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그들이 예레미야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리웠는데

거듭난 삶 2023. 1. 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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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위기와 구출

 

성 경: [38:1-13]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밀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 같이 살리라

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4) 이에 그 방백들이 왕께 고하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치 아니하고 해를 구하오니 청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5) 시드기야 왕이 가로되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릴 수 없느니라

6) 그들이 예레미야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리웠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

7) 왕궁 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넣었음을 들으니라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고하여 가로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서 주려 죽으리이다

10) 왕이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서 헝겊과 낡은 옷을 취하고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줄로 내리우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네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 대라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38:1]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밀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

 

본장은 예루살렘 함락이 가까와 옴에 따라

예레미야에 대한 핍박의 정도도 더욱 심해져감을 보여준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유치(留置)되어 있으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일을 계속하였음에도 분명하다.

 

여기 언급되고 있는 그다랴는

예레미야를 때리고 착고에 채운 바스훌의 아들이며,

 

(20:1-3 이제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또한 주의 집에서 우두머리 감독이었는데 그가 예레미야가 이 일들을 대언한 것을 들으니라.

2) 그때에 바스훌이 대언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베냐민의 높은 문에 있던 차꼬에 그를 채워 두었는데 그것은 주의 집 옆에 있더라.

3) 다음 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차꼬에서 풀어 주매 이에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셨느니라)

 

유갈은 여후갈과 동일인이다.

 

(37:3 시드기야 왕이 셀레미야의 아들 여후갈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제 우리를 위하여 주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은 시드기야의 특사로 예레미야를 찾아갔던 자이다.

 

(21:1-2 시드기야 왕이 멜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냈을 때에 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이들은 모두 시드기야의 심복으로 당시 유력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친애굽파를 대표하는 자들이었으리라 짐작된다(Feinberg).

 

 

 

[38: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 같이 살리라 -

 

본절 내용은 12:9에 언급되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어떤 이는 이를 후대의 필사자에 의해 삽입된 해설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그렇게 보아야 할 필요가 없다.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은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 '기근', '염병'과 같은 용어들은

예레미야가 빈번하게 사용하던 말이다.

 

'항복하는 자'(하이체)의 원래 의미는 '밖으로 나가는 자'란뜻이다.

포위 공격이 감행되고 있던 이런 시점에서 항복을 권유한다는 것은

반역으로 보였을 것이며, 그를 체포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Thompson).

 

그리고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는 말에 대한 문자적 번역은

'그의 목숨은 그의 전리품이될 것이다'이다.

 

 

 

[38: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 이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일신상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이 예언을 선언하는 데에 있어서 주저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Clarke).

 

한편, 이 예언의 요지는 34:2, 22 ; 37:8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34:2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가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말하고 그에게 이르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도시를 바빌론 왕의 손에 내주리니 그가 이 도시를 불태우리라,

 

22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명령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 도시로 되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그것을 대적하여 싸우고 빼앗아 불태우리라. 내가 유다의 도시들을 거주민이 없는 황폐한 곳이 되게 하리라;

 

37:8 갈대아 사람들이 다시 와서 이 도시와 싸워 그것을 빼앗고 불태우리라)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이 말을 반복해서 선포했던 것이 분명하다(Bright).

아무튼 이 두번째 선언도 그 당시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반국가적 소요를 야기시키는 선동적 발언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다'란 말에 놓여져 있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원문상의 절대 부정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38:4] 이에 그 방백들이 왕께 고하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치 아니하고 해를 구하오니 청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

 

방백들은 반역죄 내지는 선동죄를 적용하여 예레미야를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하였다.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이 약하여졌다'고 보고되고 있는데,

이는 예레미야의 투항 권고로 인해 그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었다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라기스 서신 제6편에 등장한다.

 

라기스 서신에서 군대 지휘관은 예루살렘 관리들 중에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패배주의자들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뒤의 내용이 파손되어 있기 때문에,

이 지휘관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은 자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라기스 서신 제3편에 '경계하라'고 선언한 어느 선지자가 언급되고 있긴 하여도

지휘관이 지목하고 있는 자가 예레미야인 것으로

규정할 충분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예레미야가 여기서 반역적 패배주의자로 몰리고 있음은 분명하나,

민족 지도자들 중에도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자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Thompson).

 

 

 

[38:5] 시드기야 왕이 가로되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릴 수 없느니라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 - 이는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자기 마음대로 처분해도 된다는 의미이다.

 

시드기야는 이를 통해서 그가 그들의 조언대로 시행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힌 셈이다.

시드기야는 참으로 나약한 군주였다.

그는 선지자를 존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막료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무죄한 자를 희생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Clarke).

 

어떻게 보면 당시의 실세는 왕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방백들에게 있었으며,

이들은 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25-27절 참조).

 

물론, 그의 등극 자체부터가 이미 정통성을 상실케 하였을 것이다.

즉 그는 여호야긴이 포로로 붙잡혀가고 난 다음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위에 오른 꼭두각시 왕이었으며,

또한 국민 대다수에 의해서 진짜 왕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여호야긴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한편, 니콜슨(Nicholson)은 왕의 무능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이를

 

'왕은 당신들에 대해서 아무런 힘도 없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38:6] 그들이 예레미야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리웠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 맛소라는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예레미야를 붙잡아 넣은 구덩이를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26절의 내용과 다소 일치하지 않는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주석가 니콜슨(Nicholson)

왕의 아들 말기야란 말을 누락시키고 있으며,

또한 영영 성경 NEB도 이와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니콜슨은 이곳의 구덩이를 37:11-16에 언급되고 있는

구덩이와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근거로서 37장의 요나단의 집이 시위대 건물에 포함되어 있었던

복합 건물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어떤 해석자는 24-28절의 내용을 끝부분으로 옮겨다 놓고

이를 무마하려고 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정확한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설명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고대에는,

건조한 여름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겨울비를 받아둘 우물이 예루살렘에는 많았다.

 

그러므로 본문의 우물을

굳이 37:16'토굴 옥 음실'과 일치시키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예레미야를 깊은 우물속에 넣어

저절로 죽게 함으로써

피를 흘리게 하는 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 같다.

 

* 참조 : (37:18-21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가기 전에 그들이 멀리서 그를 보고는 그를 죽이려고 그를 대적하여 음모를 꾸미며

19) 서로에게 이르되, 보라, 이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그런즉 이제 오라. 우리가 그를 죽여 어떤 구덩이에 던지고 말하기를, 어떤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들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보리라, 하매

21) 르우벤이 그 말을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내며 이르되, 우리가 그를 죽이지는 말자, 하니라).

 

한편, 전형적인 구덩이는 석회암을 파내고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직경 약 90cm 정도의 좁은 입구와

물을 퍼내는 곳의 깊이가 대개 90-120cm 깊이로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물을 담아 두고있는 곳은 상당히 깊었다.

 

이곳에서 예레미야를 밧줄을 이용해 집어 넣고 꺼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안으로 출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13).

 

 

 

[38:7] 왕궁 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넣었음을 들으니라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왕궁 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넣었음을 들으니라 -

 

'환관'에 해당하는 '사리스'

구약에서 흔히 왕궁 관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곤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문자 그대로 환관이었던 것 같다.

70인역(LXX)은 이 '환관'이란 단어를 생략하고 있다(Bright).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 우리는 구약에서 흔히 성문에 앉았다는

기록을 보게 되는데, 이 성문은 공개 재판이 열리던 곳이었다(Clarke).

 

 

 

[38: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고하여 가로되 -

 

예레미야의 구출은 바로 이 친절한 구스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사람은 확실한 죽음의 운명에 처한 예레미야를

구출하기 위해 신속한 행동을 취하였다.

 

예레미야는 훗날 다가올 예루살렘 파멸 때에

그가 구원받게 될 것임을 약속한다.

 

(39:15-18 이제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6) 가서 이디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복이 아니라 화를 주려고 내 말들을 가져다가 이 도시 위에 임하게 하리니 그 말들이 그 날에 네 앞에서 이루어지리라.

17)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에 내가 너를 건질 터인즉 네가 두려워하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네가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18) 네가 나를 신뢰하였으므로 내가 반드시 너를 건지리니 네가 칼에 쓰러지지 아니하고 네 생명이 네게 탈취물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라, 하시니라).

 

에벳멜렉은 급히 왕에게 찾아가 호소하였는데,

왕이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건의 전말을 호소하기에 아주 적합했을 것이고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Thompson).

 

 

 

[38: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서 주려 죽으리이다

 

그가 거기서 주려 죽으리이다 - 히브리어 원문상으로 이는,

그가 죽은 자나 다름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그곳에 던졌을 때는 조만간 진흙에 빠져

질식해 죽지 않으면 굶어서 죽을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따라서 에벳멜렉은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다급한 상황을 전달함으로써 갈등에 사로잡힌 왕으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도록 했다.

 

 

 

[38:10] 왕이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 여기서 시드기야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설령 방백들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예레미야를 구출해 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Clarke).

 

맛소라 사본(MT)은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30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70인역(LXX)은 이를 세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브라이트(Bright)는 한 사람을 구출하는 데

30명이란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 불필요한 인원 동원이라고 보고

70인역을 따라 세 사람으로 설명하고,

30이란 숫자를 히브리어 자음이 하나 중복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어떤 히브리어 사본에도 3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어쩌면 방백들의 저지나 기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30명이 할당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시드기야의 대응책은 신속하고도 또 실질적이었다.

 

 

 

[38: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서 헝겊과 낡은 옷을 취하고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줄로 내리우며

 

헝겊과 낡은 옷을 취하고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줄로 내리우며 -

 

왕궁에는 의복이나 전투복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으며,

사절에게나 또는 공신들에게 선물로 줄 의복을 보관기도 했다.

 

그러나 에벳멜렉이 바로 이러한 창고에서 이것들을 취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그는 왕궁의 광에서 낡아 버린, 그래서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그런 의복들을 취하여 그것들로 밧줄을 만들었으며

그것을 선지자에게 내려보내 그것을 타고 올라오도록 하였다.

 

 

 

[38:12-13]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네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 대라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

 

에벳멜렉은 대단히 사려가 깊고 또 지략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밧줄을 예레미야의 겨드랑이에 대고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 올림으로써

기진 맥진해 있을 예레미야에게 힘이 들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37:17-21에는

예레미야가 구출되어 시드기야 왕과 밀담을 나누는 거사가 기록되어 있으나,

 

(37:17-21 그때에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끌어내고 자기 집에서 그에게 은밀히 물어 이르되, 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하매 예레미야가 이르되, 있나이다.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왕이 바빌론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하셨나이다, 하니라.

18) 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들과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들이 나를 감옥에 가두었나이까?

19) 바빌론 왕이 와서 당신들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 하며 대언하던 당신들의 대언자들은 지금 어디 있나이까?

20) 그러므로, 오 내 주 왕이여, 원하건대 이제 들으소서. 원하건대 왕 앞에 드리는 나의 간구를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염려하나이다, 하매

21) 그때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그들이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게 하고 빵 만드는 자들의 거리에서 나오는 빵 한 조각씩을 날마다 그에게 주게 하되 그 도시에서 빵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리하게 하니라. 이와 같이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

 

이곳에서 보는 것과 같은 구출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양쪽 모두에 그가 시위대 뜰에 머물게 되었다는 기록이 담겨 있다.

 

(13절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