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린 발자취

미국의 교회사

거듭난 삶 2023. 2. 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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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미 합중국의 교회사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 사람들과 그 외의 다른 라틴 족속들은

남부 및 중부 아메리카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최초의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나 멕시코를 제외한 북부 아메리카에서

그들의 세력이 강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한때 멕시코의 영토가 되어 있었던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종교적인 견해가 법으로써 제정되었던 적은 없었고

식민지 시절에도 결코 강력했던 적은 없었다.

 

 

식민지 시대가 시작된 17세기의 초기에 최초의 정착지가 버지니아에,

그리고 조금 후에는 오늘날 뉴잉글랜드 주로 알려진 지역에 지정되었다.

 

 

영국이나 유럽대륙에 있었던 신앙상의 박해,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비인간적인 박해는 적어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착지를 설치케 한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제임스타운의 일단(1607)과 필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는 단체(1620)를 제외하고도

최초에 들어온 이민단 중에는 두 단체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퓨리탄(청교도)이라 불리웠는데

이들은 회중교회의 교인들이었으며

엔디코트 총독이 그들의 식민지를 통치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의 단체는 장로교도들이었다.

이 두 단체 가운데는 그들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핍박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국에서 피흘린 발자취

 

이 피난하여 온 회중교회 사람들과 장로교인들은

따로 식민지를 만들었고 즉시 그 영토 안에서 그들의 독특한

신앙상의 견해를 법으로써 제정하였다.

 

다시 말하면 회중교회주의와 장로교회주의를 그 식민지 안에서 법적인

신앙상의 견해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이는 곧 다른 모든 신앙관을 전적으로 배척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들 자신도 그들 위에 내렸던 핍박의 피어린 자국이 남아있는 고국산천을 떠나

이 나라를 찾아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 자신들이 식민지를 지정하고. 이 새 나라에서 권력을 잡게 되자

곧 다른 사람들의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고

그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동일하거나 가혹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였던 것이다.

특히 그들은 침례교도들을 그렇게 취급하였다.

 

버지니아 남부 및 북부 캐롤라이나의 식민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주로 영국 성공회 사람들이었는데, 이 독특한 종교관은

이들 식민지의 법으로 제정되었다.

 

이리하여 수많은 회중교회 교인들과 장로교회 교인들, 그리고 성공회 교인들이

자신의 양심이 명하는 대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특권을

찾아서 왔던 이곳 미국 땅에는 곧 법으로써 제정된 세 교회가 설립되었다.

 

정부에서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 외에는 아무에게도

신앙의 자유는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의 후손들은 선조들의 피어린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었으며

그들 자신의 종교개혁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 이민 온 사람과 함께 많은 침례교도들이 분산되어 들어왔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아나-밥티스트(재침례교도)라 불렸다.

 

미국으로 행하는 모든 선박 안에 침례교도들이 몇 몇씩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비교적 적은 무리를 이루어 왔으며

결코 큰 이민단의 형식으로는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러한 방법으로 오는 것이 용납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이민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식민지가 완전히 확립되기 이전에도

침례교도들은 그 수가 늘어갔고 거의 어느 곳에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세 개의 국가 교회의 무거운 손길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복음을 전파하는 것, 그들의 자녀들이 유아세례 받는 것을 거절한 것,

그 외 침례교도들로서 양심적인 행동을 했던 여러 가지 것들이

모두 무서운 범죄가 되어

체포당하고 투옥되었으며 벌금을 물었고 채찍을 맞았으며

추방당하였을 뿐 아니라 재산까지 몰수당했다.

 

이러한 모든 일이 이곳 미국에서 행해졌다.

여러 가지 사실 중에서 그 몇 가지 실례만을 들어 보기로 하겠다.

 

 

메사츄세츠 베이의 식민지가 지정된 지 20년이 되기 전에

그곳의 국교가 된 회중교회는

침례교회 및 다른 교파를 배척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다음은 그 법안의 일부분이다.

 

 

"다음과 같이 승인되었으므로 이에 명한다.

이 법령의 권한 아래 있는 자로서 유아 세례를 공공연하게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자,

또는 그것을 인정하여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은근히 미혹케 하는 자,

그리고 그 의식을 시행할 때에 고의로 그 집회를 이탈하려 하는 자는

소정의 기간이 경과되면 유죄로 인정한 후 추방의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이 법령은 특히 침례교도들에 대해 단행되었다.

 

 

이 같은 식민지 당국에 의하여 로저 윌리암스와 그 외 여러 사람들이 추방을 당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추방을 당한다는 것은 절망적인 문제였는데,

이는 곧 인디안 소굴에 들어가 거기서 사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윌리암스의 경우에는 인디안들의 친절한 영접을 받았고

얼마동안 그들 가운데서 살았으며, 또 후일에 그를 추방한 그 식민지에 대하여

커다란 축복을 끼치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는 인디안에게 간청하여 식민지를 파멸의 손에서 구했던 것이다.

 

그 후 로저 윌리암스는 여러 식민지에서 추방당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 자신의 식민지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중에는 침례교 목사 존 클라크도 있었다,

아직 그렇게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영국 정부로부터 받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해 보는 것이 현재의 식민지에서

무서운 신앙상의 제약을 받고 사는 것보다

더 현명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직까지 어느 식민지에서도 그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었던 한 작은 땅을 발견하여

그곳에 그들의 식민지를 지정하기로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로드아일랜드라 알려진 곳이다.

 

이는 1638년 곧 메사츄세츠 베이 식민지가 지정된 지 10년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합법적인 인가를 얻게 된 것은 그로부터 25년 후인 1663년이었다.

 

 

1651년경에 로저 윌리암스와 존 클라크는

만일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식민지를 설립할 수 있는

합법적인 허가를 얻을 목적으로 영국에 파송되었다.

 

그들이 영국에 도착하였을 때 올리버 크롬웰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로저 윌리암스는 미국으로 돌아왔고,

존 클라크는 영국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탄원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크롬웰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찰스 2세가 영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역사는 찰스를 교회에 대한 가장 무자비한 박해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 평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는 1663년에 이를 허가하였고 클라크는 12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 허가장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따라서 1663년 로드아일랜드는 합법적인 식민지가 되었고

침례교도들은 그들 자신의 헌법을 세울 수 있었다.

 

헌법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온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이 헌법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신앙의 자유가 선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절대적인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일어났던 투쟁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장구한 세월을 통하여 침례교도들은 단독으로 싸워 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그들 자신만을 위하여 싸웠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침례교도들의 최초의 식민지가 된 로드아일랜드는

그 허가를 얻기 위하여 탄원한지 12년 만에

침례교도들의 작은 무리들에 의해서 설립되었으며,

이는 이 지구상에서 신앙의 자유가 법률로 보장된 최초의 곳이었다.

 

이곳이 식민지가 된 것은 1638년의 일이요,

이 식민지가 합법적으로 지정된 것은 166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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