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거듭난 삶 2023. 1. 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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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의 반동

 

성 경: [41:1-10] 칠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5) 때에 사람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41:1-2] 칠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이스마엘의 그다랴 암살 사건에 관한 기록이다.

 

칠월에 - 연도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해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연도(B.C. 586)였던 것 같다.

예루살렘 함락은 사월로 명시되어 있다.

 

(39: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사월 곧 그 달 구일에 그 도시가 함락되니라).

 

그리고 히브리 종교력의 칠월은 현대력으로는 양력 10월경에 해당된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이 이전에 40:7-16의 사건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다랴에 대한 암살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1년이나 7년 후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유다인들은 그다랴에 대한 암살을 큰 사건으로 여겼으며,

그후 칠월을 이에 대한 기념의 달로 예식을 거행하였다.

 

(7:5 이 땅의 모든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가 그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곡할 때에 조금이라도 나를 위하여 곧 나를 위하여 금식하였느냐?;

 

8:19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유다의 집에게 기쁨과 반가움과 즐거움의 명절들이 되리니 그런즉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암살하는 사건의 배경은

그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중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유다인의 관습에 따르면, 주인은 손님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고

또 손님은 주인에게 신뢰를 가지고 그에 맞는 답례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다랴는 이스마엘을 손님으로 정중히 대접했을 것이고,

이스마엘을 믿고 무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Bright).

 

이에 대해 클라크(Clarke)는 보다 더 강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즉 본절에서와 같이 함께 떡을 먹는것이 단순한 식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지리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다랴를 살해한 행위는

그를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한 갈대인들에 대한 공격이고 도전이었다(Thompson).

 

 

 

[41: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 첫 번째 살인에 이어 또 다른 살인이 이어졌다.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몇몇 유다인들이 곧 이어 살해 되었다.

이들은 미스바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의 대표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미스바에 주둔하고 있던 갈대아 군사들 중 몇몇도 살해되었다.

아마 이들도 식사에 참석했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곳에 참석해 있던 갈대아인 주둔 병사들을 모두 처치하지 않고는

그 음모를 실천할 수 없엇을 것이다.

아마 이들은 소수였을 것이고 기습을 당해 모두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행위는 바벨론 군대의 보복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니콜슨(Nicholson)은 이 사건에서

살해된 갈대아인들이 총독 관저를 지키고 있던 자들이었으며,

일시적으로 미스바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41: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

 

본절은 그다랴 살해 사건이 사전의 각본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음을 암시한다.

 

 

 

[41:5] 때에 사람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

 

북이스라엘의 옛 종교 중심지였던 세겜과 실로,

그리고 사마리아 등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미스바에 도착하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제사하기 위해서 가던 중이었다.

이 사실은 소제물이나 유향이란 말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때가 칠월이었으니 이들은 가을의 큰절기인 초막절에 참석하고자 했을 것이다.

종교적 의미에서 7월은 신년도와 같은 것이었다.

 

한편 순례자들이 북쪽에서 왔다고 하는 사실은

북 이스라엘지역에 살던 사람들 중에 적어도 얼마 정도는

B.C. 622년의 요시야의 개혁을 받아들이고

그때까지 계속 그것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어쩌면 이들은 중앙 성소에서 예배를 드릴 것을 명하고 있는

신명기의 규례들을 따르고자 했을 것이다.

 

(12:5-6 오직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실 곳 즉 그분께서 거하시는 곳을 찾아서 거기로 나아가

6) 너희의 번제 헌물과 너희의 희생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 헌물과 너희의 서원 헌물과 너희의 자원 헌물과 너희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낳은 것들을 거기로 가져가고).

 

또한 순례자들은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는 등,

슬픔과 회개의 표시를 하고 있었는데

 

* 참조 : (16:6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묻히지 못하며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슬퍼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위해 자기 몸을 베거나 자기 몸을 밀지도 아니하리라;

 

48:37 모든 사람의 머리가 대머리가 되고 모든 사람의 수염이 깎이리니 모든 사람의 손에 베인 상처가 있고 허리는 굵은 베로 둘리리라),

 

이는 틀림없이 성전이 파괴된 것에 대한 애곡의 표시였을 것이다.

전체 포로기에 걸쳐서 성전 파괴에 대한 애도는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 참조 : (74, 79; 63:7-64:12, 애가서 등).

 

많은 주석가들은 성전 파괴 이후에도

성전의 존엄성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으며

성전 지대에서의 종교 행사도 계속되었으리라 본다(Bright, Feinberg, Nicholson ).

 

 

 

[41: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이스마엘은

극악 무도한 위선 행위로 위장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그 역시 이들 순례자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눌 사람들에게로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Clarke).

 

 

그다랴에게로 가자 - 이를 '그다랴의 이름으로 환영한다'라고

의역해 볼 수도 있겠다(Bright).

이런 이스마엘의 말은 명령이 아니라 정중한 초대였다.

 

한편 이스마엘이 이들조차 살해한 원인이 본문상에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아마 이들이 유다 총독 그다랴를 방문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발각되지 않게 하려는 동기에서

이런 짓을 저질렀던 것 같다.

 

그러나 8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쩌면 이들에게서 양식을 얻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41: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

 

순례자들의 시체는 '구덩이'에 던져졌다.

'구덩이'는 시체들을 감쪽같이 처분해 버리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38:6 이에 그들이 예레미야를 붙잡아 함멜렉의 아들 말기야의 지하 감옥 곧 감옥 뜰에 있던 지하 감옥에 던져 넣으며 예레미야를 밧줄로 달아 내리니라. 그 지하 감옥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이처럼 진창 속에 빠졌더라).

 

한편 이 '구덩이'는 물이 귀한 팔레스틴의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여기다 시체를 던져 넣는 것은 매우 몰지각한 행위였다.

왜냐하면 시체에 오염된 물은 부정하여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41: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 본절에는 이스마엘이 숨겨 놓은

양식을 얻기 위해 이들 순례자들에게 어떤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암시가 엿보이긴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어쩌면 이스마엘은 이들 순례자들을 볼모로 잡아서

그들 가족들에게서 양식을 갈취 하려고 했었을 수도 있겠다.

 

이스마엘이 이 열명의 순례자들의 목숨을 살려주고 양식을 얻고자 하였으나,

아마 이것도 원래 약속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인명이 살해된 이런 사건의 전말은

조만간에 퍼져나갈 것이 틀림 없었기 때문에,

이들 열 명의 순례자들도 나중에는 피살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이스마엘은 분명히 유다 땅에 남아 있을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절에는 그가 암몬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장면이 언급되는 바,

그는 이 여행을 위해서 식량을 준비하고자 했을 법하다.

 

 

 

[41: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 300년 전에

유다 왕 '아사'가 미스바를 요새화하려는 일환으로 이 구덩이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왕상15:22에 따르면 아사는 북쪽 이스라엘 '바아사'왕의 영토에 있던

라마의 성벽을 허물고 거기서 얻은 재목을 가지고 미스바에 요새를 건축하였다.

 

(왕상 15: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포고령을 내려 한 사람도 면제받지 못하게 하니 그들이 바아사가 건축할 때에 쓰던 라마의 돌과 재목을 가져오므로 아사 왕이 그것들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오늘날의 텔 엔 나스베(Tell en-Nasbeh)를 발굴한 결과

이로 보이는 구덩이가 발견되었다(Thompson).

 

이 구덩이는 원래 그 지역의 물을 공급하기 위한 저장소였으나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전쟁을 치르는 시기에

요새화의 일환으로 활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Clarke).

 

 

 

[41: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왕의 딸들 -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되고 있다.

바벨론 군대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이들을

붙잡아가지 않았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다윗 왕족이나 방백들의 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드기야의 딸들이 예루살렘 함락 당시에

재빨리 도피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Calvin).

 

한편, 예레미야에 대한 언급이 여태까지 나타나고 있지 않는데,

어쩌면 예레미야는 이스마엘이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 중에 속해 있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포로들이 요하난의 도움으로 베들레헴 근처로

돌아올 수 있었을 때 예레미야가 이들 중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2:2 이하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 앞에서 드리는 우리의 간구를 받으시고 우리 곧 이 모든 남은 자를 위해 주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하소서. (당신의 눈이 우리를 보는 바와 같이 우리가 많은 사람 중에서 조금만 남았으니)).

 

그러나 이것도 추측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