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린 발자취

17, 18, 19 세기의 교회사 2

거듭난 삶 2023. 2. 2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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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국의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국가교회의 가혹하고 잔악한 박해가

점차로 완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 교회가 시작된 지 154년 후인 1688년에 최초의 관용령이 선포되었는데,

이 법령은 두 교파, 즉 가톨릭과 유니테리안을 제외한 영국에 있는

모든 교파를 믿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의 관용령은 89년 후 즉 1778년에 내려졌다.

이 법령은 가톨릭을 믿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여전히 유니테리안의 신앙은 허락되지 않았다.

 

세 번째의 관용령은 35년 후 곧 1813년에 내려졌다.

이 법령에서는 유니테리안도 허용했다.

 

1828년과 1829년에 이르러 소위 선서조령(宣誓條令)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이 법령은 비국교화(즉 영국 국교와 의견이 상반되는 신앙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관직과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을 허락하여 준 것이다.

 

1836년에서 1837년 사이와 1844년에 등록령과 혼인령이 선포되었다.

이 두 법령은 비국교도들이 행하는 침례와 결혼을 합법화한 것이었다.

 

개혁 법안이 1854년에 나왔다. 이 법안은 비국교도의 학생들에게도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두 대학의 문호를 개방시켜준 것으로,

이때까지는 비국교도의 자녀들은 이 두 대학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14. 이렇게 영국에 있어서는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발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참다운 신앙의 자유는 국교가 확립되어 있다든지 그것이 존속하고 있는

나라에 있어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기껏해야 관용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참다운 신앙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음에 틀림없다.

한 나라 안에 있는 여러 교파중에서 단 한 교파만이 정부에 의하여 유지되며

정부의 편애와 지지를 받고 다른 모든 교파를 배척하는 한

완전한 신앙의 자유와 평등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15. 바로 18세기 초엽에 세 아이가 영국에서 태어났는데,

이들이 바로 후일 교회사에서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겨 놓은

죤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 그리고 조지 휫필드이다.

 

 

 

죤과 찰스 웨슬레는 에프워드(여기에서 에프워드 연맹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에서

태어났으며,

죤 웨슬레는 1703628일에, 찰스 웨슬레는 1708329에 각각 태어났고,

조지 휫필드는 17141227일 글로우시스터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이들의 전 생애에 관한 것을 모두 말할 수는 없으나,

이는 실로 되풀이하여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세 사람은 감리교회의 시조와 창설자가 되었다.

그들은 영국교회의 회원이었으며 성직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들 중에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당시 영국의 성직자들은 거의 구원받지 못했다. 또한 그 당시에는

부모가 그들의 직업이나 유산을 아들에게 계승시키려고

직업을 결정하였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마침내 구원받고 말았다. 실로 놀랄 만한 변화였다.

 

 

16. 이 사람들은 새로운 교파의 창설자가 되려는 욕망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은 영국교회의 내부에서 순수한 신앙의 부흥과

정신적인 개혁이 일어나기를 열망하고 있었으며

또한 성실히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이 일을 수행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들 자신들의 교회였던 영국교회는 그들에게 문을 닫아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집회는 때때로 야외에서 또는 어떤 개인의 집에서 개최되었고,

특히 휫필트의 경우에는 다른 교파의 집회소에서 열기도 하였다.

휫필드의 위대한 설교는 그가 가는 곳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7. 감리교회가 창설된 정확한 날짜를 알아내기는 퍽 어려운 일이지만

의심할바 없는 것은 감리교의 정신은 감리교 교회보다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감리교도들이라 불리었으며,

그들의 최초의 조직체는 협회(society)라고 불렸다.

 

영국에서 그들이 가진 첫 번째 연례총회는 1744년이었다.

감리교 감독파 교회는 1784년 미국의 발티모어에서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는데

그 성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영국교회 즉 성공회에서 나올 때,

모교회(母敎會, 성공회), 또는 조모교회(祖母敎會, 카톨릭)가 갖고 있었던

많은 과오를 함께 가지고 나왔다.

 

이를테면 감독 제도나 성직자 교회 운영체제 같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 관하여 그들의 내부에는 많은 다툼과 분열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허다한 논쟁과 문제가 있었으니,

이는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과 침례 대신 세례를 행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한 가지의 위대한 것이 있었는데,

이는 곧 그들이 모교회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영적 믿음인 것이다.

 

 

18. 178892일 아일랜드의 안트리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장차 세상 곳곳에서 신앙 각성 운동을 일으켜

새로운 교파의 창설자가 될 아이였다. 이 아이는 알렉산더 캠벨이다.

 

그의 아버지는 장로교회 목사였다. 그의 아버지 토마스 캠벨은

1807년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그때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나

후에 도미했다.

 

견해의 차이로 인하여 그들은 장로교회를 떠나

브레스런(Brethren:형제교회)교회로 알려져 있는

크리스천 협회라는 독립된 단체를 조직하였다.

 

그들은 1801년 침수례에 의한 침레를 채택하였고

한 침례교회의 목사로부터 침례를 받았으나 침례교회와는 연합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알렉산더는 모두 침례를 받았다.

1813년 그들의 독립교회는 레드스토운의 침례교회 협회와 연합하였다.

 

그러나 10년 후 그들은 논쟁으로 인하여 그 협회를 떠나 다른 단체에 가입하였고,

그 후에도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그들은 또다시 그 단체를 떠나고 말았다.

그들은 결코 침례교도가 아니었으며 지금까지 내가 읽어 본 기록에 관한

그들이 침례교도였음을 주장할 아무 근거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교회의 역사 특히 침례교회의 역사를 논하면서

존 번연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영국사나 세계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사람인 침례교회 목하 존 번연은

12년간이나 벧포드의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온 세상에서 가장 이름 높고, 성경 다음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는

천로역정을 기록하였다.

그는 가혹한 박해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다.

 

또한 존 번연의 이야기는

주일학교의 도서실에도 반드시 갖추어 두어야 할 책일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이 책을 읽는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 역사중 가장 감명을 주는 이야기 중 하나는 웨일즈 침례교도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의 침례교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웨일즈 침례교도에서 받았다.

 

완전히 조직된 여러 침례교회들이 한꺼번에 웨일즈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왔기 때문이다(Orchard p.21-23; Ford chap. 2).

 

웨일즈에서 복음 사역이 시작된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가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신약에서부터 시작된다.

 

(28:30-31 바울이 자기 셋집에서 만 이 년을 거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받아들이고

31) 전적으로 확신 있게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것들을 가르치되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하더라,

 

딤후 4;21 너는 겨울이 되기 전에 서둘러서 오라. 유불로와 부덴과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들이 네게 인사하느니라).

 

글라우디아(Claudia)와 부덴(Pudens)이 로마를 방문한 것,

바울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은 것,

또 그들의 조국 웨일즈에 복음을 가지고 돌아간 것 등은 대단히 흥미있는 일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이 설교를 한 것은 A.D 63년의 일이었다.

그 후 곧 클라우디아와 부덴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중에서

두 설교자가 함께 같은 복음을 영국 특히 웨일즈에 가지고 갔던 것이다.

 

웨일즈 침례교도들이 미국의 침례교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는 실로 측량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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