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거듭난 삶 2023. 1. 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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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경고

 

성 경: [44:20-30]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방백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지 아니하셨느냐 생각지 아니하셨느냐

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

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24)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말하되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 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너희 서원을 성립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 하시느니라

26)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되리라

27) 보라 내가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28) 그런즉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리라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벌할 표징이 이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내앙을 내리리라 한 말이 단정코 성립될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 원수 곧 그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 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그 원수들 곧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44:20]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

 

본절에서부터 끝절까지는 나름대로 한단락을 이루고 있고,

이것은 다시 두개의 소단락으로 나뉜다.

 

그 첫 소단락은 20-23절로서 15-19절에 묘사되고 있는

백성들의 주장에 대한 예레미야의 논박을 다루고 있고,

 

두 번째 소단락은 24-30절로서

애굽에 거하는 유다인들에게도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더 확장된 내용의 선언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소단락은 신명기의 사상과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해서 B.C. 586년의 유다 패망을 해석하는 내용으로 보이며,

또한 그 재앙이 백성들의 오래되고 뿌리 깊은 배도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해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락은 애굽에 있는 그들에게도 그러한 심판이 닥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44: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방백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들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지 아니하셨느냐 생각지 아니하셨느냐 -

 

'땅 백성'(암 하아레츠)이라는 표현은

지주(地主) 등과 같은 유다 내의 어떤 특정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흔히 쓰였는데,

여기서는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Harrison).

 

 

 

[44:22]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나니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

 

유다 백성의 가증스러운 죄악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인내가 한계에 이르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벧후 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들은 어떤 핑계도 댈 수 없으며 동정을 받을 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44:23]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미쳤느니라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여호와의 법과 율례와 증거대로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오늘과 같이 -

 

맛소라 본문에는 본절의 분향이 어떠한 것인지 지시되어 있지 않으나

앞에 언급된 그 제사를 가리킴이 분명하다(Bright).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열심을 다해 섬기던 우상 숭배 행위를 기억하셨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백성이 거기에 연루되어 있었다.

 

이 백성에게 심판이 임하게 된 것은 바로

이들의 배도와 우상 숭배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본절에는

여호와의 ''(토라)

그의 '율례'(호크)

그의 '증거'(에두트)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무시하였던 언약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고 있는 표현이다.

 

언약 파기는 언약 조항에 규정되어 있는 저주의 발동을 가져오고 마는 것이다.

 

 

 

[44:24-25]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말하되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 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너희 서원을 성립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 하시느니라 -

 

여기서는 애굽에서의 우상 숭배 행위를

여자들이 주도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모든 여인 혹은 너희 아내들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어떤 주석가는

'모든 백성'이란 말을 생략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브라이트(Brlght)는 이를 '모든 백성들,

특히 여자들'이라고 번역하여 이 점을 보다 분명하게 부각시킨다.

 

성립하며’(아소)'행한다'는 뜻으로,

우상에게 서원한 바를 이행하려면 해보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내버려 둬 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44:26]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되리라

 

다시는 내 이름을 일컬어서 주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되리라 -

 

혹자는 본절을 애굽에 도피한 자들 전원을 멸절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Bewer).

그러나 14, 28절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 재앙에서도 살아 남은 자가 있다.

 

(14 그러므로 이집트 땅으로 들어가 거기에 머무는 유다의 남은 자들 가운데 아무도 피하거나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또 그들이 자기들이 되돌아가서 거하기 원하는 유다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아무도 돌아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8 그럼에도 칼을 피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집트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집트 땅으로 들어가 거기에 머무르고자 한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과 자기들의 말 가운데 누구의 말이 설지 알게 되리라)

 

따라서 본절에서 하나님은 그들로부터

언약 백성의 특권을 빼앗아가실 것을 선언하고 계시는 듯하다(Streane).

 

 

 

[44:27] 보라 내가 경성하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경성하여 - 히브리어 '쇼케드'는 원래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경계한다'는 의미로서,

애굽 땅의 유다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 의지를 보여준다.

 

 

 

[44:28] 그런즉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리라 -

 

 

남은 자 - 4:1-6 주제 강해 '남은 자 (the remnant)에 관한 역사적 이해'를 참조하라.

 

* 본문장 끝부분에 정화된 예루살렘이라는 내촌감삼의 글을 참조하시라.

 

 

 

[44:29-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너희를 벌할 표징이 이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내앙을 내리리라 한 말이 단정코 성립될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 원수 곧 그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 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그 원수들 곧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여호와께서 애굽에 있는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표징'(오트)을 주신다.

 

(7:8-13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파라오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를 위해 기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이르되, 네 막대기를 가져다가 파라오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하시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들어가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자기의 막대기를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니라.

11) 이에 파라오도 지혜자들과 마법사들을 부르매 이제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마술로 비슷하게 행하였으니

12) 그들이 각각 자기 막대기를 던지매 그것들이 뱀이 되었더라. 그러나 아론의 막대기가 그들의 막대기들을 삼키니라.

13) 그분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더라)

 

백성들은 이것을 통해서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표적은 바로 '호브라'라고 하는 애굽의 왕(B.C. 589-570)

그 대적들의 손에 넘겨지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B.C. 588년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에 반란을 일으키면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사람이었다.

 

그 약속에 따라 그는 유다에 군사를 파견했었다.

 

(37:5 그때에 파라오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싼 갈대아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을 떠나니라).

 

예레미야는

호브라가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여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원수의 손에 붙여진다고 말했다.

 

B.C. 570년 그의 통치 말년에 리비아에서의 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자기 군대의 일부 무리가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아마시스란 장군이 반란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되었으나

아마시스는 자신이 왕임을 선포하였으며

호브라와 함께 일부 지역을 분활 통치 하였다.

그로부터 3년 후 호브라는 처형되었다.

 

 

 

* 정화된 예루살렘

 

이사야서 41-6: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의 빵을 먹으며 우리의 옷을 입으리니 다만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불려서 우리의 수치를 없애게 하라, 하리라.

2) 그 날에 주의 가지가 아름답고 영화롭게 되며 또 땅의 열매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들을 위하여 심히 좋고 아름답게 되리라.

3) 시온에 남은 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살아 있는 자들 중에서 기록된 모든 자는 거룩하다고 불리리니

4) 이때에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불태우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어 내시며 예루살렘의 한가운데로부터 그것의 피를 깨끗이 제거하시리라.

5) 또 주께서 시온 산의 모든 거처와 시온의 집회들 위에 낮에는 구름과 연기를 창조하시고 밤에는 타오르는 불빛을 창조하시리니 모든 영광 위에 방벽이 있으리라.

6) 또 장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며 폭풍우와 비를 피하는 피난처와 은신처가 되리라(한글 KJV)

 

 

이상의 예루살렘에 대하여,

실제의 예루살렘이 있었다.

 

이상은 아름다운 데가 있음에 대하여,

실제는 추한 데가 있었다.

 

실제를 보고서 예언자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크신 심판이 임할 것임을 예언했다.

 

실제의 예루살렘은,

존귀한 것도, 비천한 것도,

남자도 여자도, 보존됨의 필요 없는 데까지에 부패했다.

 

이사야는 아무런 고려하는 바 없이,

마음껏 당시의 유다와 예루살렘을 저주했다.

 

하지만 실망은 절망이 아니었다.

심판은 섬멸을 의미하지 않았다.

심판은 정화되는 일이었다.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멸하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구조하기 위한 심판 이었다.

 

거기에 예언자 이사야의 강한 신앙이 있었다.

그는 그 장자를 이름 지어 스알야숩이라고 했다.

 

(7:3 그때에 주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이제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세탁공의 밭의 큰길에 있는 위 연못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이것을 역하면, ‘남은 자 돌아올 것이다라는 뜻이다.

다시 이것을 설명하면

 

그 남은 자,

야곱의 남은 자는 대능의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이라’(10:21 일역)는 뜻이었다.

 

즉 심판되어,

좋다(선하다)고 인정되어 남은 자는 여호와께로 돌아와

그 은혜에 참여하리라는 것이다.

 

심판을 그 일면에서 보면 이것이다.

남은 자가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찌끼(가스)가 소진되고, 순은만이 남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뽑은 백성은,

모두가 가스는 아니었다.

 

그중에 확실히 순은이 있었다.

 

내가 아주 너를 멸하지 아니하였었노라’(20:17; 26:44등 참조),

 

그는 몇 번이나 예언자로써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분노에 언제나 끝(한계)이 있었다.

그들은 폭풍 뒤에 언제나 갠 하늘(청천)을 바랐다.

 

예루살렘은 심판으로써 구속되리라고 했다.

멸절되리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사야서 4장은 소묵시 문학이다.

요한계시록을 축소해 놓은 듯한 것이다.

이세상의 종말에 대해 나타낸 것이다.

 

문자대로 해석할 것은 아니지만, 대체의 사실은 명백하다.

그 안의 중심적 진리는,

남아있는 자는 구원되리라는 것이다.

 

피난하여 남은 자, 시온에 남은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4:2-3 참조)

라는 것이 그것이다.

 

즉 스알야숩(73절 란 외에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이다.

 

그리고 모든 은혜는 그들 위에 임한다는 것이다.

 

첫째로 땅은 개조되어 그 소산은 풍요히 되고,

남은 자에게 그것이 주어지리라는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의 삭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며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4:2-한글 개역)란 이것이다.

 

이른 바 만물의 부흥이다.

 

5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명시한다.

 

모든 영광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란다.

 

묵시록(계시록)213절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있는 그대로이다.

 

6절은,

이와 같이하여 축복된 백성에게 은신처(피난처)가 주어질 것을 보여준다.

 

한 장막(천막)이라고 있음이 그것이다.

천막이 폭풍우를 피하는 곳으로 되리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그것이 묵시문학이다.

문자대로 해석 할 수 없다 해도,

그 안에 깊은 의미를 찾아 볼 수가 있다.

구속된 자라해도, 피난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죄인은 구속되어도 아직 진노의 자녀이다.

 

언제 심판의 영에 휘말려, 그 입장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 피난처가 필요하다.

신자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것이다.

 

시편 9422절에,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는 모두 심판되고 나서 후에 임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되었음으로라)’(4:4 한글 개역)고 있다.

 

은혜는 전체가 심판되고서 후에 남은 자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심판을 거치지 않고서 은혜는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예언자전체의 주장이었다.

 

심판에 의해 부정(더러움)이 씻은바 되고,

그런 뒤에 은혜는 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혜를 내려 주심에 있어서,

취하시는 변함없는 길이다.

 

불변의 법칙이라고 하여,

실제로 틀림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인 동안은, 심판이 필요하다.

심판은 세정, 세척이며, 시련이다.

그리고 오물이 소진되고서 잔부가 구제되는 것이다.

 

국가도, 인류도, 사회도, 개인도,

이 길을 거쳐 구원되는 것이다.

심판 없이 구원은 없다.

 

모든 것은 피로써 정결케 된다.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 받는 일이 없다’(히브리서 9:22 참조)는 것은,

인생의 전부에 걸치는 대 진리이다.

 

이리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뿐 아니라,

위들 각자도 역시 심판의 영의 역사()에 의해,

모든 오예를 씻음 받고,

우리 속에 남은 것으로써 구원되는 것이다.

 

나의 전부가 구원되는 것 아니다.

불타지 않는 것이 남아, 그것이 구조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4:3 한글 개역)라고 있다.

 

생명서 가운데 기록된 자는 구원되리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연히, 요행으로 타다 남은 것은 아니다.

 

생명의 책 가운데,

미리 기록된 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33:19 참조)

복음적진리가 여기에서도 또한 보여 있음을 본다.

 

그리고 심판은 여러 가지의 형태를 취하여,

우리에게 임한다.

 

혹은 유혹이 되어,

혹은 위협으로서 임한다.

 

우리가 이에 이길 것인가,

(그때) 어떤 것을 잃고 어떤 것이 남는다.

 

그리고 그 남는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죽음의 최후의 심판이다.

우리들의 부정(더러움)을 불태워버리시는

아주 뜨거운(맹렬한) 불이 시다.

 

그리고 남은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이다.

 

 

*내촌감삼의 (19285성서지 연구’)를 참조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