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거듭난 삶 2023. 1. 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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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몸이 된 예레미야

 

성 경: [40:1-6]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해방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시위대장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재앙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선히 여기는 대로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의 총독으로 세우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중에 거하거나 너의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시위대장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중에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

 

 

 

[40:1]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해방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 본절부터 6절까지는

그다랴에 대한 이야기의 서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다랴는 유다의 총독으로 소개되고 있다(5).

이곳의 무대인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오늘날의 엘-(er-Ram)이란 곳이다.

 

포로들은 여기에 집결, 수용되었다가 바벨론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예레미야도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사슬에 묶여 이곳에 등장한다.

이는 분명히 포로들에 대한 취급상의 어떤 잘못이 있었음을 말한다.

 

,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에 대해서 상당한 대우를 해주라고 명령했었으며

그 명령에 따라 예레미야는 이미 석방 되어 있었다.

 

(39:11-14 이제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이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예레미야에 대한 책무를 주며 이르되,

12) 그를 데려다가 잘 보살피고 조금도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였으므로

13) 이에 호위대장 느부사라단과 느부사스반과 랍사리스와 네르갈사레셀과 랍막과 바빌론 왕의 모든 통치자들

14) 곧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감옥 뜰에서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에게 맡겨 그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이에 그가 백성 가운데 거하니라).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을 잡아들이는 책무를 맡았던

병사들의 착오에 의해 예레미야는 다시 포로로 잡혔던 것이며,

다른 포로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위해

사슬에 묶여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러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를 발견했으며, 그 즉시 예레미야를 석방했다.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 파괴 이후 한 달만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여서

그 성에 대한 파멸을 더욱 철저히 시행하였고

또 포로들을 끌어가는 대열을 조직하였다.

 

(왕하 25:8-12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의 제십구년 오월 곧 그 달 칠일에 바빌론 왕의 신하인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주의 집과 왕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모든 위대한 자의 집을 불태우며

10) 또 호위대장과 함께한 갈대아 사람들의 온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사방에서 허니라.

11) 또 이제 도시에 남아 있던 백성의 남은 자들과 바빌론 왕에게 항복한 도망자들과 무리의 남은 자들은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갔으나

12) 호위대장이 그 땅의 가난한 자들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가꾸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이 어구는

흔히 어떤 신탁을 선포할때 쓰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다음에 신탁의 말씀이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소 불분명하다.

 

다음 절에서부터는 느부사라단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예레미야 설교의 개요가 등장한다.

아마도 느부사라단의 입에서 나온 내용들과 이어지는 사건들이

본절에 언급된 신탁 서론(말씀이 임하니라)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Thdmpson).

 

그렇다면 본 구절의 '말씀'이란 꼭 예언의 말씀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계시된 메시지라는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겠다(Feinberg).

 

 

 

[40:2] 시위대장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재앙을 선포하시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재앙을 선포하시더니 - 본 구절 말씀을

여호와께 대한 느부사라단의 신앙의 표현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본 구절의 화자(話者)가 느부사라단임을 굳이 부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앗수르인들은 심리전에 이용할 목적으로

전쟁 상대국의 종교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바 있다.

 

(왕하 18:22 그러나 너희는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노라, 하지만 그는 히스기야가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 제단 앞에서 경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시나니,

 

33-35 민족들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 땅을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건져 내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과 헤나와 이바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져 내었느냐?

35) 이 나라들의 모든 신들 중에서 누가 자기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 내었기에 주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져 내겠느냐? 하시느니라).

 

어쨌든 바벨론 당국은 유다의 종교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수집하였을 터이며,

특히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한

예레미야에 관해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구절에서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의 메시지의 요점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 있는 바를 인용조로 언급하고 있다 하겠다.

 

 

 

[40:3]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

 

여기서도 우리는 갈대아 군대의 장군인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가 무슨 말을 선포했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느부사라단은 여기서 예레미야가 전환 메시지의 대략적인 내용을 지적하면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이 이미 예언된 대로 발생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40: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선히 여기는 대로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 이제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든지 아니면 유다 땅에 남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Clarke).

 

예레미야에 대한 안전 배려는 이미 느부갓네살이 명령했던 것이기도 하다.

 

(39:12 그를 데려다가 잘 보살피고 조금도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였으므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안에서 예레미야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이미 보고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바벨론의 '친구'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보다 궁극적인 관심사는

바벨론에 항복하여 안전을 누리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회복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선대하리라'의 히브리어 '아심 에트 에니'

문자적으로 '내 눈으로 (너를) 주시하리라'라는 뜻으로

좋은 대접을 해주겠다는 의미이다.

 

 

 

[40: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의 총독으로 세우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중에 거하거나 너의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시위대장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 이 어구에 대해서

니콜슨(Nicholson)

'예레미야가 아직 대답하지 않고 있을 때 느부사라단이 계속 말하였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가능한 해석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본문에는

'남는 것이 네뜻이라면' 너는 그다랴에게로 가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 - 그다랴의 조부인 사반은 요시야의 대신이었으며,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왕에게로 가져갔던 사람이다.

 

(왕하 22:3-13 요시야 왕의 제십팔년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요, 아살리야의 아들인 서기관 사반을 주의 집에 보내며 이르되,

4)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그가 백성이 주의 집으로 가져온 은 곧 문 지키는 자들이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인 은을 세게 하라.

5) 그들은 주의 집을 감독하는 자들 곧 일하는 자들의 손에 그것을 넘겨주고 그들은 주의 집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주어 그 집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게 하되

6) 곧 목수와 건축자와 석공에게 주어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집을 보수하게 하라, 하였더라.

7) 그러나 그들이 신실하게 나누어 주었으므로 그들의 손에 넘긴 돈을 그들과 함께 세지 아니하였더라.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주의 집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그것을 읽으니라.

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가서 왕에게 다시 말을 전하여 이르되, 왕의 신하들이 그 집에 있던 돈을 모아 주의 집을 감독하는 자들 곧 일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었나이다, 하고

10)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보여 주며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넘겨주었나이다, 하고 왕 앞에서 그 책을 낭독하매

11) 왕이 율법 책의 말씀들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으니라.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신하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해 이 발견한 책의 말씀들에 관하여 주께 여쭈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우리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를 향해 타오른 주의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

 

사반의 아들이자 그다랴의 부친이기도 한 아히감은

요시야가 파견한 특사의 일원으로서 여선지 훌다를 방문한 바 있다.

 

(왕하 22:12-14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신하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해 이 발견한 책의 말씀들에 관하여 주께 여쭈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우리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를 향해 타오른 주의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

 

예레미야가 성전 설교를 하고 또 그가 위험한 상태에 있었을 때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보호하기도 하였다.

 

(26: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와 함께하였으니 이것은 그들이 그를 백성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게 하여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더라).

 

이제 유다의 새로운 총독이 된 자는 바로 이 아히감의 아들 그댜라인 것이다.

그는 아마 시드기야의 내각에서 상당한 행정적인 경험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B.C. 6세기 초로 연대가 추정되는 라기스의 인장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그댜라에게 속한 것' 그 집전체에 대해서'라는 어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런 표현은 왕의 총리 대신에게나 사용될 수 있던 어구였다(Thompson).

 

 

 

[40: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중에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댜라에게로 - 그댜라의 행정부는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것이 아니다.

아마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

 

(2:13 오 예루살렘의 딸아, 내가 무엇을 가져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랴? 내가 너를 무엇에 비유하랴? 오 시온의 처녀 딸아, 내가 무엇을 너와 같게 하여 너를 위로하랴? 너의 상한 것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능히 너를 고치겠느냐?;

 

4:1 어찌하여 금이 어둡게 되었는가! 어찌하여 가장 좋은 정금이 변질되었는가! 성소의 돌들이 모든 거리의 위 부분에 쏟아졌도다).

 

미스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3km 가량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텔 엔-나스베(Tel en Nasbeh)란 곳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도시는 수세기에 걸쳐서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다.

 

(20:1-3 그때에 온 이스라엘 자손이 나가고 그 회중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길르앗 땅과 더불어 한 사람같이 미스바에서 주께로 함께 모이니라.

2) 온 백성의 우두머리들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에서 자기들을 보이니 칼을 뺀 보병이 사십만 명이더라.

3) (이제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런 사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고하라, 하매;

 

삼상 7:5-14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함께 모여 물을 길어 주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며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재판하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함께 모였다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오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해 주 우리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그분께서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소서, 하더라.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해 전체를 번제 헌물로 주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 헌물을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왔으나 그 날에 주께서 큰 천둥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천둥소리를 내사 그들을 무찌르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므로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밑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쳤더라.

12) 그때에 사무엘이 한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이르되, 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며 그것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경 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사무엘의 모든 날에 주의 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대적하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도시들이 에그론에서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었고 이스라엘이 그 도시들의 주변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었으며 이스라엘과 아모리 족속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0:17 사무엘이 백성을 불러 미스바로 주께로 함께 오게 하고).

 

한편 어떤 학자들은 미스바의 위치를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오늘날의 네비 사무엘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의 견해가 보다 우세하고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갔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41:17에서는 그가 미스바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고

곧장 베들레헴으로 옮겨 갔음을 암시하는 내용도 보인다(Nicho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