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경 해석의 중요성
재림과 휴거 등의 성경 교리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해석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천년왕국이 없다고 말합니다.
장로교의 대부분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주의’를 고수합니다.
사실 이런 신학 체계에 젖어 있는 분들에게는 재림과 휴거라는
교리 자체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일어난다고 하고
다른 분들은 그 이후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전자는 보통 ‘전천년주의’라고 하고
후자는 ‘후천년주의’라고 합니다.
이 문제 역시 계시록 19-20장을 보면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답이 뻔한데도 자기 견해를 꺾지 않으려는 분들이 많으며
이런 분들에게도 재림과 휴거를 논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모든 성도들이
7년 환난기의 일부나 전체를 통과한다고 말하고
다른 분들은 교회는 환난기에 들어가지 않고 그 전에 모두 휴거된다고 합니다.
전자는 보통 ‘환난 통과설’이라고 하고
후자는 ‘환난 전 휴거’라고 하며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체하였으므로
구약의 이스라엘은 존재 자체가 없고
지금 중동의 이스라엘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다른이들은 바로 이 이스라엘이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 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펴는 것일까요?
“현시대 성도들이 환난기를 통과하느냐, 통과하지 않고 그 전에 휴거되느냐?”는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며 불안에 빠져
심지어 정신 질환에 걸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성경 해석 방법이 다른 데서 생깁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지구)을 포함한 온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셨습니다.
또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기록합니다(출20:11).
여기의 엿새는 도대체 얼마나 긴 기간일까요?
여기의 하루는 오늘날의 하루와 같은 하루일까요?
아니면 20-30억년도 될 수 있는 긴 기간일까요?
요한계시록 20장을 보면,
이 세상을 지배하며 사람들을 속이던 마귀가 7년 환난기 이후에 붙잡혀
1,000년 동안 바닥없는 구덩이에 갇히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1,000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합니다.
그리고 그 1,000년이 끝난 후에 마귀가 잠시 풀려나
땅의 민족들을 모아 전쟁을 벌이다가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받고
불호수로 떨어져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2절부터 7절에는 1,000년이라는 말이
매절 한 번씩 모두 6번이나 나옵니다.
이 1,000년은 정말로 1,000년일까요?
아니면 영원무궁토록 긴 기간일까요?
이 1,000년이 영원무궁토록 기간이라면 어떻게 마귀가
그 1,000년의 끝에 잠시 풀려나고 그 뒤에 불 호수에 던져져서
또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에스겔서 37장에는 소위 ‘마른 뼈 환상’이라 불리는 계시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 대언자 에스겔을 두시고
그로 하여금 그 뼈들에게 대언하여 숨이 그것들에게 들어가게 하십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자 그 뼈들이 움직이고 힘줄과 살과 살갗이
그 뼈들 위에 생기며 결국 숨이 들어가 그들이 살아서 큰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이 뼈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많은 부흥사들은 성도들이 과거에 이 마른 뼈들처럼 죽어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님을 받아 살게 되어
주님의 일을 하는 군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가능한 해석이지만 원래의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답은 바로 그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집이니라.
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없어졌으며 우리로
말하건대 우리 몸의 부분들은 끊어졌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리라
(겔37:11-12).
하나님께서는 이 뼈들이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죽어 있던 그들을 친히 무덤에서 일으켜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십니다.
자, 그러면 여기의 ‘이스라엘의 온 집’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스라엘 땅은 어디일까요?
그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너희 조상들이 거하던 땅에 거하되 그들
즉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자녀들이 영원히 그 안에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내 장막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니
참으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그들의
한가운데 영원히 있게 될 때에 나 주가 이스라엘을 거룩히 구별하는 줄을
이교도들이 알리라, 하라(겔37:25-28).
그들은 분명히 그들의 조상들의 땅에서 떠나 있다가 다시 그 땅에 돌아가며,
그때에는 다윗이 부활해서 그들의 왕이 되고 또 그들 주변의 이교도들.
즉 이방 민족들이 주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죽어 있던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땅으로 되돌아오고 이미 오래전에 죽은
다윗이 부활하며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칭송을 받는
이때는 과연 언제일까요?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는 때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로, 이스라엘 땅은 저 팔레스타인 땅.
즉 가나안 땅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마다 성경을 달리 해석하게 되고
그 결과 교리가 왜곡됩니다.
하나님께서 며칠 동안에 온 우주를 창조하셨을까요? 6일입니다.
이때의 하루는 30억 년이 될 수 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라고 하시는 기간은 창조 때나 모세의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24시간의 하루입니다.
그렇게 엿새 동안에 우주를 무(無)에서 유(有)로 만들지 못하는 분은
결코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죽어 있는 모든 성도들의
몸을 부활시키고 또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의 몸을 갑자기 변화시켜
공중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으면 온 세상과 우주는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말씀에 의해 무(無)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견해는 다 사람의 의견입니다.
계시록 20장의 1,000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1,000년은 우리가 아는 일 년이 천 번 있는 1,000년입니다.
이것 외의 다른 해석은 다 사적인 해석입니다.
그래서 그 1,000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옛 땅과 옛 하늘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영원토록 존재하게 됩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계21:1).
이와 같이 에스겔서 37장도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읽으면
거기의 ‘이스라엘의 온 집’은 지금 중동에 있는 저 이스라엘이고
그때는 천년왕국 시대이며 그때에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부활합니다.
이것 이외의 다른 해석 역시
교단이나 교회나 교주나 전통이 만들어 낸 오류입니다.
이런 식으로 명백한 것들을 명백하게 두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을 보통 ‘영적 해석’ - 짧게는 ‘영해’(靈解) - 혹은 ‘비유 해석’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영해로 인해 이단들이 생기고 미약한 성도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영해에 가장 강한 데가 바로 천주교이며
또 천주교에서 나온 개신교도 영해에 매우 강합니다.
사실 이런 교단이나 교파들의 전통에 따른 자의적/사적 해석으로 인해
수많은 성도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계시록 7장에 보면
이마 안에 하나님의 인(印)을 받은 144,000명이 나옵니다.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계7:4).
자,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5-8절을 보면 구체적으로
유다, 르우벤, 갓, 아셀, 납달리, 므낫세, 시므온, 레위,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지파 등.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이 봉인되었습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신약시대 성도들이 12지파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12지파입니다.
즉 그들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살다가 그들의 땅으로 되돌아온 유대인들입니다.
많은 면에서 계시록이 유대인과 그들의
문화적 특성을 보이는 책임을 인식해야 합니다(계15:3의 모세의 노래 등 참조).
이처럼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서로의 생각대로 영해하면
성경 해석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며
특히 미래의 예언에 대한 해석은 뒤죽박죽이 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한 말씀을 주시면서
수백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했을까요?
보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하게 했을까요?
하나님이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혼동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특히 예언의 경우 그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림과 휴거의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바르게 풀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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