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재림과 휴거

13. 휴 거

거듭난 삶 2023. 8. 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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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휴 거

 

휴거(Rapture)는 라틴어 라페레’(Rapere)에서 나왔고

이 라틴어는 살전4:17에서 성도들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는 것을 표현한

그리스어 하르파즈’(harpaz)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몸이 영화롭게 변화되면 그 당사자는

극치의 황홀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단어 ‘rapture’는 그런 황홀한 감정을 표현한 말입니다.

 

사람이 공중으로 채여 올라간 일은 사실 성경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휴거와 비슷한 사건이 가장 먼저 창세기 5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2장에서는 엘리야 역시 이와 비슷하게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38절에는 복음 전도자 빌립도 가자로 내려가는 사막에서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준뒤

공중으로 채여 올라가 다른 지역으로 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고니움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서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간 적이 있는데(14)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는 그 경험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계시록 4장에서 사도 요한 역시 하늘로 채여 올라갑니다.

 

그리고 계시록 125절에는 이스라엘이 출산한 사내아이

즉 메시아가 채여 올라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의 승천을 표현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이 모든 사건은 위로 채여 올라가는 것이며

이런 현상을 한자로 표현하면 다 휴거’(携擧)입니다.

즉 휴거는 끌려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휴거는 틀리고 공중 들림으로 써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의견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휴거는 정확하게 위로 채여 올라가는 것을 뜻하므로

성경적 정의와 동일합니다.

 

이제부터는 휴거의 여러 견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환난 전 휴거(Pre-tribulation rapture)

 

이것은 7년 환난기 전에 교회의 성도들이 하늘로 채여 올라가는 것을 말하며

곧 증명하겠지만 성경은 이것만이 진리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2. 부분 휴거(Partial rapture)

 

이것은 7년 환난기 전에 이 땅에 사는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독실한 자들만

휴거를 받고 나머지는 환난기를 통과하면서 정화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견해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휴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휴거를 받아 환난기를 피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내가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좀 더 깨끗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 좋은 생각이지만

우리의 구원이나 휴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환난기에는 말 그대로 준 지옥이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여기를 피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땅에서 7년 환난기가 이루어지는 동안

하늘에서는 신랑 되시는 어린양 예수님의 혼인 예식이 치러집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그분의 신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신부는 신약시대에 그분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입니다.

그 성도들 안에는 성숙한 이들도 있고 갓 태어나 미숙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그분의 신부이며 그분의 몸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 속한 지체는 머리카락 하나, 손톱 하나까지 다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신부가 완성되고 신랑 되신 어린양의 혼인 예식이 거행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성도들은 휴거되자마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구원받은 이후의

모든 행위에 대해 심판을 받고 행위에 따른 보상을 달리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다 [바울을 포함하여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이처럼 보상이라는 상대적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구원과 휴거라는 절대적

측면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8:1-2).

 

 

그래서 고전15:51

나팔소리가 나매 우리가 다변화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휴거받지 못하는 이들은

예수님 안에 속하지 않은 불신자들입니다.

물론 본인은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으나

나팔소리가 날 때 휴거받지 못하면 성경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만 있으면 나팔소리가 언제 나든지 아무 문제없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그 사람은 확실히 공중으로 들려 올라갑니다.

 

다미 선교회나 신부 단장을 주장하는 자들처럼

흰옷 입고 지성으로 한밤중에 모이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비록 밤에 잠을 잔다 해도 오대양 육대주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에 상관없이 다 들려 올라갑니다.

 

환난기는 오직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향한 진노의 기간입니다.

 

3. 환난 후 휴거(Post-tribulation rapture)

 

이것은 7년 환난기를 다 거친 뒤에 교회의 성도들이

하늘로 채여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견해는 성경적으로 큰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교회가 7년 환난기를 통과하고 휴거받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다 휴거를 통해 몸이 변화되고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순식간에 주님과 함께 땅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땅에 내려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다시는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또한 7년 환난기가 끝나면서 휴거받지 못한 자들은 다 악한 자들이므로

유황불에 던져집니다.

 

그러면 육체를 입고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에 들어갈 자들이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육체를 입고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낳을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다고 말하므로

교회가 7년 환난기 전체를 통과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또한 환난기가 끝나자마자 휴거받아 위로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다시 내려올 필요가 있을까요?

 

악인들을 처벌한 뒤 의인들이 그대로 천년왕국에 들어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휴거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휴거가 있다고 말하므로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분들은

스스로 만든 올무에 걸려들고 맙니다.

 

이런 이유로 7년 환난기 전체를 통과한 뒤

휴거받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분들은 지금은 많지 않습니다.

 

4. 환난 중간 휴거(Mid-tribulation rapture)

 

이것은 7년 환난기의 한중간에 교회의 성도들이

하늘로 채여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최근에 나온 견해로서 이 견해를 주장하는 분들은

계시록의 일곱 봉인과 여섯 나팔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사탄이나 사람의 진노이고 환난기의 한중간에 울리는 일곱째 나팔 이후의 재앙들만

하나님의 진노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 견해에서는 일곱째 나팔이 가장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일곱째 나팔이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나팔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고전15:51).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잘못 본 결과입니다.

환난 중간 휴거를 포함해서 환난 전 휴거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견해들의 문제는

유대인들의 왕국 프로그램과 신약의 교회 프로그램을

겹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끝마침이 되셨다는 사도 바울의 진술과 같이

율법 시대와 교회 시대는 절대로 겹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70이레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교회 시대의 후반부와 환난기는 절대로 겹치지 않습니다.

 

교회가 없어진 뒤에 이스라엘의 왕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환난기가 옵니다.

 

또한 환난 중간 휴거의 경우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 언약을 맺는 때부터

정확히 1,260일 되는 시점에 휴거가 발생합니다.

 

즉 이 견해대로라면 휴거가 발생하는 날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고전15:51처럼

휴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휴거는 언제라도 심지어 오늘 저녁이라도 갑자기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휴거의 임박성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나팔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 중 일곱째 나팔이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마지막 나팔을 언급했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허공에 대고 말한 셈입니다.

 

계시록은 고린도전서가 기록된 이후로

30-40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직 기록되지도 않은

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마지막 나팔이라고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랬더라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 뜻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 해석에서 모든 단어의 뜻은 앞뒤 문맥에서 찾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첫째와 마지막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45-49절에는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원수라는 말도 나옵니다(26).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성경에 나오는 첫째 나팔과 이것과 대비되는

여기의 마지막 나팔을 조사해서 비교해 보면

문제가 간단히 풀릴 수 있습니다.

 

첫째나팔은 출19:10-20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이 모임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이때에 나팔소리가 울리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산에 닿기만 해도 다 죽었습니다.

 

이것은 곧 율법은 진노를 이루고 사람을 정죄하여 죽인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즉 율법의 직무는 사망의 직무입니다(고후3:7-9).

이것은 물론 모세가 가져온 것입니다(12:18-21).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마지막 나팔은 사망을 누르고 이기는 승리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이때에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집니다(고전15:54).

 

바로 이런 차원에서 첫째 나팔과 마지막 나팔을 비교한 것입니다.

 

또한 고전15장의 마지막 나팔은 절대적 의미의 마지막 나팔이 아닙니다.

 

사실 환난기가 끝나면서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도

나팔소리가 있습니다(24:29-31).

 

일곱 나팔이 울린 이후에도 천년왕국에서 장막절의 나팔이

적어도 1,000번은 더 울립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나팔과

계시록의 일곱째 나팔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 http://bible-truth.org/mid-trib.html을 참조하기 바란다.

 

5. 진노 전 휴거(Pre-wrath rapture)

 

이 견해 역시 환난 중간 휴거와 비슷하며 다만 휴거의 시기가 환난기의 사분의

삼쯤 되는 지점 즉 일곱 금병 심판이 시작되는 때라는 점만 다릅니다. 다시 말해

이 견해는 일곱 봉인과 일곱 나팔 심판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사람이나 사탄의

진노이고 일곱 금병만 하나님의 진노라고 봅니다. 그러나 계시록 6장부터 나오는

일곱 봉인 심판을 보면 이때의 재앙들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견해 역시 성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 http://www.middletownbiblechurch.org/proph/prewrath.htm을 참

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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