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거듭난 삶 2023. 10. 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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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설교 2

 

성 경: [2:23-36]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 '정하신'이란 '고정되어진, 결정되어진'의 의미로 하나님의 뜻을 영원 속에 두었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 속에서 예수를 통한 구원 계획을 가지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인간에 의해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대인의 악한 행위가

하나님의 영원 전에 세우신 계획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내어준 바 되었거늘 - '내어준바'는 동사적 형용사로서 수동분사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 표현이 유다에 의하여 내어준 바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Robertson).

 

그러나 오히려 본절에서 베드로는 내어준 자에 단순히 유다만 포함시키지 않고

예수에 대해 거짓 증거하고 조롱했던 유대인들도 포함시키고 있는듯하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 이 표현은 팔레스틴의 로마 당국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유대 당국자들에 의하여 선동(煽動)되는 그대로

실행하였던 자들이다.

 

유대교 문헌에서는 이방인들이 '악한자 들'(고전9:21)로서 종종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고의로 죄를 짓는다거나 또는 단순히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전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못 박아 죽였으나 - 독자들은 그곳에 모인 자들 모두가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처럼 베드로가 표현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그렇게 표현한 것은 예수를 죽음에 내어주어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개개인의 죄가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의 죄였기 때문이다.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 본문에서는 예수의 부활이

법 없는 자들의 어떤 행동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되어진 일임을 밝혀주고 있다.

 

(1:19-20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예수의 부활은 본서에서 핵심되는 주제이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10: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13:30-34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여기에서 '사망의 고통'은 히브리어의 배경에 의하면 사냥꾼들이 포획하기 위하여

놓은 덫과 같은 '죽음의 덫', 혹은 '매는 줄'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나 죄가 없으시므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요일 3: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사망의 올무에 매여 있지는 않으셨다.

그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다.

 

(고전 15:4-6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 이 구절은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이다.

 

(20:9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사망조차 예수 위에 왕노릇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베드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되신 권위를 입증하고자 했다.

 

 

 

[2:25-28]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하여 구약의 시편(16: 8-11)을 인용한다.

 

(시편 16:8-11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는 자신이 8절에서 예수에 대하여 말한 바를 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16:8-11은 대표적인 메시야 예언에 대한 기록 중 하나로서

메시야의 부활(復活)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6:8-11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는 이 예언의 말씀을 들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야인 것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와같은 논증은 예수 자신에 의하여 세워진 해석에 기초하고

부활 이후의 기독교 전통에도 부합되며,

 

또한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인용되었던 미드라쉬의 제반 해석방법과도

일치되게끔 표현된 하나의 논증이다.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형제들아 이는 '유대인들아'라는 말이나

 

(14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아'라는 말보다 친근감 있는 표현이다.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이제까지 인용한 구약의 말씀에 대한 결론을 말하려고 공손히

청중들의 주의를 끌고 있다.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 여기에서 "말할 수 있노니'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말하게 허락하면'의 뜻이다.

 

흠정역(KJV)에서는 이를 잘 반영하여

 

'나로 말하게 하라'(Let me speak)고 번역했다.

 

여기서 베드로는 '조상 다윗에 대하여' 말할 때 자신이 청중들과 형제로서,

이스라엘의 왕통의 선조로서 존경받는 다윗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공손한 태도를 나타냈다.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 다윗의 묘는

실로암 못 남쪽에 있었는데,

 

현재는 예루살렘 마가의 기념교회 가까운 곳에 다윗의 무덤으로 알려진

유대교의 성기(聖旗)가 있다고 전해진다.

 

다윗은 이처럼 죽어서 그 무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앞서 인용한

 

'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란 구절은 자신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다윗의 묘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중에 하나는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3,000달란트의

돈이 도난당했으며, 그 후 헤롯에 의해 다른 방도 도굴(盜掘)되어

더 많은 돈이 도난당했다고 전해진다.

 

 

 

[2: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그는 선지자라 - 다윗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기 때문에

선지자였다.

 

(삼하23: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22: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비록 구약에서 그가 예언하는 무리 중에 포함되어 예언한 적은 없으나

자신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을 미리 알고 예언했으므로

영감받은 선지자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처음 하신약속은 삼하 7:11-16에 기록되어 있다.

 

(삼하 7:11-16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 본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맹세'에 관한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 89:3,35에서는

 

'내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나의 거룩함으로 맹세하였은즉...', 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은 하나님 자신의 신실성과

거룩함에 근거하여 영원불변한 서약으로 맹세하신 것을 알 수 있다.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

 

이 구절은 이미 인용된

 

(27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16:10에 대한 해석이다.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미리본다'는 것은 선지자로서 계시와 영감을 가지고 행하는 것을 의한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선지자는 예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를 단순히 예언자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윗은 장래에 될 일을 미리보고 예언한 예언자이면서 영감(靈感)받은 시()

많이 써서 하나님을 찬양한 선지자였다.

다만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

다윗의 선지자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 베드로는 이미 22절에서 '예수'를 언급했으며

그 다음부터 예수에 대해 적용된 예언을 설명했으므로 본절에서

'이 사람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를 사용함으로써 다윗에 의해 예언된 메시야가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베드로는 자연스럽게 예수의 부활이 예언의 성취임과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했다.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 -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모든 자들이

부활에 대한 증인임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사도들의

중심 메시지였고, 그들은 본 절 외에 네 차례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이라고 강조했다.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10:39-41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13:30-31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 여기에서 '오른손으로"란 하나님의 전능과

그의 권능을 상징하는 말이고

 

비교 : (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8:1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벧전 3: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한편 '높이시매'라는 말은(3:13; 2:9)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영광스러움을 내포하는 말이다.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1:5; 14:16; 16:13)을 아버지께 받아서 보내는 권능을 얻었다'(1:8; 14:26; 15:26; 16:7)는 표현은

성경의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성령은 성부께로부터 나와서 성자를 통해 오시는 것이다.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 무리들이 보고 들은 것은 성령이 임했을 때 일어났던

현상에 대한 것으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3)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2)와 백이십 명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4)을 가리킨다.

 

부어주셨느니라 - 이 말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이 말은 선지자 요엘에 의하여 사용되어진 표현으로(17) 그의 예언이

여기에서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 그는 죽어서 장사되었고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당시에 그의 무덤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육체는 무덤에서

썩었고 승천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지금 인용할 이 시는

다윗 자신에 적용시킬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었다.

 

주께서 내 주에게 - 이 구절은 시 110:1의 인용으로 후기 유대교 시대에

유대교 해석자들이 난해한 문제로 삼았던 구절이다.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문제는 '내 주'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인데 몇몇 고대의 랍비들은 이 시편을

아브라함과 관련지어 해석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윗과 관련지어 해석했으며

심지어는 히스기야 왕과 관련지어 해석할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기원후 약 7년이 될 때까지 랍비 문헌에서 이 시편 110편이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 확실한 중거도 없다.(D. M. Hay)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시 110:1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여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適用)시킨 적이 있다.

 

(22:41-46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12:35-37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20:41-4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뇨 하시니라).

 

베드로는 이 시편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언급했다.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바울이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2 :10)라고 가르친 적이 있듯이 '발등상 된다"는 것은 항복을 의미한다.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런즉 이스리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 베드로는 본문에 이르러 예수를 주와

메시야로 선포하여 자기 설교의 절정이자 결론에 도달했다.

 

'온 이스라엘'이란 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모든 집'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매우 강조적인 표현으로 이스라엘 전 민족 또는 종교적 공동체를 가리킨다.

 

너희가 십자기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예수는 자신의 메시야 직분을 공생애를 통하여 죽기까지 하심으로 완전히 성취하셨고 또한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므로 '주와 그리스도'란 칭호가 그에게 참으로 합당한 것이다.

 

또한 이 칭호가 그에게 합당한 이유는 신약의 다른 여러 곳에 나타나는 기독론적인

진술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특별히 이 '주와 그리스도'라 는 칭호는 바로 베드로의 메시지의 제목이요 초대 교회

신앙 고백의 내용이었다.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또한 베드로는 설교 속에서 ''란 표현을 예수와 하나님께 동시에 적용시키고 있다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러므로 여기에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강조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주와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고의 능력과 영광으로 유대 민족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모든 민족 위에

높여주는 정치적인 위대한 통치자로서의 주와 그리스도, 곧 메시야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메시야 사상과 부합되지 않게

가르치며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