구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Thompson).

 

예루살렘은 두 개의 언덕, 곧 남쪽의 시온과 북쪽의 아크라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있었다.

중문이라는 말 자체에서도 쉽게 짐작되다시피, 이것은 아마

예루살렘의 두 언덕 사이의 계곡 한가운데에 있던 통로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언덕은 때로는 상 예루살렘, 하 예루살렘으로도 불리었다.

 

갈대아 군대는 북쪽 편에서 성을 파괴하고 진입해 들어왔을 것이고

진군하여 이 중문을 장악함으로써 성 전체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시드기야는 이 사실을 알고 그 반대편에 있는 남쪽의 문으로 달아났을 것이다(Clarke).

 

 

네르갈사레셀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 -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인물들은 바벨론 군대의 주요 지휘관들이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환관장과 박사장이라는 두 직명이 소개되는데,

이들도 역시 인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가하면 블레이니(Blayney)박사는

이를 세 사람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 직행명과 그 뒤에 이름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제견해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한편 여기에는 '네르갈사레셀'이 두 번 언급된다.

바벨론군 총사령관은 느부사라단이었는데,

아마 첫 번째 네르갈사레셀은 느부사라단이었는데,

아마 첫 번째 네르갈사레셀은 느부사라단에 대한 오기에 의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동명이인의 다른 군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Clarke).

 

 

 

[39:4] 유다 왕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길로 좇아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 어쩌면 성문을

통하지 않고도 성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통로나 지하통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들키지도 않고 성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성에서 상당히 멀리까지 달아날 수 있었다(Clarke).

 

 

아라바로 갔더니 - '아라바'란 요르단 계곡을 망라하는 지역을 가르키는데,

사해 남쪽에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리고 지역인 요르단 계곡을 가리키는것으로 쓰였다(Thompson).

 

클라크(Clarke)는 이를 광야길로 번역한다.

 

아무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감람산을 넘어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산을 넘는 것은 시간을 지체할 것이기 때문에

시드기야는 다른 길인 광야길, 다시 말해서 아라바를 택했던 것이다.

 

아마도 시드기야는 요르단을 건너 애굽으로 도망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39:5-7]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인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 '립나'

팔레스틴 지역 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었으며

'하맛' 역시 수리아에 속해 있던 대도시였다(Clarke).

 

(10: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으며 그 뒤에 가나안 족속의 가족들이 널리 흩어지니라)

 

또한 오론테스 강변에 있었는데, 가데스 남쪽의 수리아 고도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도시는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직통으로 연결시켜주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느부갓네살은 수리아의 심장부인 립나의 사령부에 머물러 있고

그의 군장은 유다에서 전쟁을 수행했었다.

포로들은 느부갓네살에게 심판을 받기 위해 압송되었다(Thompson).

 

 

 

[39: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 니콜슨 (Nicholson)

왕궁과 백성의 집 사이에 여호와의 집이란 말을 덧 붙이고 있다.

물론 본절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52:13에는 포함되어 있다.

 

(52:13 주의 집과 왕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위대한 자들의 모든 집을 불태우며)

 

아무튼 여호와의 집이 파괴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남아있는 예루살렘 성벽 남쪽 지역의 동쪽 비탈을 발굴한 결과

그 당시 백성의 개인적인 집들에까지 파멸이 미쳤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서 '헐었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추'

성을 헌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예레미야의 소명 장면에서도 나타났다.

 

(1:10 보라, 내가 이 날 너를 민족들과 왕국들 위에 세워 그것들을 뿌리째 뽑고 무너뜨리며 파멸시키고 파괴하며 세우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39:9]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바벨론으로 잡아 옮겼으며

 

시위대장 느부사라단 - '시위대장'은 히브리어로 '라브 타바힘'인데,

여기서 히브리어 동사 '타바흐'

(짐승이나 사람을) '학살하다', 살해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탈굼역(Targum)'살해자의 방백'이라고도 번역하나,

'시위대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 혹자는 이를 '남아 있는 장인들'로 번역하는데

이는 같은 말의 반복을 피하고자 함이다(Nicholson).

그러나 본문은 예루살렘내의 백성을,

또 본절 말미의 '남은 백성'이란 유다 지경내의 백성들을

포함하는 말을 뜻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Calvin).

 

 

 

[39:10]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

 

여호야긴 당시의 예루살렘 함락때와 같이

 

(왕하 24:10-14 그때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하들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 그 도시를 에워싸니라.

11)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도시를 치러 오고 그의 신하들이 그곳을 에워싸더라.

12) 유다 왕 여호야긴이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과 통치자들과 관리들과 함께 바빌론 왕에게 나아가매 바빌론 왕이 자신의 통치 제팔년에 그를 붙잡으니라.

13) 그가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의 집의 모든 보물과 왕의 집의 보물을 거기서 가져가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주의 성전에서 만든 금 그릇을 다 산산조각 내었더라.

14) 그가 또 온 예루살렘과 모든 통치자와 모든 용사 곧 만 명의 포로와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그 땅의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 외에는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사로 잡아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는데,

특히 유력한 인사들이나 재능있는 장인들을 잡아갔다.

 

반면에 빈민들은 유다의 땅을 할당받아 포도원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는 바벨론의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Fein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